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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서 1등까지!!! 길고 긴 현대자동차의 역사와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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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3년 1월 31일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은 임원들을 대동하고 미국 LA의 한 가전 매장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8mm VCR을 출시한 후 미국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었죠. 그리고 휘청거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장에는 GE, 소니, 필립스, 도시바, 월풀 등 세계적 기업의 TV가 전면에 진열돼 있었는데 삼성 TV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둘러보다 우연히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처박혀 있던 삼성 TV를 발견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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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삼성이라는 기업이 이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귀국 즉시 품질개선을 위한 광폭 행보가 시작됐습니다. 4개월 뒤 독일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라는 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등장했고, 이듬해 3월에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15만 대에 달하는 가전제품을 직원들 앞에서 불태웠습니다.

모두 품질개선을 위한 고육지책이었죠. 그리고 삼성은 그때부터 시작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진 세계 최대 전자 회사가 됐죠. 인간이든 기업이든 자신들이 만든 제품의 품질을 두고 소위 ‘쓰레기 수준’이라고 평가받는다면 엄청난 충격에 빠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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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노력을 갈아 넣은 역작에 이런 평가받는다면 ‘더 이상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자괴감에 빠질 것이 자명하죠. 그리고 여기 한국을 대표하는 완성차 기업인 현대자동차도 비슷한 평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1998년 미국 소비자조사업체인 JD파워는 신차 품질조사에서 현대자동차를 전 세계 완성차 업체 중 꼴찌로 선정했는데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 지도 이미 20년이 지났건만 이런 평가는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물어보니 ‘고장이 잦은 싸구려 현대차’라는 대답이 나오기도 했고, 그것이 미국에서 현대차의 이미지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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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양재동 사옥 1층 로비에 ‘품질상황실’, ‘품질회의실’, ‘품질확보실’을 별도로 두고 정몽구 회장이 직접 월 2회 이상 품질 회의를 주재하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쓴소리를 내뱉기도 때로는 격려도 하면서 품질에 신경 쓴 결과 불과 6년 뒤 현대차 소나타가 신차 품질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죠.

이때 해외 언론들은 ‘사람이 개를 문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죠. 그리고 10년 뒤에는 33개 전체 브랜드 중 기아차가 1위, 현대자동차가 3위에 올랐고 이제 싸구려 브랜드의 이미지는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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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전 현대차는 전 세계 전체 시장에서 판매량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이미 수소차 분야는 압도적인 1위를 기록 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길고 긴 현대자동차의 역사 그리고 현대자동차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온 역사를 다뤄볼까 합니다.

지난 25일 현대자동차는 올해 1분기 잠정 실적에서 매출 37조 7,778억 원, 영업이익 3조 5,962억 원을 달성했다고 보고했습니다. 1분기 전 세계 시장에서 약 102만 여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는데 그중 60%가 고급 차종인 제네시스와 SUV가 차지했습니다. 과거 해외 시장에서 현대차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가성비’였지만 이제는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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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에는 전 세계에서 684만 5,000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일본의 도요타그룹, 독일의 폭스바겐그룹에 이은 세계 3위의 기록으로 역대 최고 순위입니다. 쉽지 않은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한 프랑스의 르노와 일본의 닛산, 미쓰비시 연합체도, 미국의 GM도, 포드도 모두 현대차보다 순위가 낮았는데요.

더 놀라운 것은 반도체 및 부품 수급난으로 모든 완성차 업체의 판매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판매량이 늘어난 기업은 현대차가 유일하죠. 오히려 2.7% 판매량 증가율을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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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장의 배경에는 품질경영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데 JD파워의 2023년 자동차 내구성 품질조사에서 도요타와 지엠을 모두 제치고 종합점수 1위를 차지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세계적인 위상을 가진 현대차임에도 한국에서는 인식이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너무 당연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1년에 376만 대를 생산하는 세계 5위의 생산 대국이며, 자체적으로 엔진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손에 꼽히는 국가입니다.

