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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폄하하기 위해 일본이 퍼뜨린 주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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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인가 해외 사이트에 떠돌기 시작한 한국 사진 한 장, 100여 년 전의 한국! 함께 올라온 글에 따르면 구한말 길거리 사진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이 사진에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사진 곳곳에 쳐져 있는 빨간 동그라미들. 게시글 작성자는 이 빨간 동그라미가 모두 인분이라는 충격적인 설명을 적어두었습니다.

이 사진이 퍼져나가게 되며 사진은 한국을 비하할 때 주로 쓰이게 되었는데요. 한국 커뮤니티에도 이 사진이 알려지며 이런 부분은 정말 부끄럽다는 네티즌들이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한국인들은 이 사진을 100% 믿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구한 말이라지만 길거리에 배설물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게 말이 되냐며 사진을 굉장히 의심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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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의심이 진짜 사실이었습니다. 최근 이 사진의 정체가 밝혀졌는데요. 역시나 이 사진은 조작된 사진이었습니다. 우선 이 사진이 주작인 이유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부가 설명 없이 그냥 사진의 원본만 봐도 주작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빨간 동그라미 속 인분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대부분 돌이나 돌부리에 파인 부분이었습니다.

인분인지 뭔지 구분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았는데요. 심지어 하단부는 원본 사진에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즉, 합성된 부분이죠. 악의적인 합성까지 해서 인분이 널브러져 보이게끔 조작해 놓은 사진이었습니다. 한국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겠다는 악의적인 의도가 뻔히 보였는데요.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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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누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거짓 사진을 유포한 걸까요? 조작된 구한말 사진이 유포되기 시작한 곳, 2CH. 일본을 대표하는 극우 사이트입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곳인데요. 2CH에서 만들어진 조작 사진이 해외로, 그리고 우리나라로 퍼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사진을 보고 진짜로 믿는 사람이 생겨났는데요. 그렇다면 구한말 길거리에 인분이 없었던 것일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조선시대에도 대소변을 보기 위한 장소가 따로 존재했습니다. 상류층에서는 측간이라 불렸고, 서민들에게는 뒷간이라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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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때는 측정, 고려시대 때는 측두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한국 역사에는 대소변을 보기 위한 공간이 시대에 따라 불리는 명칭이 다를 뿐 존재해 왔습니다. 즉, 한국에는 과거부터 화장실과 같은 공간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래서인지 비슷한 시기 다른 구한말 길거리 사진을 보면 길거리가 꽤 깨끗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모인 대소변을 밭에 거름으로 주는 등 나름대로 분뇨처리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구한말 해당 사진의 배경인 서울에서는 실제로 인분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한양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고 대로변까지 불법 민가가 들어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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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만 하더라도 한양의 인구는 10만 명, 후기에 들어서면서 20만 명을 넘겼습니다. 이때도 수도의 인기는 핫했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한정된 땅에 인구만 자꾸 밀려들다 보니 문제가 터지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야 분뇨를 비료로 사용하면 됐지만 도시 안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양 사람들은 분뇨를 바짝 말린 뒤 인근 채마밭에 팔아서 처리해 왔는데요. 하지만 이건 대소변이 적당히 있어야 가능한 일. 당장 뒷간이 차고 넘치는데, 처리 방법은 너무나 오래 걸리자, 대소변을 하천에 투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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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하천은 오염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러다 장마철에 물이 범람하면 거리 곳곳에 인분이 번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을 실제로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이 문제를 지적했었는데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의 저자 영국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조선을 방문한 후 이런 후기를 남겼다고 합니다.

