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겨울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우리가 이제 다시 8개월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있습니다. ‘굴’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공중목욕탕이 굴 때문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역사의 아이러니인데, 기원전 50년경 로마의 통치자 ‘시저’는 계획에도 없던 영국 정벌에 나섰습니다. 1,500km가 넘는 먼 거리에 대군을 파견한 이유는 단 하나, 영국 템즈강 생산되는 양질의 굴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기어코 굴을 확보한 로마제국은 템즈강의 굴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생굴의 신선도를 맞추기 위해 운송업과 냉장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덕분에 로마 귀족들의 연회 때마다 영국의 굴을 무사히 공급받을 수 있었죠.
그런데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굴은 부족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이가 인류 최초의 굴 양식업자 ‘오라타’입니다. 그는 수온이 낮은 겨울에도 안정적으로 굴을 공급해 돈을 벌 목적으로 양식장에 따뜻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난방시스템을 발명했고,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공중목욕탕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로마 시대 공중목욕탕 유물이 발견되면 굴 껍데기도 함께 발견되는 겁니다.
그런데 적어도 굴에 있어서 만큼은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워낙에 훌륭한 굴이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식재료로도 상당히 발전했는데, 굴국밥부터 굴보쌈, 굴전, 굴밥, 굴구이는 물론 김치에도 넣어 그 비릿한 맛을 즐기고는 하죠.
하지만 굴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골칫거리가 됐다는 점을 알고 계시나요? 그래서 한국이 직접 나섰습니다.
본격적으로 날이 쌀쌀해지는 11월이면 한국인들이 1년간 기다린 식재료가 식탁에 등장합니다. ‘굴’인데요. 굴과에 속하는 조개의 한 종류인 굴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조간대 바위에 붙어 서식하는데, 이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합니다. 그중 가장 일반적인 명칭은 ‘석화’로, 바닷가 돌 위에 핀 꽃이라 하여 돌 ‘석’에 꽃 ‘화’ 자를 씁니다.
아무래도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보니 서양에서는 약 4,000년 전부터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래서 굴은 알파벳 ‘R’이 들어가는 달에만 먹는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현재는 초밥을 즐기는 외국인이 많아 해산물을 날로 먹는 것에 조금 거부감이 덜 합니다만, 예전에는 해산물을 날로 먹는 한국인을 상당히 특이하게 생각했습니다. 가령 영화 <올드보이>에서 산낙지를 먹는 모습이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날로 먹는 음식문화가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서양에서 유일하게 날로 먹는 음식이 바로 굴입니다. 그런데 이 굴 덕분에 한국은 외국인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서양에서는 너무 비싸기 때문이죠.
매년 겨울이 되면 우리는 석화를 주문해 구워 먹거나 쪄 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김장에 넣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섭취하는데요. 이는 저렴한 가격 때문일 겁니다.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는 수산시장에서 아줌마들이 생굴을 까먹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밝혔는데, 그 비싼 굴을 그렇게 쉽게 먹는 모습이 놀라웠다고 하죠. 왜냐면 서양에서 굴을 고급 식재료, 즉 비싸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런던 수산시장에서는 키프로스산 굴 1개당 4,000원, 고급품은 6,000원이라고 하는데, 이게 동네 마트 등 소매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 가격은 2배 가까이 뛰어버립니다.
하지만 제가 지난 겨울, 주문해서 먹었던 통영산 석화 10kg은 고작 23,000원이었습니다. 4명이 충분히 먹었으니 절대 부담되거나 비싸다고 생각되지 않는 가격인데요.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만 굴 가격에 이렇게 저렴한 것일까요?
모든 것은 ‘갯벌’ 덕분입니다. 잠시 언급했듯 굴이라는 생물은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조간대 바위에 붙어 자생하며 바닷물에 떠다니는 갯벌의 미생물 섭취하며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약 7리터가량의 물을 빨아들였다가 뿜어내기를 반복하며 영양소를 섭취하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한국의 갯벌 환경은 굴곡이 심하고 파도가 비교적 잔잔하기 때문에 굴이 자라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과 같은 서양에는 한국과 같은 갯벌 환경을 갖춘 곳이 없으므로 굴은 배고픔을 견뎌내야 간신히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겁니다.
그래서 굴의 생산량은 갯벌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데, 한국의 생산량이 어마어마합니다. 1980년대부터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올랐다가 중국에 1위를 내주기는 했으나 여전히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2020년 기준 약 35만 톤의 굴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를 1인당으로 따지면 압도적인 세계 최대 생산국인데요.
하지만 세계 1위 중국의 식문화가 생굴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수출만 하다가 최근 한국산 생굴을 오히려 수입하는 형편입니다. 중국은 한국처럼 바다가 깨끗하지 못하고 갯벌 환경이 그리 훌륭하지 않아 중국산 생굴은 섭취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산 생굴을 수입해 가고 있죠.
