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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는 왕가의 며느리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광해군의 왕비, 폐비유씨의 삶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폐비 유씨(1576년~1623년)는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의 왕비로 ‘문성군부인’이라고 불렸으며, 남편이 왕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왕비로 기록되지 않습니다.

본관은 문화이며, 판윤 유자신과 어머니 동래 정씨 사이에서 6남 4녀 중 3녀로 태어나 1587년(선조 20년)에 선조의 차남 광해군의 아내로 간택되어 문성군부인에 봉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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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유자신은 장인이 된 후 높은 관직에 올랐고, 그녀의 형제들은 혼맥으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보이면서 유씨 가문은 선조, 광해군 시대에 대표적인 외척 가문이 됩니다.

참고로 유씨의 오빠이자 장남 유희갱은 성종의 아들인 봉안군의 증손녀와 혼례, 4남 유희발은 인순왕후의 조카사위, 5남 유희량은 중종의 딸 숙정옹주의 손녀사위였으며, 6남 유희안의 장모는 중종의 딸인 의혜공주의 손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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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피난을 가게되고, 대신 나라를 이끄는 명분으로(분조) 광해군이 왕세자로 책봉되자 그녀는 왕세자빈에 오르게 됩니다.

광해군은 선조가 피난 가고 없는 조선을 지키며 분전했고, 세자빈 유씨 역시 남편과 같이 고생을 하며 국난의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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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란이 끝난 후, 광해군을 아낀 선조의 정비 의인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새롭게 간택된 인목왕후가 왕비에 오르게 되고, 1606년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낳으면서 정국이 요동치게 됩니다.

자신의 자격지심으로 광해군을 내심 탐탁지 않게 여기고 미워하던 선조는 어린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의지를 보이지만 1608년 갑작스럽게 지병이 악화되어 승하하면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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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광해군은 34세였으며, 왕비에 책봉된 유씨는 33세였습니다.

왕비에 오른 뒤, 유씨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남편의 재위 기간 수많은 옥사가 일어나고,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그녀는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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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광해군은 수많은 후궁들을 들였으며, 권력욕을 보인 상궁 김개시를 총애하고 측근 정치를 하면서 총명했던 그의 눈은 가려지고 정권은 점점 부패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인지 야사에 따르면 왕비는 불교를 신봉했고, 다음 생에는 왕가의 며느리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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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1632년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이 인조반정을 일으키게 되고, 광해군은 반정군에게 사로잡혀 폐위되어 일개 왕자의 신분으로 격하됩니다.

반정 당일 왕비는 혼란한 상황을 틈타 궁녀들과 함께 창덕궁에 있는 어수당에 숨는데 성공하지만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투항을 하게 되면서 그녀 역시 폐비가 되어 군부인으로 신분이 낮아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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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폐비 유씨는 남편 광해군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지만, 광해군이 총애하던 후궁 중 하나인 소용 임씨가 시중을 든다는 명분으로 같은 곳에 머물렀기에 그녀의 마음 한 자락마저도 편치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강화도 다른 위치에 유배된 아들 폐세자 이질과 며느리 박씨가 땅굴을 파고 도망을 치다 실패하면서 박씨가 비관해 먼저 자결하고, 폐세자는 자결을 명 받아 죽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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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폐위된 광해군은 유배생활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한창이었던 폐세자 부부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탈출을 꿈꿨던 것입니다.

결국 이해 음력 10월 8일 폐비 유씨도 폐위된 지 7개월여 만에 화병으로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요. 불교를 믿었던 그녀가 아들의 명복을 빌며 49재를 지낸 뒤 삶의 끈을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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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의 죽음이 조정에 전해지자 인조는 안타까워하며, 경기도 양주 적성동에 장사를 지내게 했는데 무덤은 왕비가 아니었기에 왕릉으로 조성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홀로 끈질기게 목숨을 부지하던 광해군이 6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유배지인 제주도에 묻혔고, 인조 21년 그녀의 곁으로 이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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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광해군묘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에 있으며, 현재 사적 제36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공빈 김씨의 발치에 묻어달라’ 했던 광해군의 유언대로 공빈 김씨의 무덤인 성묘 인근에 위치한 광해군의 묘는 부인인 폐비 유씨와 나란히 잠든 작고 초라한 무덤으로 상석과 향로석, 비석만이 쓸쓸하게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안타까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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