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물량을 헐값에 땡처리 하면서 기아의 ‘브랜드 가치 제고’라는 본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죠. 그 아쉬움은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달래줬습니다.
2006년 등장한 신형 ‘뉴 오피러스’는 분할된 헤드램프와 보수적인 터치 등 전작의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과한 디테일을 단정하게 정리해 한층 더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인상으로 거듭났어요. 적은 변화였지만 인상이 확연하게 달라졌는데요.
전작의 ‘괴랄한 그릴’을 폭포수를 연상시키는 세로형 패턴으로 깔끔하게 수정해 전면부의 이미지가 단아해졌고요. 상대적으로 변화가 미미했던 측면은 트렌드에 맞게 크기를 키운 17인치 알루미늄 휠과 번쩍이는 크롬 휠로 신선함을 더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뒷모습’이었는데요.
옹졸해보였던 가로형 리어램프를 ‘세로형 LED 테일램프’로 바꾸고 듀얼머플러를 기본 적용해 xktkdml 플래그쉽 세단에 밀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후면부로 거듭났죠. 특유의 ‘3박스 세단 스타일’과 세로로 긴 리어램프가 조화를 이루면서 ‘벤틀리 플라잉스퍼’, ‘링컨 타운카’ 등 해외 럭셔리카들과 더욱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어요. 오피러스라는 브랜드가 국내에서 어느정도 자리잡았다고 판단했는지 차명 표기를 없앴고요. 상위모델인 ‘GH330’과 ‘GH380’은 이렇게 레터링이 붙어있었던 반면 주력 트림인 2.7L 모델은 아예 아무것도 붙이지 않아 깔끔한 모습이었던 게 기억에 남네요.
전장도 20mm 늘려 정확히 5m에 맞췄는데 여전히 길이는 반체급 아래였지만 직선을 강조한 에쿠스나 체어맨에 비해 볼륨감이 돋보여 실제 수치보다 커보였습니다.
이 달라진 디자인은 대부분의 자동차 전문 매제와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얻어냈고 판매량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그야말로 ‘성공적인 페이스리프트’였죠. 변화의 물결은 실내도 이어졌습니다. 기존의 고풍스러운 실내를 리모델링하듯 계단식 배치는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좀 더 사용자 친화적으로 거듭났어요. 더 이상 ‘염가형 에쿠스’가 아닌 오피러스만의 실내 분위기가 완성됐죠.
포근하고 밝은 색상을 주로 사용했던 전작과 달리 어두운 컬러를 메인으로 설정하면서 외관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반영했고요. 푸른색 조명으로 도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신형으로 거듭났다는 느낌을 충분히 전달했습니다.
화이트톤의 깔끔한 계기판은 평균연비, 순간연비, 계산 기능을 제공해 기능면으로도 좋아졌고요. 앞좌석 통풍시트, 모니터로 전방 사각지대를 확인할 수 있는 카메라 등 각종 최신 편의사양도 아낌없이 추가됐어요. DVD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13개 스피커에 7.1 채널 ‘파나소닉 오디오 시스템’을 연이어 적용해 음악과 영화감상에 즐거움을 더하기도 했죠. 옵션 가격은 전혀 즐겁지 않았지만요.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뉴 오피러스’는 말이 페이스리프트지 내외관 디자인부터 파워트레인, 플랫폼까지 모두 바꾼 사실상 풀체인지 수준의 차량이었습니다.
그랜저 XG와 공용하던 구형 플랫폼에서 그랜저TG와 공용하는 차세대 플랫폼으로 변경되어 승차감과 주행안전성까지 모든 부분에서 업그레이드 됐어요. 이후 등장한 ‘뉴 쏘렌토R’ 과 ‘현행 싼타페’ 등도 이런 식으로 플랫폼 변경이 이루어진 바가 있죠. 달라진 뼈대에 발맞추어 파워트레인도 모두 최신 사양으로 채워졌습니다.
기존 V6 2.7L 엔진은 신형 ‘뮤 엔진’으로 새롭게 신설된 3.3L와 3.8L 모델은 현대·기아차의 신형 ‘람다 엔진’을 탑재해 출력과 효율이 모두 좋아졌습니다.