덕분에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늘 세 손가락에 꼽히는데 독일이나 일본, 미국에 비해 별 볼 일 없다며 우선 까 내리고 시작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불과 1991년 자체 엔진을 개발한 후발주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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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동차산업은 자동차가 수출되면 관련 부품들을 수출뿐 아니라 전후방 산업 전체를 견인하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산업인데 늘 그 성과에 비해 무시당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가운데 늘 상위권에 차지하는 인물은 현대 창업주 정주영입니다. 사실 현대라는 그룹 이미지를 잘 떠올려 보면 절대 반도체와 같은 미세공정에는 어울리지 않고 건설이나 선박, 철강과 같은 덩치 크고 투박해 보이는 중공업이 떠오릅니다. 그래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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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동차를 직접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을 때 주위에서 피식피식 그를 비웃거나 과욕이라며 그를 깎아내렸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다소 불도저와 같은 면이 없지 않았던 그의 자동차 산업 진출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난 1966년 4월 미국의 포드가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한 시장 조사를 시작하면서 함께 합작법인을 설립할 기업을 물색 중이었습니다. 당시 현대는 접촉 대상자 명단에 끼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때까지 현대는 단순한 건설업체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정주영이 단양 시멘트 공장 확장공사를 위한 차관 교섭 차 미국에 가있던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데 그는 어떻게든 이 사업을 따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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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동생 정인영은 시켜 강제로 접촉을 요청했고 정주영이 원래 유능한 자동차 수리 기술자라는 점을 앞세워 포드를 설득했습니다. 실제로 정주영 1940년 마포구 아현동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 공장을 인수해 직접 자동차 수리를 했었습니다.

이 설득 덕분에 현대는 간신히 협력사 후보에 끼어들 수 있었고 그해 12월 정주영은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뚝딱 설립해 버렸죠. 이후 포드는 주한 미국대사관은 물론 미국 정보기관, 언론기관, 주한 미국 금융기관 등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협력사 후보들에 대한 자본력과 신용도 조사를 시작했는데 이 조사에서 정주영의 현대가 1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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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듬해 현대는 포도와 자동차 조립기술 계약을 체결했고 드디어 포드의 코티나를 조립생산하게 됐죠. 그의 두 번째 위기는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77년입니다. 이미 현대자동차를 설립해 ‘포니’라는 역대급 자동차를 생산하던 정주영은 이제 더 큰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독자 개발하겠다는 원대한 꿈이었죠.

이미 1년 전에 대한민국 자동차 공업의 자립화를 선언하고 포니를 생산에 이탈리아 전시회까지 참여했는데 이런 행보가 위협이라 생각했는지 당시 주한 미국대사 리처드 스나이더는 대뜸 정주영을 조선호텔로 부르더니 ‘자동차 독자개발에 당장 포기하시오’라며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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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라는 것은 규모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당시 한국의 상황으로 볼 때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산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내수시장도 너무 작고, 수만 개의 부품들을 만들 능력도 없을 뿐 아니라 수출시장에서는 이미 100년 넘는 명성과 기술력을 축적한 기라성 같은 회사들이 버티고 있으니, 포기를 종용한 겁니다.

그러면서 ‘독자개발만 포기하면 포드든 지엠이든 크라이슬러든 현대가 원하는 모든 유리한 조건 대로 조립생산하도록 미국 정부가 뒤에서 지원하겠다’며 그를 회유했는데요. 그러나 가만히 듣던 정주영의 한 마디에 스나이더의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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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인체에 비교한다면 그 국토에 퍼져있는 도로는 인체의 혈관과 같은 것이고 자동차는 그 혈관을 돌아다니는 피와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도로가 발달하고 그 위를 자동차가 원활하게 다니면 피가 몸에서 원활하게 흐를 때 인체가 성장 발달하고 활력을 갖게 되듯이 그 나라의 경제가 생동력을 가지고 발달할 수 있게 됩니다.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 값싸게 공급하는 것은 인체에 좋은 피를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하는 소년기에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 공업의 발전은 그만큼 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조만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 소득도 5천 불 수준이 되어 조금씩 내수도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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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는 않겠으나 열심히 노력하면 수출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또한 자동차산업은 기계, 전자, 철강, 화학, 등 전 산업에 미치는 연관 효과 나 기술 발전과 고용 창출 효과가 대단히 큰 현대 산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공업은 앞으로 한국이 선진 공업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분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사님께서 염려하는 대로 내가 건설사업을 해서 돈을 모두 쏟아붓고 실패한다 해도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우리 후대에 가서라도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디딤돌을 놓을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그것으로 보람을 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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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하며 담담하게 그에게 거절 의사를 표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나이더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정주영은 엔진 개발의 위험성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엔진 개발에 나서기 시작했는데 이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 현대자동차가 기술을 도입해 온 미쓰비시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전투기 ‘제로센’의 엔진을 개발했던 구보 도미오 미쓰비시 회장이 1980년 직접 한국을 찾습니다. 자동차 엔진 분야는 일본 내에서 황제라고까지 불리는 그는 정주영에게 ‘실패할 것이 당연한 무모한 일에 왜 뛰어드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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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연구소를 폐쇄하고 엔진 개발을 포기하면 로열티를 50% 깎아 주겠다.’라며 그를 회유하기 시작했는데요. 보통 사람의 뇌를 가진 사업가라면 분명 눈앞의 이익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였겠지만 정주영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 일본 최고의 엔진 기술자가 이렇게 강력하게 반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기술력이 무섭거나 또는 엔진 설계가 돈이 된다는 뜻이구나.’라고 생각해 버리고는 본격적으로 엔진 개발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포니와 같은 독자 모델을 갖는 것과는 별개로 독자 개발한 엔진을 갖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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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자동차 구동의 핵심은 단연 엔진이기 때문에 직접 엔진을 개발해 내야 진짜 자동차 생산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에 1984년 용인에 파워트레인 연구소를 설립한 후 엔진 개발에 매진했는데 미국의 GM과 크라이슬러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연구원 2명을 스카우트했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나서야 한국 최초의 자동차 엔진, ‘알파’를 성공시켰는데 무려 288번의 변경 작업을 거쳐 최종 완성됐죠. 이후로 베타엔진, 감마엔진을 발표했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세타엔진, 타우엔진, H엔진, G엔진 등을 계속해서 발표하면서 후발주자로서 세계 3위 기업으로 올라서는 주춧돌을 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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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에서 최초로 수출에 성공한 자동차는 무엇이었을까요? 포니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 최초 공식 기록은 1976년 6월인데 수입국은 중남미의 에콰도르입니다. 무려 6대나 수입했죠. 1973년 말 정주영은 이탈리아 토리노로 날아가 자동차 디자이너 한 명을 한국으로 초청합니다.

