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0년의 준비 기간 그리고 27년의 집필을 거쳐 태어난 역작, 20세기에 발간된 책 중 21세기에도 여전히 읽히게 될 책으로 꼽히는 ‘문명의 백과사전’. 이들은 ‘역사의 연구’라는 책 한 편에 쏟아진 찬사입니다. 이 책을 쓴 주인공은 아놀드 토인비라는 역사학자로 그는 현재 생존했거나 소멸한 모든 문명을 탐사한 후 역사의 연구를 썼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문명학자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가 죽기 직전 한국과 관련된 소식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제11대 국회에서 논산/공주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임덕규는 1973년 영국 정부 초청으로 영국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토인비와 한자리에 앉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위대한 문명학자 앞에서 임 전 의원은 한국의 효 사상과 가족제도에 관해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설명을 듣던 토인비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고 하죠. 토인비는 한국의 효 사상에서 인류의 미래를 발견하게 됐다면서 서양에도 이러한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며 깊은 관심 보였다고 하는데요. 평생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모든 문명을 살핀 서양인의 입에서 나온 립서비스로 보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분명 그는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효 사상과 가족제도에 대한 설명을 듣기 이전부터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으니까요. 그를 만나기 전 1월 1일 동아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 이러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략 5천 년 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면서 건국이념으로 설정한 ‘홍익인간’과 ‘재세이화’, 즉 널리 두루두루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것과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서 그 이치에 맞게 다스린다는 의미에 주목하고 21세기에 세계가 하나 되어 돌아가는 날이 온다면 그 중심은 동북아시아일 것이며, 그 핵심 사상은 한국의 홍익인간 사상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이 두 개의 이념은 개개인이나 특정 집단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세계 만민에게 두루두루 이로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사상에 빠져 평생 한국 그리워하다 잠든 외국인이 한 명 있습니다.
루마니아 동부에서 동방정교회 신부의 아들로 태어난 세계적인 작가 ‘게오르규’는 자기 소설 ’25시’로 1949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1944년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독일로 건너갔지만, 미 연합군에 의해 옥살이를 당했고 이후 프랑스로 망명했죠. 그리고 자전적 장편 소설인 25시를 썼는데 소설 속 주인공인 ‘요한 모리츠’에 자기 경험을 투영시켰는데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루마니아에 살던 농부 모리츠는 이웃 주민의 허위고발로 유대인으로 오인당하여 헌병에 의해 징발당하는데 이후 헝가리, 독일, 미국 등을 거치며 고문을 당하고 수용소에 갇혀 고통을 겪죠. 작가는 25시라는 시간에 주목했는데 25시는 모든 구원이 끝나버린 시간이라는 뜻이라며 최후의 시간에서 이미 한 시간이나 더 지나버린 절망의 시간,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순간이 바로 25시라며 소설 제목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25시로 넘어가기 전에 인류의 의식이 각성되어야 모두가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세계적인 작가 게오르규는 이 해답을 동양, 특히 한국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1974년부터 다섯 번이나 한국을 방문했는데 한국에서 동방에서의 새로운 빛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984년에 출간한 책 ‘한국찬가-25시를 넘어 아침의 나라로’라는 책에는 단군에 관해 쓰고 있습니다.
‘단군은 민족의 왕이며 아버지이며 주인입니다. 그가 한국 민족에게 내린 헌법은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그것은 홍익인간입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복을 주는 일입니다. 이후 한국인은 다른 많은 종교를 받아들였지만, 단군의 법은 변함없이 5천여 년 동안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군의 법은 어떤 신앙과도 모순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국 모든 종교나 철학의 이상적인 형태로 최대한의 인간을 위한 최대한의 행복 또는 모든 인류를 위한 행복과 평화입니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한국을 떠나며 남긴 이별사에서 감동을 남겼습니다. 원문으로 보겠습니다.
