경현공주는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의 딸로 어머니는 조선시대에 가장 강한 권력을 가졌던 왕비 중 하나인 문정왕후였습니다. 그녀의 친동생은 조선 제13대 왕인 명종이었으며 이복 오빠는 제12대 왕 인종으로 그녀는 최고의 배경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렇게 1530년 중종과 문정왕후의 셋째 딸로 태어난 경현공주는 8세가 되던 1537년 경현공주에 봉해집니다.
그녀가 12세가 되던 해에 왕실 어른들은 윤임의 손자를 부마로 삼으려 했으나 윤임이 거부하는 바람에 함창현감을 지낸 신수경의 아들인 신의가 부마로 결정됩니다. 참고로 시아버지 신수경은 문정왕후의 남동생인 윤원로와 결탁해 각종 모략을 일삼았던 인물이었습니다.
1541년 중종은 혼례가 결정된 경현공주와 봉성군의 집을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이 과정에서 공주의 집을 화려하게 짓는 바람에 백성들의 노역이 심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지만, 중종은 강행합니다. 결국 그해 경현공주는 신수경의 아들 신의와 혼인하였고, 부마가 된 신의는 영천위에 봉해집니다.
그리고 1546년 경현공주와 신의 사이에서 아들 신사정이 태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경현공주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남편 신의가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부마의 아버지인 신수경도 왕실의 사돈이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매관매직을 하다가 탄핵을 받고 귀양을 갈 정도였으니 집안 자체가 개차반이었던 것입니다.
1548년 대왕대비 문정왕후는 부마를 나무라기 위해 두세 번 궁으로 부르지만 그는 가지 않았고, 결국 파직당합니다. 이후 통천으로 귀양을 보내는 방법 등을 통해 그의 행동을 제재하려고 했지만, 신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상의 아들을 공공연히 구타하는 등 행패를 부렸습니다.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했습니다.
1552년 신의는 직첩을 빼앗기게 되지만 좀처럼 그의 행동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켰고, 심지어 취춘향이라는 기생집에 들락거렸습니다. 문정왕후는 신의에게 별거령을 내리고 경현공주의 집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시킵니다. 하지만 간 큰 부마였던 신의는 경현공주의 집에 쳐들어가 공주의 옷을 벗기고, 그 옷을 기생에게 가져다주는 패악을 부립니다.
분노한 문정왕후는 또다시 신의를 통천으로 귀양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통천 귀양 중에서도 온갖 민폐를 끼칩니다. 1년 후 귀양이 풀려 한양으로 다시 올라오게 되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화병으로 누운 경현공주 앞에서 계집종을 희롱하거나 경현공주의 집으로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와서 간음을 하는 등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에 명종은 사헌부의 주장에 따라 신의를 통천으로 유배해 위리안치 시켰지만, 신의는 이곳에서도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보다 못해 그를 섬으로 옮기게 하였으나 그가 미친 짓을 멈추지 않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 명을 내립니다. 하지만 신의는 이것마저도 듣지 않고 버티게 됩니다.
결국, 마음이 약했던 명종은 얼마 후 슬그머니 신의를 풀어주게 됩니다. 부마 신의는 한양으로 돌아와서 또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명종은 그를 성 밖으로 내보냈으나 신의는 몰래 도성으로 잠입했습니다. 그는 절도를 하고 남의 집 여종을 납치, 강간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명종도 더이상 참지 않고 그를 다시 유배를 보내 위리안치 시킵니다. 이후 신의가 풀려난 것은 3년 후 그가 제일 무서워한 대왕대비 문정왕후가 죽은 다음이었습니다. 그리고 1567년 명종마저 승하하자 더욱 기고만장해진 신의는 경현공주를 심하게 박대했습니다. 의복과 음식을 넉넉하게 대주지 않고 그녀를 봉양한다는 것을 문제 삼아 며느리를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선조는 그를 보성으로 유배시켜 위리안치 시킵니다. 하지만 구제불능이었던 신의는 여기서도 가시 울타리를 헤치고 나가서 남의 첩을 강간하는 사고를 치게 됩니다. 결국, 그 사건 후 신의는 선조에 의해 유배지에서 영영 풀려나지 못하게 됩니다.
경현공주는 남편에 이어 유일한 자식인 아들 신사정 때문에도 마음고생을 하게 됩니다. 신사정은 외할머니인 문정왕후의 국상 기간 동안 기생과 간통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경현공주와 외할머니 문정왕후의 물건을 기생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 신의와의 관계도 매우 좋지 않아 신의가 형벌을 받거나 귀양을 갈 때에도 태연하였는데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어 신사정은 불효라는 이유로 의금부에서 추궁당하고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이러한 가정불화 속에서 평생 속을 끓였던 경현공주는 1584년 유배지에서 남편 신의가 세상을 떠난 후 그해 8월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상주였던 아들 신사정은 여전히 유배 중이었기에 올라올 수 없었고 4년 후인 1588년 신사정의 부인 밀양 박씨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선조의 명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경현공주는 최고의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일국의 공주였지만 남편을 잘못 만난 죄로 평생 마음고생을 하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삐뚤어져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가련한 비운의 여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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