그러고는 자동차 2대에 대한 디자인을 맡겼는데 이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입니다. 자동차 디자이너 사이에서 자동차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죠. 당시 정주영이 맡긴 자동차는 한국 최초의 고유 자동차 모델 포니와 포니 쿠페였는데 그 덕분에 1년 뒤 포니를 생산해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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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니를 만들게 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16번째, 아시아에서 2번째 독자 생산 모델을 갖추게 됐고, 엔진 개발의 꿈은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사실 포니가 외국 수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세련된 디자인 덕분입니다.

얼마 전 포니 쿠페 복원 관련 토크쇼를 개최하면서 주지아로를 초청했는데 그는 당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은 일본과 달리 아직 자동차 산업이 시작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동차는 당시 한국에 필요한 것이었고 창업주가 정말 천재라고 생각했다.’라며 회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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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는 1년 만에 포니와 포니 쿠페 프로토타입을 공개한 후 1976년부터 양산 차를 생산했는데 이 성공 이후 현대 스텔라, 소나타 1, 2세대 등 현대차 초기 모델과 쌍용의 렉스턴과 코란도 등을 디자인했습니다. 그야말로 자동차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가 초기 한국 자동차의 디자인을 전담했던 겁니다.

사실 정주영에게도 이 포니 프로젝트는 무모했습니다. 직전까지 미국 포드로부터 기술을 빌려와 5년간 조립 생산한 일천한 경력이 전부였고 부품 하나도 직접 만들어 본 적 없었지만, 포드의 재계약 거절로 자체 개발로 돌아선 후에는 미쓰비시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설계 도면에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지급하면서 가져왔는데 그렇게 3년 만에 포니가 탄생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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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첫 생산 후 꾸준히 연결 모델을 선보이면서 1976년 포니 픽업, 1977년 포니 왜건, 1978년에는 배기량을 높인 포니 1400이 등장했고, 1980년대에는 포니쿠페도 출시했습니다. 특히 1982년에 생산한 포니 2의 경우 8년 동안 무려 67만 대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대박을 거뒀는데요.

1986년 미국 시장 문을 두드릴 당시 현대차는 고장이 너무 잦아 조롱거리로 전락했습니다. 한 미국 TV 토크쇼에서는 ‘출발할 때 뒤에서 밀어야 하고, 내리막길에서만 달리는 1인용 썰매가 뭔지 아세요? 현대랍니다.’라고 조롱했고, 영국 BBC 방송은 현대차 엑센트를 두고 사고를 의미하는 엑시던트라고 놀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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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현대자동차 그룹을 물려받은 정몽구 전 회장은 10년, 10만 마일 보증수리로 승부수를 던졌고 3년 만에 미국 수출이 무려 3배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2022년 현대차그룹은 전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굴지의 글로벌 그룹이 되면서 초대형 사고를 쳤습니다. 여기에 미래차 분야에서는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1회 충전에 524km를 달린다는 현대 아이오닉 5는 ‘2022년 세계 올해의 차’에, ‘제로백’을 3.5초 만에 도달하는 기아자동차 EV6는 ‘2022년 유럽 올해의 차’에 선정됐습니다. 이제 현대차는 내연기관을 전문으로 하던 완성차 기업에서 전기차와 수소차를 주력으로 하는 미래차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데 앞으로 현대차가 한국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즐거운 초대형 사고를 쳐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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