‘내 마음의 왕자들이여! 한국을 떠나면서 새로 사귄 내 친구들에게 나의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여러분들은 수난의 오랜 역사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 역사의 비참한 패자들이 아니라 도리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왕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오랜 세월이 흘러가고 많은 고통이 또 밀려와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여전히 왕자라는 것을… 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수난보다 위대한 나의 왕자들, 여러분들은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불행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헤어진다는 그 외로움을, 쫓겨야 한다는 그 방랑을, 굶주려야 한다는 그 갈증을, 여러분들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을 침략하고 지배하는 강대국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를 것입니다. 땅이 넓은 나라의 사람들, 승리의 영광 속에서 사는 사람들, 풍요 속에서 하품하고 사는 나라 사람들은 한 뼘의 땅이 주는 그 평화와 행복을 모를 것입니다. 서로 만나서 위로하고 손을 마주 잡는 인정의 아름다움을 모를 것입니다. 고난에서 생겨나는 창조의 기쁨과 하늘땅이, 과거와 미래가 서로 포옹하는 융합의 세계를 모를 것입니다. 분리하고 계산하고 성을 쌓는 자들은 언제나 땅 위의 것만을 생각하지만 당신들은 압니다. 하늘의 빛깔 그 영원한 것을 가슴속에 그릴 줄 압니다. 여러분, 용기를 가지십시오. 고난의 역사도 결코 당신들에게서 빼앗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와 노래와 그 기도, 용기와 자랑을 잃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단순히 당신들의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가 잃어버린 영혼입니다. 왕자의 영혼을 지니고 사는 여러분들, 당신들이 창조한 것은 냉장고와 텔레비전과 자동차가 아니라 지상의 것을 극복하고 거기에 밝은 빛을 던지는 영원한 미소입니다. 여러분, 미래의 역사와 그 빛은 아파하는 자의 가슴속에서만 태어납니다. 그리고 수난을 참고 견디며, 그것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슬기와 용기를 가진 자의 눈빛에서만 창조됩니다. 한국에 와서 나는 해와 달 설화를 읽었습니다. 호랑이에게 쫓기던 남매가 하늘의 해와 달이 됩니다. 호랑이는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침략만을 꿈꾸는 강대한 나라는 피만을 남기고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광명입니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다리입니다. 한국이어서, 내 마음을 정복한 사람들, 영혼의 사람들이여, 내 친구여, 우리의 만남은 짧았지만, 더욱 깊고 많은 의미를 지녔습니다. 시는 짧지만, 그 속에 도리어 무한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듯이 우리의 만남도 그럴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는 지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나는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애를, 내가 내 조국에도 쏟지 못한 정열을 여러분,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의 나라를, 그리고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내가 다 그것을 바치지 못한다면 신이라도 나를 대신해서 기필코 여러분들에게 보답할 것입니다.’
그가 한국에게 용기와 희망을 품으라고 당부한 것은 어쩌면 독일, 미국, 소련 등 강대국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루마니아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다섯 번의 방문으로 한국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그는 특히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에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홍익인간은 개인이나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복을 주는 사상이며, 한국은 수많은 종교를 받아들였지만,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만큼은 변함없이 5,000년을 이어오고 있죠. 다른 종교나 사상, 철학과도 절대 배치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생전 그는 한국을 열쇠의 나라라고도 불렀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유심히 살펴보면 한국은 열쇠처럼 생겼는데 한국은 아시아와 유럽이 시작되는 태평양의 열쇠라고도 했죠. 실제로 지도를 살펴봐도 한국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가 붙은 지구에서 가장 큰 대륙에 열쇠처럼 걸려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난제가 열쇠의 나라 한국에서 풀릴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렇게 한국을, 아니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찬미하고 찬양해 생전 아파트 정원에 무궁화를 심어놓고 시간 날 때마다 이 꽃을 바라보았다는 게오르규. 그는 1992년 6월 22일 눈을 감을 때까지 늘 한국을 그리워했다고 하는데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언으로 잘 알려진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 정신이다.’라며 신랄한 비판을 했죠.
이는 종교의 폐해를 지적한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것은 우리 고유의 사상 아래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면서 내세운 홍익인간 아래 종교가 존재해야지, 종교 아래에 홍익인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바탕이 된 이 정신은 가장 고차원적인 통치이념이기도 합니다.
자크 시라크 제22대 프랑스 대통령 역시 다른 나라에서는 고난의 시기에 성인이 등장하는데 한국은 성인이 나라를 세우고 다스렸다면서 한국은 완전히 다른 바탕에 세워졌음을 강조했습니다. 즉, 고난의 시기에 등장한 성인이 통치한 국가가 아니라 처음부터 완벽한 성인이 세운 국가이기 때문에 그 차이가 분명하다는 겁니다. 과연 머지않은 미래 한국이 세계 질서를 다시 정립할 주인공이 될지 사뭇 기대됩니다.
YouText의 콘텐츠는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