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당시 중국 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중국 장시성을 시찰하던 중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 그 당시에는 이게 말이야 방귀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덩샤오핑의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이었는지 전 세계는 매일, 매달, 매년 깨닫고 있습니다.
중동이 석유라는 자원으로 전 세계를 쥐고 흔드는 것처럼 중국 역시 희토류가 중요해지는 시기가 오면 이를 이용해 전 세계를 쥐고 흔들겠다는 이빨을 처음으로 드러낸 발언이기도 하죠. 희토류는 쉽게 말하면 자연계에 매우 드물게 존재하는 금속원소입니다. 지구의 껍질 속에 드문드문 분포된 원소기호 57번 란타넘부터 71번 루테튬까지 15개 원소와 21번 스칸듐, 39번 이트륨 등 총 17가지 원소를 말합니다.
이들은 여러 금속에 아주 적은 양만 첨가해도 성능을 크게 향상시켜 ‘4차 산업계의 조미료’로 불리죠. 특히, 영구 자석, 전기차 배터리, 세라믹, 스마트폰, 의료기기뿐 아니라 미사일, 위성, 레이더 시스템 등 국방 산업의 필수 자원이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전략 자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60%, 가공의 87%를 중국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며, 더 큰 문제는 다른 국가들은 희토류 생산 과정에서 먼지와 중금속, 방사성 물질이 배출되는 탓에 자체 생산을 꺼리고 있지만 중국에는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외교적 마찰을 빚을 때마다 희토류 수출 제한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어 상대방을 굴복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중국산 희토류를 아예 쓰지 않기로 한 겁니다. 불과 3일 전 현대자동차그룹은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희토류를 원료로 사용하지 않는 전기차 모터 개발에 나서겠다고 천명했습니다.
희토류는 전기차의 모터 제작에 필수적인 자원이지만 조달 물량의 거의 100%를 중국에서 수입하다 보니 국제정세의 영향을 크게 받았죠. 또한 중국이 심심하면 희토류를 무기 삼아 수출 규제 카드를 들고 갑질을 일삼다 보니 아예 중국 희토류에 기대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전기차 모터를 개발하기로 한 겁니다.
이미 현대차는 작년부터 설계 인력을 대거 보강해 네오디뮴, 디스프로슘, 터븀과 같은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권선형 회전자 동기모터’ 개발에 나섰는데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그 결과물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중국의 희토류 갑질에 뿔난 건 현대차뿐만은 아닙니다.
이미 BMW나 테슬라 등도 희토류 없는 모터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만약 이 모터가 등장하는 순간 중국의 설 자리가 급격하게 쪼그라들 것이고 적어도 희토류에 있어서 자동차 업계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 기술과 관련해서는 아래에서 조금 더 살펴보는 것으로 하고 우선 중국이 언제부터 희토류 무기화에 나섰는지를 좀 살펴볼까 합니다.
중국이 최초로 희토류라는 칼날을 외교무대에서 휘두른 상대방은 일본입니다. 센카쿠열도 분쟁이 원인이었죠. 센카쿠열도는 일본과 중국이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입니다.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중국이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영토였다며 소유권을 주장해 분쟁지가 됐죠. 사건은 2010년 9월에 발생했습니다.
9월 7일 일본의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센카쿠열도 주변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을 나포하고 중국인 어부를 구속한 일이 있었는데 중국은 즉각 반발해 그간 열심히 벼린 칼을 들고나왔습니다. 바로 희토류죠. 중국은 어부를 석방하지 않는다면 일본에 희토류를 수출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놨습니다. 일본은 어부를 석방했을까요?
네, 맞습니다. 일본은 희토류 수출 금지 단 3일 만에 구속된 중국인 어부를 풀어줬죠. 일본은 전통적으로 자동차, 전자기기 등 희토류를 필요로 하는 산업이 큰 생산국이기 때문에 중국의 희토류 칼날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1992년 덩샤오핑이 장시성에서 희토류 무기화 가능성을 언급한 후 즉시 내몽골 자치구의 바오터우시에 ‘희토고신기술산업개발구’가 들어섰고 관련 연구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일본과의 이 사건이 트리거가 됐습니다. 중국은 이 일을 계기로 전 세계에 과시라도 하듯 수출 쿼터를 40% 이상 감소시켰고 국제 희토류 가격은 쿼터 직전보다 무려 16배 상승해 버렸죠.
그리고 10년 뒤, 2020년에는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시작하자 즉각 국가의 이익과 관련된 물품에 대한 수출은 국가가 통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수출통제법을 만들어 언제라도 무기화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 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하나 있습니다.