변속기는 그대로 5단 자동이 맞물렷어요. 무엇보다 신형 플랫폼이 적용되면서 전작 대비 100kg 가까운 경량화를 이뤄냈고, 신형 파워트레인과 시너지를 일으켜 주행성능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죠. 당연히 연비도 좋아졌어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모두 ‘V6 라인업’인데다 배기량 간극이 좁고 연비 차이 또한 크지 않아서 이왕이면 높은 배기량을 선택하는 경우가 나았습니다.
승차감은 여전히 푹신푹신했고 차체도 좌우로 출렁였지만 주요 타겟과 차량의 성격을 고려하면 납득이 가는 세팅이었습니다. 그래도 개선된 차체 강성과 전자장비 성능으로 주행안정성을 한 층 보완했고, 일단 차 생긴 것만 봐도 그렇게 타라고 나온 차가 아니니까요. 전반적으로 뉴 오피러스는 젊은 감각을 조금이나마 가져가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였던 전기형 모델과 달리, 아예 중후하고 보수적인 고급차에 초점을 맞춘 모양새였습니다.
VIP를 위해 검게 물들인 뒷자석 창문처럼 플래그쉽에 걸맞는 무게감을 갖춰 쇼퍼드리븐으로 사용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모델로 거듭났어요. 다행히 소비자들은 이런 변화를 환영했습니다.
전작 대비 가격이 꽤나 올랐음에도 이를 무색케할 만큼 판매량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을 보면 애초에 가격보다는 이 차의 애매한 정체성과 컨셉이 문제였음을 알 수 있었죠. 여담으로 이 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리무진이 실제로 존재하는데요. ‘프로토 모터스’에서 시험 제작한 차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쿠스, 체어맨 리무진처럼 B필러 부위를 추가로 늘린 ‘스트레치드 타입’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없기 때문에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몇몇 네티즌들의 목격담을 제외하고는 베일에 쌓여 있는 모델이에요.
투톤 컬러, 링컨 타운카를 닮은 고풍스러운 디자인이 스트레치드 리무진과 잘 어울리고 B필러 연장 부위에는 오피러스 엠블럼까지 새겨넣어 마치 기아에서 순종으로 출시한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2009년에는 두 번째 페이스리프트 모델 ‘오피러스 프리미엄’이 출시됐습니다. 기아차의 최신 패밀리룩인 ‘호랑이 코 그릴’을 더해 다른 라인업과 연결성을 강조했고, 날카롭게 수정한 전면 범퍼, 크롬 포인트를 더한 멀티스포크 알루미늄 휠. 내부 디테일을 수정해 고급감을 높인 LED 리어램프와 매립형 듀얼머플러 등 고급감을 유지하면서도 당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 포인트로 무게감을 살짝 덜어낸 것이 돋보였습니다.
그사이 벤츠 E클래스와 재규어가 상징과도 같았던 원형 네눈박이 헤드램프를 내려놓고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변모하면서 카피 모델이 외려 오리지널 감성을 간직하게 됐죠. 기존의 구성을 그대로 사용할 실내는 ‘블랙 하이그로시’ 같은 새로운 소재로 분위기를 바꾸고 컬러 LCD 정보창을 더한 계기판, 블루투스 오디오, 버튼시동 스마트키 같은 최신 사양을 추가해 K7 등 기아의 신생 라인업에 발맞췄습니다.
비교적 적은 변하였지만 체감은 확실했죠. 여기에 스웨이드 내장과 럼버 서포트의 공기주머니를 활용한 ‘운전석 마사지’기능, 뒷좌석 냉난방 통풍시트 등 ‘아직도 넣을 게 남았나?’ 싶을 정도로 각종 편의장비를 추가해 여전히 플래그쉽 타이틀에 걸맞는 편의성을 자랑했습니다.
썬루프를 선택하지 않으면 천장에 휘황찬란한 무드램프가 장착되었던 게 떠오르네요. 파워트레인은 종전의 v6 2.7 / 3.3 / 3.8L 라인업을 그대로 이었습니다. 모든 엔진을 개량해 성능을 끌어올렸고 변속기도 6단으로 업그레이드해 효율까지 좋아졌어요.
