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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장수할 것” 그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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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드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증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모든 수분이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는 마른 손으로 증손녀를 쓰다듬는 손길과 숨결에는 따스한 사랑이 듬뿍 담겼는데요. 2022년 초 틱톡에서 화제가 됐던 이 할아버지의 이름은 ‘루앙 타’. 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노승입니다. 손녀가 이 영상을 틱톡에 게시하고 나서 한 달 뒤, 그는 노환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는데요.

일각에서 이 할아버지가 163세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정확한 나이는 109세입니다.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나이는 아니지만 인간이 109세까지 생존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100세가 되기 전에 세상과 이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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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인이 전 세계 인구 중 저 꿈같은 나이에 가장 근접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2017년 2월 영국의 세계적인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세계보건기구와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이 OECD 35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것인데요.

2030년에 태어나는 한국 여성의 기대 수명은 98.2세, 남성의 기대 수명은 84.07세로 남녀 모두 세계에서 가장 기대 수명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대 수명 90세는 ‘인간의 한계’라고 불리는데요. 조사 대상국 중 기대 수명이 90세를 넘는 집단은 한국 여성뿐이었죠. 과학적으로 한국인이 최장수 국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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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역시 이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한국을 5대 장수 국가로 뽑았는데요. 한국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뒤로 스위스 싱가포르 스페인 일본을 선정했는데요.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여성은 기대 수명이 90세를 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이다. 한국인이 찜질방에 모여 여가를 즐기기 때문이다”라는 전문가 의견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찜질을 즐기기 때문에 장수한다는 말이 다소 엉뚱해 보일 것입니다. 이는 거짓이 아닙니다. 찜질방 그리고 찜질방의 구조가 장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한 건축가는 이를 자기 건축기법에 투영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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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조선을 방문한 미국인 의사 호러스 알렌은 20여 년간 조선에 거주하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해 <조선견문기>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는 재미있는 내용이 남아 있는데요.

100년 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난방 장치를 가진 나라였다. 농부나 일꾼 이 사는 집이 아무리 누추하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깔끔한 작은 침실이 달려 있었다. 진한 갈색의 유지가 발린 구들과 시멘트로 된 방바닥은 하루에 두 번씩 밥을 하기 위해 피우는 불 때문에 항상 따뜻했다. 일본의 집은 춥기로 유명하고, 유일한 난방 시스템은 손가락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화로가 전부이다. 또 중국의 집은 몹시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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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여행가인 헨리 노먼은 조선을 여행하는 동안 놀랍고 아름다운 이 나라를 매우 칭찬했습니다. 그가 남긴 기록에는 “조선의 수도인 서울은 베이징과 비교하면 천국이라고 쓰곤 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그가 경험한 한국식 난방 장치인 온돌 문화를 아주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또한 그는 20여 년간 한국에 거주하면서 서양에는 존재하지 않는 한국만의 독특한 난방 장치에 푹 빠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온돌이 ‘Ondol’이라는 고유명사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온돌이 한국의 바닥 난방 장치라고 설명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돌에서 출발한 난방 장치는 흙침대, 돌침대, 숯침대 등 다양한 건강 침대와 옥매트, 옥돌 매트 등 의료용 온열매트로 진화했습니다. 이어서 온돌을 기반으로 한 ‘찜질방’이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여가 문화공간이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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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한국의 온돌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린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건축가입니다. 2016년 일본에서 출간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소설은 마쓰이에 마사시라는 늦깎이 작가의 첫 작품입니다. 이 작가는 오랜 편집자 생활을 접고 문단에 등단했는데요.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제64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소설은 갓 대학을 졸업한 주인공이 자신이 원하던 건축사 사무소로 출근하며 시작되는데요. 이 소설이 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는 극한의 몰입감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실존했던 건축가가 소설에 등장하기도 하죠. 작중 인물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건축가도 등장하는데요. 그는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로 불렸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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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소설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무렵 마흔이 된 라이트는 고객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위스콘신에 탈리에신(웨일즈어로 ‘빛나는 이마’)이라는 작업실을 짓고 애인과 함께 정착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그가 유럽 출장을 떠난 어느 날 그의 고용인이 탈리에신을 불태우고 가족을 몰살하는 비극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삶의 목표를 잃고 죽은 사람처럼 지내던 그를 구원한 것은 일본 도쿄 호텔 설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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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호텔 설계 부분부터는 팩트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그에게 호텔 설계를 맡긴 인물은 오쿠라 기하치로라는 재벌이었는데요. 그저 그런 건축물이 아니라 일본에서 가장 좋은 호텔을 싶다며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은 지금도 도쿄 최고급 호텔로 꼽히는 임페리얼(데이고쿠) 호텔입니다. 여기서 오쿠라가 재벌이 된 배경과 임페리얼 호텔이 지어지는 과정에 한국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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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라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과 동시에 개항된 부산으로 들어와 잡화점을 시작으로 금융, 건설, 압록강 벌목으로 떼돈을 번 인물입니다. 그는 그 돈으로 조선의 문화재를 닥치는 대로 긁어갔는데요. 덕수궁 석조전도 그의 작품이고, 서울 용산의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도 그가 설립했죠. 조선총독부에 줄을 대 벌어들인 돈으로 그가 일본에 가져간 문화재는 웬만한 박물관 하나를 빼곡히 채우고도 남는 양이어서 오쿠라 컬렉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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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일본으로 가져간 문화재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복궁에 세워졌던 자선당입니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식민 통치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로 궁궐 전각을 헐어냈는데요. 오쿠라는 테라우치를 종용해 세자와 세자빈이 머무는 동궁을 뜯어 도쿄로 가져갔고, 그 전각을 자신의 저택으로 이축해 뜰에 세워 두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오쿠라가 데이고쿠 호텔 설계를 의뢰하기 위해 라이트를 도쿄로 초청한 것이 그해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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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는 오쿠라 및 담당자와 원만하게 설계 협의를 마친 후 만찬을 들기 위해 오쿠라의 다다미방에 들어섰는데요. 거기서 그는 극한의 추위를 경험합니다. 그는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방에서 음식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오들오들 떨다 일어섰죠. 그 모습이 미안했는지 오쿠라는 ‘코리안룸’이라 쓰인 곳으로 라이트를 안내하고 따뜻한 커피를 대접했는데요. 그 자리에서 라이트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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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갑자기 바뀐 것 같았다. 결코 커피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봄이 온 듯했다. 우리는 곧 몸이 따뜻해졌고 다시 즐거워졌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훈훈함이 감돌았다. 눈에 보이는 난방시설도 없었고 어떻게 난방이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건 정말이지 난방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기후적 사건이었다.” 이 문장은 후일 라이트가 자서전에 ‘중력 난방(Gravity Heat)’이라는 챕터까지 두고 쓴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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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룸의 기적을 경험한 그는 하버드대 출신 통역관을 이어 이 난방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고, 방바닥 아래에서부터 난방을 시작하는 한국식 온돌 시스템을 알게 됐습니다. 연기와 열기가 바닥을 통과한 후 높은 굴뚝으로 올라가 집 밖으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이 건축가 라이트의 눈에는 대단한 발견이 아닐 수 없었죠.