2010년 중국이 대일 희토류 수출 금지 카드 들고나왔을 당시 일본은 단기적으로는 중국에 무릎 꿇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희토류에 대한 탈 중국을 시도했죠. 호주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대체 기술 등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일례로 도요타는 네오디뮴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인 신형 자석을 개발해 냈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2016년에는 생활가전에서 나오는 모터에서 네오디뮴을 회수하는 기술을 개발해 자석 회수를 통해 네오디뮴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10년 85%에 이르던 대중국 희토류 수입 규모가 2014년 59.6%까지 낮추는 데 성공, 희토류 자립까지는 아니지만 과도한 의존도를 낮춰 해결책을 찾아냈죠.
그래서 한국 역시 희토류 패권을 쥔 중국으로부터의 탈주를 적극 시도해야 하고 현대차가 선봉에 섰습니다. 우선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호주와 손을 잡았죠. 지난 2022년 11월 현대차 그룹은 호주의 희토류 기업인 ‘아라푸라 리소시스’와 연간 1,500톤에 달하는 희토류 산화물을 7년간 공급받기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호주는 한국의 광물자원 1위 공급국이자 1년 광물 수입액만 20조 원에 달합니다. 특히 한국이 탄소중립을 위해 지정한 6대 핵심 광물인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희토류, 백금족 중 호주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리튬, 니켈, 코발트 매장량 세계 2위를 자랑하죠.
아라푸라 리소시스는 호주의 놀란스 희토류 광산을 소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전기차 모터의 회전자 영구자석의 핵심 원료인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 산화물이 생산됩니다. 전기차 한 대당 약 3kg 정도 사용되는 희토류를 매년 1,500톤씩 7년간 공급받기로 한 만큼 적어도 7년은 중국에 굴욕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없어졌죠.
그런데 현대차는 아예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모터 개발에도 나섰습니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한 현재 전기차 배터리에 없어서는 안 될 희토류가 중국의 갑질 한번으로 출렁이는 데다 배터리 업체들은 이렇게 상승한 인상분을 완성차에 전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토류 중 네오디뮴은 강한 자성을 띠는 물질로 여기에 극소량의 디스프로슘과 터븀을 섞으면 섭씨 200도의 고온에서도 자성을 유지합니다. 현대차를 포함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의 심장으로 불리는 구동 모터에 네오디뮴을 이용한 영구자석을 사용하죠. 보통 회전 부분에 영구자석을 두고 회전자 주위에는 코일을 감아 만든 전자석을 배치해 모터를 구동시킵니다. ‘영구자석 동기모터’ 방식이죠.
하지만 여기에는 네오디뮴 등의 희토류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아예 회전자 부분에 영구자석 대신 전자석을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네오디뮴 등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이런 계획은 중국의 영향으로 네오디뮴의 경우 중국은 전 세계 채굴량의 58%, 제련의 90%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싸운다는 명목하에 중국은 희토류 자석 수출 금지 카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자칫 전기차 생산을 계획 중인 완성차업체들에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비단 현대차뿐 아니라 BMW와 테슬라도 무 희토류 모터 개발을 진행 중인데 BMW는 현대차와 동일한 권선형 회전자 동기 방식의 모터를 이미 전기차 i4에 채택했습니다.
다만 이 모터의 수명이 짧고 에너지 손실이 커 영구자석 방식보다는 현재로서는 비효율적입니다. 현대차가 어느 정도 이 문제를 극복하느냐가 성패를 가르게 될 텐데요. 아마 많은 분이 현대차가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에 한국 기업이 제대로 만들기나 하겠냐며 비아냥대는 분들도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이는 한국의 엔진 설계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비판입니다.
일례로 HD한국조선해양의 경우 선박 엔진 분야 글로벌 점유율 1위 회사입니다. 자회사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는 대형선박의 추진용 주 엔진과 발전용 보조엔진을 제작하는데 2022년 기준 전 세계 대형엔진 시장 점유율 36%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죠. 1989년 이후 34년째 1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있습니다.
선박용 엔진의 경우 선박 원가의 약 10%를 차지하는 핵심 기관으로 이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선박의 운행은 불가능합니다. 1979년 첫 대형엔진을 생산하고 10년 만에 세계 1위에 올라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죠. 여기에 얼마 전에는 STX중공업을 인수해 국내 주요 엔진 기업 HD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 HSD엔진, STX중공업, STX엔진 4곳 중 2곳을 확보하게 됐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최근 전 세계 선박 시장이 기존 벙커C유 등 화석연료에서 LNG 및 메탄올 등 친환경 연료로 재편되는 상황입니다. 특히 LNG보다 더 친환경적인 것으로 알려진 메탄올추진선의 경우 선박 건조도 선박 엔진도 한국이 독보적입니다.
HD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의 경우 대형 컨테이너선 추진용 메탄올 엔진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차기 격전지인 메탄올추진선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죠.
이렇듯 한국은 복잡하기로 소문난 엔진 분야에서 꽤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현대차그룹이 계획 중에 무 희토류 모터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꼭 성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희토류의 탈 중국이 성공하는 날 다시 한번 영상으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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