이후 등장한 신형 모델들이 줄줄이 GDI 시스템을 적용한 것에 반해 오피러스는 단종 직전까지 자연흡기 사용을 유지했는데요. GDI 시스템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는 현재 시점에서는 공교롭게도 부분이죠. 오피러스 프리미엄 눈에 띄는 상품성 개선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이미지와 눈에 띄게 늘어난 경쟁차로 직접 모델인 뉴 오피러스 만큼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2012년 제네시스의 후륜구동 플랫폼을 사용한 ‘새로운 플래그쉽’ K9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기아의 기함으로써 든든한 기둥이 되어줬죠.
쇼퍼드리븐으로 방향을 잡은 뉴 오피러스부터는 에쿠스와 체어맨 못지않은 편안하고 여유로운 공간을 제공하면서도 적당히 위엄있고 부담스럽지 않은 체급 덕분에 이른바 ‘전무님 전용차’로 각광받기도 했습니다. 수직형으로 위계를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조직 문화와도 잘 어울리는 모델이었죠.
2008년, 현대차의 후륜구동 럭셔리 세단 제네시스가 출시되면서 포지션이 완벽하게 겹쳤고, 판매량에 일부 타격을 입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날카롭고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제네시스에 비해 중장년층을 노린 보수적인 디자인과 푹신한 승차감으로 어필하면서 단종 직전까지 준수한 판매량을 유지했습니다. 또 플래그쉽 세단 중 유일하게 LPG 사양을 제공했기 때문에 모범택시와 렌트카 등 영업 시장에서도 크게 환영받았어요.
다른 대형차들은 순정 LPG 모델이 없어 부담스러운 휘발유를 그대로 쓰거나 부득이하게 LPG 개조를 했어야 했지만 영업용 차량으로서 순정 부품의 검증된 품질과 제조사 a/s 를 문제없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상당한 강점이었죠.
한편,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드러난 문제들도 있었죠. 초기형 모델은 고급차도 피해갈 수 없는 이 시기 현대·기아차의 대표적인 고질병 리어펜더 부식과 하부 부식에 시달렸고요. 후기형에서는 리어램프와 차체를 밀착시키는 씰이 시간이 지나 부식되면서 그 틈으로 물이 들어와 트렁크에 고여있거나 그랜저TG와 공유하는 2.7L 뮤 엔진의 엔진 밸브 리프터, 일명 ‘태핏소음’ 람다 엔진 모델에서는 특유의 고질병인 헤드가스켓 누유가 다수 확인된다고 하니 중고차 구매하실 분들은 이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기아의 플래그쉽 세단이었던 오피러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진 못했지만 성공적인 페이스리프트 상품성을 크게 끌어올리면서 종국에는 많은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 ‘좋은 차’로 각인될 수 있었습니다. 강력한 경쟁차인 제네시스 출시 이후에도 확실한 색깔과 특유의 매력으로 꾸준히 인기를 끌며 모하비와 함께 기아차의 맏형으로서 그 중심을 든든하게 잡아줬죠.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플래그쉽은 ‘기함’이라는 그 뜻처럼 브랜드의 성격과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적인 모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증여받은 플래그쉽 세단’ 오피러스는 그저 ‘기아에서 가장 비싼 차’일 뿐, ‘기아차의 색깔’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과 차의 성격이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했습니다.
K9이 그 뒤를 물려받았음에도 더 고급스럽고 더 비싼 차가 됐을 뿐 여전히 기아를 상징한다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어요. 오히려 스팅어나 K8이 그 자리에 더 걸맞는 것 같죠.
최근 자동차 디자인에도 뉴트로 열풍이 불면서 현대차의 플래그쉽인 그랜저 역시 1세대를 오마주한 디자인을 선보인다고 하죠. 이 트렌드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 다면 나중에는 오피러스의 보수적인 디자인을 재해석한 새로운 기아의 플래그쉽 세단이 등장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E클래스 마저 네눈박이 헤드램프를 버렸기 때문에 오해받는다고 해도 벤틀리로 오해받을 테니 오히려 좋네요.
다음에도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사소하지만 궁금한 자동차 이야기’ 멜론머스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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