데이고쿠 호텔은 라이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1923년 9월 1일 발생한 도쿄 대지진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폐허가 된 도쿄 시내에 우두커니 선 호텔을 설계한 그의 명성이 높아지지 않을 이유가 없죠. 라이트는 이런 데이고쿠 호텔 욕실 바닥에 사상 최초로 온돌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그는 데이고쿠 호텔 모든 욕실 바닥 아래 전기 난방장치를 넣도록 조치했는데요. 맨발로 욕실에 들어서는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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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서양식 난방 시스템은 라디에이터를 두어 공기를 데우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한국식 온돌 시스템은 바닥을 데우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온돌은 몸에 먼저 열이 가해진 후 더운 공기가 위로 상승하는 ‘대류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한 효율적인 난방 장치인데요. 데이고쿠 호텔에서 기적을 경험한 그는 이후 자신이 설계한 제이콥스 하우스에 이 기술을 적용했고, 이후 건축업계에서 본격적으로 한국식 난방 시스템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이콥스 하우스를 설계할 당시 그는 “한국 난방 방법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소? 주택에 이런 난방 방법을 시도한 최초의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소?”라며 제이콥스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미국 내 최초의 한국 난방 방법이 적용된 건물이 들어섰고 이는 세계적인 트렌드로 확산됐습니다. 라이트는 이후 13개의 건물에 이 기법을 적용해 건물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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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인의 최장수 비결로 꼽힌 찜질방은 한국인의 수명과 관련이 있을까요? 보통 반신욕은 장수하는 사람의 공통적인 건강 관리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혈액 순환을 원활해지며 통증이 줄어들고, 체온이 높아져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죠. 반대로 체온이 낮아지면 몸의 기능과 면역력이 떨어집니다. 혈액 순환도 잘되지 않으며 체온이 많이 낮아지면 저체온증이 나타납니다.

일본의 암 전문의 요시미즈 노부히로는 그의 책 <암 환자를 구하는 제4의 치료>에서 암 환자 대부분이 저체온 상태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우리 조상들 역시 몸을 차게 하는 것이 만병의 근원임을 깨닫고 다양한 방법으로 몸을 따뜻하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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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체온이 1도 올라가면 면역력이 10배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는 혈액순환과 관련이 있습니다. 체온 상승은 혈액순환 개선을 불러오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면 세포 활동이 촉진됩니다. 인체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므로 건강이 향상되는 것입니다. 체온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신욕처럼 몸 전체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인데요. 온돌 시스템은 바닥으로부터 난방이 시작되며, 우리 몸은 항상 바닥에 닿아 있기 때문에 온돌은 체온 상승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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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이 온돌 시스템은 최소 고조선 시대, 이르게는 수백만 년 전부터 유래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구들이나 온석을 이용했으리라 추정하는 것이죠. 실제로 강원도 강릉과 충북 단양에서는 구석기 중기부터 후기시대로 여겨지는 유적지가 발견됐는데요. 그곳에는 진흙과 돌로 지어진 부뚜막 자리가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

문헌상 기록으로도 기원전 300년에 이미 온돌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우리 조상은 최소 2300년 전부터 온돌을 사용한 겁니다. 우리 조상 또한 늘 체온이 높은 상태를 유지했을 것이고 그렇게 수천 년을 보낸 우리의 DNA 속에 장수의 비결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김치나 된장, 간장 등과 같은 식재료도 한몫했겠지만, 아랫목의의 따뜻한 기운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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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에게 한국식 온돌 난방을 경험하게 했던 자선당은 오쿠라에 의해 그의 도쿄 저택으로 이축됐습니다. 하지만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건물은 불타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았습니다. 그러다 1993년 김정동 목원대학교 명예교수가 오랜 연구 끝에 오쿠라 호텔 내 정원 산책로에 주춧돌이 깔린 것을 알아냈습니다.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이 주춧돌은 1995년에 한국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총 288개의 주춧돌 110톤 분량이 반환되어 경복궁으로 돌아왔으나 이 돌은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불에 타 푸석푸석해진 주춧돌은 제 구실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건천궁 옆 녹산에 버려진 상태로 허망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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