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미주의입니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일본의 영웅이 된 ‘도고 헤이하치로’… 그런 그의 옆에서 수복이 되어 최대 공로를 세운 ‘사토 데쓰타로’는 도고 헤이하치로만큼이나 일본에서 유명한 군인인데요. 당연히 일본인들은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토 데쓰타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책을 발간하면서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그가 옆에서 직접 지켜보고 일본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인 도고 헤이하치로가 아니었습니다. 사토 데쓰타로가 발간한 책의 제목은 <이순신 홀로 조선을 구하다>였습니다.
말년에 일본 메이지 시대 전쟁사 연구의 대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사토의 저서인 <제국국방론>, <제국국방사론>에 이런 표현들이 자주 나옵니다. “이순신 장군은 영국의 넬슨 제독을 넘어선 동서 해장 중 제1인자다.”
16세기 조선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조선의 지킨 구국의 영웅인 우리의 이순신 장군님은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매년 부동의 1위를 지킬 만큼 인지도가 엄청난데요. 그런데 놀랍게도 일본도 한국만큼이나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인지도가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하긴 일본 역사에 길이 남을 패배를 남겼던 인물이니… 다들 그를 미워해서 기억하는 건가 했는데, 일본에서의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인식은 한국인들이 상상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는 한국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경우가 정말 드뭅니다. 그런데 일본 교과서에 절대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님입니다. 거북선과 함께 말이죠.
일본 교과서에는 이순신 장군님에 대해 이렇게 기록이 되었습니다. “동양의 해상 영웅” 그리고 그의 일대기와 업적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는데요. 실제로 영화 명량에 출연했던 일본 배우 ‘다케다 히로미츠’도 “일본인의 대다수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잘 알고 교과서에 다뤄지고 있다.”라고 인터뷰했습니다.
일본의 우익들은 자신들의 교과서에 이순신 장군에 대한 내용을 이렇게나 자세히 다뤄도 되냐며 항의했지만, 여전히 일본 교과서에는 이순신 장군님에 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이순신 장군님에 대해 왜 이토록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걸까요?
이순신 장군님은 일본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갖추고 조선으로 쳐들어왔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전력으로 영화나 소설에 나올 법한 전투를 만들어냈습니다. 옥포해전, 한산도대첩, 명량대첩 등 기록만 봐도 믿을 수 없을 정도죠.
이순신 장군님이 남긴 업적은 도무지 신화 같아서 세계적으로 믿기 어렵다고 하는데, 일본은 실제로 이 일을 겪었던 나라여서인지 오히려 그런 이순신 장군님은 군신으로 여기고 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순신 장군을 전략적으로 세우기 위함이었다는 분석도 있는데요.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주 세력은 육군이었고, 해군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습니다. 해군이 약해지면 침략당한다고 주장했지만, 번번이 묵살되고 말았는데요. 이때 나라를 설득하기 위해 등장했던 것이 임진왜란의 이순신 장군 그리고 나폴레옹과 넬슨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나폴레옹에, 이순신을 넬슨에 비유한 것인데요. 즉, 히데요시도, 나폴레옹도 이순신, 넬슨의 해군에 패배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런 분석도 있다는 측면으로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들이 이순신 장군에게 참배했었다는 것입니다. 일본 해군 소장 ‘가와다 이사오’가 쓴 <포탄을 뚫고>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러시아 발틱 함대와의 일전을 앞두고 일본 병사들은 불안하고 초조해졌습니다. 그때 누구의 지시도 없었음에도 대부분의 일본 군함 갑판 위에 작은 제단이 만들어졌고, 곧이어 누군가를 향해 승리를 기원하는 엄숙한 참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곳에 모셔진 일본군의 수호신은 일본이 아닌 조선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혼령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일본군이 머물고 있던 해역은 일본이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했던 남해 바다 위였다고 합니다.
가와다 이사오는 이순신 장군을 이렇게 묘사했는데요. “조선에서 유일하게 청렴한 장군이었고, 충성심과 전술 및 전략 운영 능력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그런데 러일전쟁에서 도고 헤이하치로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전쟁 영웅으로 거듭나자, 일본에서 이순신 장군의 인기가 조금은 사그라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일본에서 도고 헤이하치로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이순신 장군님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순신 장군님의 존재가 일본에 알려지게 된 시기는 과연 언제일까요?
당연히 임진왜란 직후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정답이 아닙니다. 1695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약 100년이 흘렀을 때 일본에서 한국의 책 한 권을 훔쳐다가 일본어로 번역해서 출간했는데요. 그 책은 바로 <징비록>이었습니다. 류성룡이 임진왜란 발발 당시 전황을 수기한 책으로, <난중일기>와 함께 자세한 묘사가 적힌 저술인데요. 
일본어판 조선 <징비록>이 일본 독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늘어나며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일본에서 이순신 장군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역사가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잊혀지기 마련인데, 지금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이순신 장군은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현재까지 일본에서 이순신 장군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에는 ‘시바 료타로’가 한몫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국민 작가 시바 료타로의 작품 <언덕 위의 구름>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자세히 다뤘기 때문인데요.
이 작품은 2,000만 부 이상 누적 발행되었고, 2009년 드라마로 만들어진 인기 작품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넬슨 장군 이전의 유일한 명장이며, 존재 자체가 기적인 인물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은 “왜구는 교활한 짐승”이라고 그렇게나 비난했던 인물인데, 일본에서 이렇게나 참배하고 존경하는 인물로 자리 잡게 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인데요.
가와다 이사오 “조선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까마득히 잊혀졌지만, 일본에서는 그를 존경하여 메이지 시기 신식 해군이 창설되었을 때 그의 업적과 전술을 연구하였다…”
시바 료타로 “동양이 배출한 유일한 바다의 명장”
오가사와라 나가라리 “치밀한 수학적 두뇌에 장군다운 그릇을 갖춘 인물”
그리고 일본 나고야 박물관에 가면 이순신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박물관의 역사가 참 특이한데요. 나고야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만들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나고야 박물관은 일본에서 최초로 임진왜란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며 일본인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침략의 발원지가 어느새 두 나라의 우호 교류센터로 변한 것이죠.
그리고 이순신 장군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 한 가지가 인터넷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요. 일본의 군신 도고 헤이하치로가 “나를 바다의 신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건 잘못된 사실입니다. 어떤 매체에도 공식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죠.
이순신 장군님은 일본인이 가장 미워하는 인물일 줄 알았는데,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다니… 이 사실이 정말 놀라운데요. 일본에 가게 된다면 나고야 박물관에 있는 이순신 장군님을 꼭 한번 만나 뵙고 싶네요. 지금까지 재미주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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