‘난 베이징을 보기 전까지 한양이 가장 더러운 도시고 샤오싱을 보기 전까지는 가장 냄새나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조선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조선을 한껏 느낀 영국 화가 새비지 랜도어는 ‘한양의 여름은 비 덕분에 오물이 씻겨서 지낼 만하고 겨울에도 오물이 얼어붙어서 괜찮지만 봄에는 오물들이 녹아 풍기는 냄새 때문에 코를 없애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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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외국인들이 남긴 말도 비슷했습니다. 혹시나 이 외국인들이 그냥 조선이 싫어서 악의적으로 말한 게 아닐까 생각이 되지만 그들이 남긴 다른 기록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새비지 랜도어는 조선 사람들의 훌륭한 성품을 언급하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서양인들보다 더 문명화되었고 더 자유롭다며 자신들에게는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조선 사람들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었습니다. 그만큼 당시 한양의 인구밀도 문제로 벌어지는 오물 문제가 심각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나 이 문제는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서양도 과거 마찬가지로 이런 문제를 겪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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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동양이 서양보다 역사적으로 깨끗한 분뇨처리 시스템을 더 일찍 갖춘 편입니다. 17세기 스페인에서는 밤만 되면 길거리에 요강을 비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차가운 밤공기에 분뇨의 악한 기운이 날아간다고 믿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 보니 아침이 밝아오면 밤새 버린 오물들이 길거리에 말라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밤만 되면 요강을 비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때 밖에 나가서 살포시 버렸으면 좋았겠지만 2층에서 오물을 그냥 길가에 투척하는 노양심들이 꽤 있었다고 하는데요. 윌리엄 호가스의 ‘그때 그 시절’ 삽화를 보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서양은 과거에 오히려 동양보다 분뇨처리 시스템이 열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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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화장실이 많이 생기게 된 것인데요. 그리고 이런 조작 사진을 올린 일본도 저 시대에는 똑같았습니다. 오히려 기록을 보면 일본이 더 심각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일본 에도시대 작가 교큐테이 바킨의 기행문 ‘기여만록’에 따르면 ‘두세 명의 일행이 지나가며 길바닥 소변통 앞에 서서 엉덩이를 뒤로 빼고 소변을 보는데 창피한 기색도 없고 웃는 사람도 없었다.’ 오야마다 토모키오의 ‘송옥필기’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길거리 노상 방뇨는 시골뿐만이 아니라 교토, 오사카에서도 흔한 일이다.’ 즉, 에도 시대 길거리 배변 문제는 일본 사회에서도 일본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에게도 충격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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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후기에 한양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다 보니 벌어졌던 일이었지만 일본은 전국적으로 저런 문제가 발생했었습니다. 사실 일본은 자신들이 숨기고 싶었던 풍습을 한국에 덮어씌운 게 아닐까 싶은데요. 일본의 이런 주작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인터넷을 하다가 한 번쯤 보셨을 만한 한국에 대한 사진인데요. 어정쩡한 포즈에 맹한 느낌을 풍기는 고종의 사진, 힘없이 앉아있는 고종의 아들 영친왕의 사진. 두 사진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은 힘이 없어 보인다는 건데요. 일제강점기 시기 남겨진 사진들은 거의 이런 느낌의 사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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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진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하는 사진이 나타났습니다. 서양인 학자 퍼시벌 로웰이 찍은 고종의 사진. 여기에 찍혀 있는 고종의 모습은 전혀 약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일본이 조선 왕실을 찍은 사진을 보면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 느낄 수가 있는데요. 조선은 힘이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일본은 자국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을까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게 주작이었습니다. 포토샵도 없는데 어떻게 조작하냐 싶지만, 일본은 그게 가능했습니다. 보시는 사진들은 일본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조작한 사진들인데요. 놀랍게도 이 방법이 밝혀진 건 일본 방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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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특집 방송이라고 준비한 것 같지만 이 방송으로 인해 일본은 포토샵이 없던 시절에도 사진 조작이 가능했다는 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본 왕의 사진도 조작, 아니 포토샵을 한 사진이었습니다. 솔직히 이 사진은 누가 봐도 보정이기는 하네요.

그런데 조선에는 이런 기술이 전혀 필요하지 않고 일본의 조작까지 통하지 않는 인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종의 아들 의친왕 이강, 윤현궁의 오라버니 이우! 오늘부터라도 일본인들의 이런 조작 사진을 믿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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