덕분에 2022년 기준 한국은 약 326,000톤의 굴을 생산해 그중 13%를 수출했고 나머지는 내수로 소비됐습니다. 먹고 남는 양만 수출했음에도 2022년 약 8,000만 불을 벌어들였죠.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굴을 생산하며 1인당 소비량이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인만큼 그 어두운 면도 분명 존재합니다. 굴 껍데기, 굴 패각 문제입니다.
굴은 한 쌍의 두꺼운 껍데기를 가진 생물이기 때문에 굴을 섭취한다는 것은 필수적으로 굴 껍데기라는 쓰레기가 배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2022년 생산한 35만 톤 중 약 31만 톤의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의미인데요. 아마 통영뿐 아니라 굴을 먹을 수 있는 모든 도시를 가보면 해안 곳곳에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껍데기만 모아둔 산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에 쌓인 굴 껍데기가 100만 톤에 이를 정도죠. 여기에 굴 껍데기는 산업폐기물로 분류하기 때문에 보관 및 처리에 대한 엄격한 제한으로 불법 투기가 횡행해 악취 발생 및 경관 훼손 등의 문제를 불러왔었죠. 이는 한국뿐 아니라 한국산 석화를 수입해 가는 국가들에도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몇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이 나섰습니다. 지난 2021년 7월, 해양수산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수산업 영위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수산부산물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수산부산물법’을 제정했습니다.
그간 굴 껍데기를 포함한 바지락, 전복, 키조개, 홍합, 꼬막 등의 껍데기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사업장폐기물로 분류해 비료나 사료, 매립지 성토재, 건축자재 원재료 등으로만 재활용했었으나, 이제 수산부산물에 대한 보관과 운반, 처리 등에 관한 규제는 대폭 완화했죠. 가령 기능성 식품, 의약품, 화장품, 석회석 대체재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를 통해 500억 원가량의 경제적 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이 분야에서 한국은 모범적인 사업을 펼쳐오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배기가스 속 황산화물을 제거하는 데 굴 껍데기를 사용하는 겁니다. 국내 최대 굴 생산지로 꼽히는 통영시는 한국남동발전 및 굴 수협과 협력해 굴 껍데기를 원료로 하는 배연·탈황 흡수제를 만들어 삼천포발전본부에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굴 껍데기는 석회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성분이 황산화물을 걸러내는 배연·탈황 흡수제 원료로 사용되고 있는바, 통영시와 한국남동발전은 흡수제를 만드는 시설을 지어 올해부터 가동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생산된 흡수제는 삼천포발전본부에 공급해 화력 발전 때 발생하는 배기가스 속 황산화물을 제거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제철소도 굴 껍데기 재활용에 나섰는데요. 현대제철 및 포스코 등 국내 철강업계는 굴과 조개껍데기 제철 부원료로 재탄생시키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남 여수 패각 가공 전문업체인 ‘여수바이오’와 함께 석회석을 패각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연구해 왔고, 지난 2021년 여수바이오가 국립환경과학원으로부터 패각 재활용 환경성 평가 승인을 획득했습니다.
제철소에서 쇳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철광석을 가져온 그대로 용광로에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용광로에 넣기 좋은 크기로 만드는 소결 공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소결광의 형태를 잡고 성분을 조절하는 용도로 석회석을 투입하는데, 석회석과 유사한 성분을 가진 굴 껍데기로 대체하는 겁니다.
현대제철의 경우 여기에서 더 나아가 패각과 석회 부산물을 혼합해 생석회를 제조하는 기술개발도 완료했는데, 생석회는 제강공정에서 불순물을 제어하는 부원료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굴 껍데기 활용 범위와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전국에 쌓인 굴 껍데기가 약 100만 톤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만약 이를 전부 제철 공정에 투입하면 소나무 약 3억 그루를 심는 것과 유사한 효과인 약 41만 톤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하죠.
그런데 굴 껍데기를 이용해 칼슘 제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굴 껍데기는 약 94% 탄산칼슘과 석고 등 6%의 기타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잘 활용해 칼슘 제품으로 생산하면 노령층의 고질적인 문제인 칼슘 섭취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에이펙셀’이라는 기업은 굴 패각을 이용해 인체 흡수율 및 생체이용률을 극대화한 나노 칼슘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사실 21세기는 ‘나노의 세계’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전 세계 모든 국가와 기업이 미래 먹거리를 위해 뛰어드는 산업입니다. 나노기술이 발전하면 이 세상의 모든 제조업의 역사가 바뀌기 때문인데요.
에이펙셀 경우 전 세계 최초이자, 전 세계 유일한 건식 나노분쇄기를 개발해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는 굴 껍데기를 이용해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나노입자로 분쇄한 칼슘 건강식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산업폐기물이었던 굴 껍데기를 나노입자로 분쇄한 것인데, 이 기술을 바탕으로 노벨상 3관왕에 도전하는 최초의 한국 기업이기도 하죠.
이렇듯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가장 깨끗한 굴을 마음껏 섭취하고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이제 정부가 법령도 제정했고, 기업들이 산업재로도 사용하고 있고, 또 골다공증 발생 위험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칼슘 건강기능식품까지 생산되는 만큼 조만간 해안 곳곳에 쌓인 굴 껍데기가 모두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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