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비슷한 90년대를 보내신 분들 중 고인돌이라는 고전 게임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386, 486 컴퓨터에서 많이 즐기던 게임인데 동굴을 탐험하면서 햄버거, 닭다리 등을 먹으며 방망이를 이용해 적을 물리치는 게임인데요.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사주신 컴퓨터로 몰래 게임하다 들켜서 컴퓨터 한 대를 통째로 날려 먹었던 그 게임이기도 한데 지금도 저 게임 화면만 보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렇습니다.
사실 고인돌이라는 것은 청동기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인데 인류사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유적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특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연석 또는 가공한 돌로 무덤을 만들거나 커다란 구조물을 만들어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거석문화는 집단거주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죠.
한국에서 발견된 고인돌 중 가장 거대한 고인돌은 김해 구산동에 있는데 그 무게가 무려 350톤입니다. 아시아 코끼리의 무게가 대략 3톤이라고 하니 코끼리 116마리 무게에 해당하는 돌을 옮겼다는 의미인데요.
인간 한 명이 나를 수 있는 최대 무게가 약 100kg으로 본다면 350톤짜리 돌을 옮기려면 약 3,500명이 필요합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2명씩 동원했다고 가정해도 최소 7,000명이 한 지역에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죠. 그러니까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그 시절 한반도 김해 지역은 최소 7,000명이 거주한 집단거주지였고 이 집단을 이끈 지배자가 존재한 계급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한반도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볼 때 고조선 시대 한반도는 상당히 발전된 사회를 이미 이루고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에 유네스코는 지난 2000년 12월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밀집 분포한 전북 고창, 전남 화순, 인천 강화도 지역의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고 전 세계 고인돌 중 유일한 세계문화유산이 됐습니다.
그런데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렸을 만큼 전 세계 유례없는 한반도의 고인돌 중 단일 유적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한 유적지가 세상 빛도 보지 못하고 비닐하우스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영영 세계유산 등재는커녕 이대로 기억 속에서 잊힐지도 모르는 상황인데요. 이 유적지를 자세히 살펴봐야겠습니다.
모든 사건은 1967년부터 시작됩니다. 수도권 지역의 전기공급과 용수 조절을 위해 정부는 강원도 춘천에 댐을 하나 건설하기로 하고는 ‘의암댐’을 지었습니다. 1967년 의암댐이 완공되면서 춘천의 주도심 지역은 대량으로 수몰되고 육로로 연결되었던 길이 끊기면서 새로운 섬 하나가 생겨났는데 바로 ‘중도’입니다.
그리고 10년 후 1977년 5월 20일 국립박물관 학예사 2명이 중도를 찾습니다. 댐이 생긴 후 10년간 댐을 막았다 열기를 반복하면서 없던 물살이 생겨나고 수위가 굉장히 급격히 변동하면서 흙이 깎여나가는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강원도는 산이 가파르고 계곡이 깊어 그 계곡과 강 주위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 수밖에 없으므로 상당한 유물이 묻혔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날 중도를 방문한 학예사들의 눈앞에는 깎여나간 흙 사이에서 땅에 박힌 토기 조각들이 보였습니다.
의암댐의 수위 조절로 만수일 때 볼 수 없었던 것들이지만 다행히 이날은 가뭄 해갈을 위해 댐을 방류했고 단층이 드러난 겁니다. 그리고 3년 뒤 본격 발굴에 앞서 찾은 중도에서는 더 큰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간 발견되던 깨진 토기 조각이 아니라 완전형 토기가 나온 겁니다. 그리고 즉각 발굴 조사가 시작됩니다.
잠시만 시선을 돌려보겠습니다.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 라이언킹, 도널드덕, 엘사 등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의 대부분은 미국의 월트디즈니 컴퍼니에서 창조됐습니다.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캐릭터들 덕분에 디즈니는 전 세계 곳곳에 ‘디즈니랜드’라는 테마파크를 건설했는데 일례로 도쿄 디즈니랜드의 경우 1년 방문객이 한국을 방문한 전체 외국인 관광객보다 많습니다.
어마어마한 관광 수입을 추정할 수 있는데 그렇다 보니 지자체마다 이런 테마파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죠. 잘 만들어진 테마파크가 갖춰진다는 것은 지자체 곳간이 채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어느 정치인은 이 곳간을 바탕으로 더 높은 자리를 바라볼 수 있는 치적이 됩니다.
강원도 역시 이런 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2008년부터 디즈니랜드에 버금가는 레고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죠. 2011년 레고랜드 개발사업 투자 합의각서를 시작으로 연간 200만 명 이상 관광객과 1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며 밀어붙여 2022년 5월 5일 개장했는데 지금까지도 강원도에는 비난이 폭주합니다.
왜냐하면 레고랜드는 위에서 완전형 토기가 발견된 중도에 건설됐기 때문이죠. 이 사건이 바로 제 구독자분들이 요청해 주셨던 춘천 레고랜드 사건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2011년 투자합의각서가 체결된 후 레고랜드 부지로 하중도가 선정됐고 즉각 문화재청은 문화재 발굴조사를 시작합니다.
레고랜드가 중도에 건설된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화약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는데 2013년 11월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문화재청은 발굴 전문기관 5곳을 선정해 1차 발굴조사를 시작했는데 조사 결과 무려 1,400개가 넘는 청동기 시대 유구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죠.
고인돌 101기, 집터 917기, 구덩이 355기뿐 아니라 비파형 동검 및 청동도끼 등 청동기 유물 1,273점이 출토된 겁니다. 이들의 고고학적인 의미는 대단했습니다. 우선 강원도에서 고인돌이 101기나 발견된 것은 처음인 데다 2000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고창, 화순, 강화도 고인돌에 버금가는, 아니 이를 뛰어넘는 국내 최대 규모입니다.
여기에 집터에는 ‘둥근바닥바리모양토기’와 ‘덧띠새김무늬토기’가 출토됐는데 이들은 이 유적지가 조기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13세기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조선 시대 대표 유물로 알려진 비파형 동검과 청동도끼까지 출토됐으니 이 중도 유적지의 가치는 감히 상상을 초월했죠.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처리됐을까요? 강원도는 우선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당시 정부는 글로벌 테마파크 건설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정도로 의욕이 상당했고 강원도 역시 국책사업에 진심이었습니다. 결국 레고랜드도 유치하고 유적도 보호한다는 목표로 타협안이 제시됐죠.
레고랜드는 최초 계획대로 추진하되 유적들을 최대한 보존한다는 다소 양립하기 어려운 타협안입니다. 왜냐하면 레고랜드가 계획대로 중도에 건설된다면 강원도의 목표대로 연간 200만 명이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그 아래 위치한 고인돌 등의 유적지가 과연 제대로 보존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사실 문화재를 보호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약칭 ‘매장문화재법’의 제4조에 따르면 ‘매장문화재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지역은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하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보호 방법은 다양하죠.
지역 전체를 조사해 문화재를 발굴하는 방법도 있지만 매장문화재법 제14조에 따라 문화재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발굴 전 상태로 복토하는 것도 선택지가 될 수 있죠. 다시 말해 문화재를 발굴 이전의 상태로 덮어둔 후 나중에 다시 흙을 걷어내 조사하는 겁니다. 문화재청은 결국 복토 방식과 이전 방식을 결합하기로 했는데요. 즉, 마을 경계에 해당하는 환호와 집터 등의 주거지는 복토에 보존하고 고인돌 등 땅에 올라온 유적은 이전해 보존하기로 한 겁니다.
개발사업을 담당한 ‘강원중도개발공사’ 역시 개장 전까지 레고랜드 부지 위에 청동기 공원, 유적 박물관과 원삼국 공원, 그리고 전시관을 조성하겠다며 레고랜드 사업에 차질을 빚지 않는 방향으로 계획을 밝혔지만, 개장일 당일까지 공사비 281억 원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101기에 해당하는 고인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레고랜드 인근 강변에 가면 크고 작은 비닐하우스가 몇 동 지어져 있습니다. 기온변화가 심한 강원도에서 비닐하우스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이없게도 이 비닐하우스들의 정체는 고인돌을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3,000년은 족히 넘는 돌조각들과 고인돌이 버려지듯 방치되었습니다.
즉,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기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임시 보호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받고 있는 것이죠. 더구나 고인돌의 경우 땅에서 끄집어 올려 옮기는 과정에서 이곳저곳에 손상이 생겼고 이들을 시멘트를 발라 고정하는 등 다시 원형을 찾을 수 있을지가 더 의문스러운 상황입니다.
애초부터 이들을 보호할 계획은 있었는지 묻고 싶은 마음입니다. 개발이 우선이냐, 보존이 우선이냐는 일도양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한 숙제고 수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재와 유적지를 보존하는 것 또한 중요한 숙제입니다. 개발과 보존이 양립할 수 있다면 가장 훌륭한 답이겠지만 레고랜드 사태에서는 분명 보존이 홀대받았습니다.
어차피 늦어진 마당에 개발을 아주 조금 늦추고 보존방안을 마련해 유적공원이나 전시관 등을 완성했다면 이 공원과 전시관을 찾는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무렇게나 방치된 고인돌과 유물을 보존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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