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명기입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어린 시절을 굉장히 강조하곤 하는데요. 어린 시절에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는지 궁금하시죠. 하지만 사랑받은 사람에 대한 특징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머릿속에 사랑받은 사람에 대한 특징이 있어요.
그러나 사랑받은 사람에 대한 특징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중 잣대를 갖고 있어요. 어떤 사람이 굉장히 나에게 못되게 굴었을 때도, 그 사람의 원인을 사랑받음과 사랑받지 못함에서 찾아요.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서 굉장히 잘해줄 때도, 그 사람의 원인을 사랑받음과 사랑받지 못함에서 찾아요.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랑받은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하는 거는 명확히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는 잘 되고 행복하게 살고 모든 게 좋은 거에 대한 원인을 나의 과거에 어린 시절의 불행에서 찾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내가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하기 살기 때문에 ‘사랑받은 사람들이 이런 특징을 가졌을 거야’라고 오해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과거에 내가 사랑받았든, 사랑받지 않았든 내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저는 그분들한테 그 생각을 바꾸라고 말씀드리진 않아요. 왜냐면 그 원인이 진실에 가까운 원인이든, 진실에 가깝지 않은 원인이든, 사랑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고 닮아 보려고 해서 ‘나를 고쳐야 되겠어’라고 한다면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분들한테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그 생각에서 벗어나세요.” 하는 거는 너무 커다란 불행을 안겨드리는 거예요. 그 원인이 현재의 나의 어떤 선택에 의한 게 아니라는 게 그래도 나를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줘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은 현재의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불행에 몰입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이제 생각하게 되는 거지요.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나의 어떤 단점이 나의 약점을 원인을 더 이상 과거에서 찾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찾을 때 문제인 거죠. 우리가 나의 사랑받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갖다가 우리가 슬퍼하는 거는 그분의 권리이고, 거기에 대해서 꼭 벗어나야 된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과연 내가 정말 지치고 힘들고 아무런 움직일 수 있는 힘조차 없을 때 내가 지금 내 상태에 대한 합리화라고 볼 수 있을까요. 합리화라는 논리적인 문구가 들어갈 수 있는 거보단 과거에 대한 연민이라고 할까요? 과거에 대한 연민이 적어도 나의 과거에 대해서 불쌍해하면서 현재의 나를 불쌍해하고 내가 나를 불쌍해함으로써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나아갈 수 있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자기 연민은 꼭 떨쳐야만 되는 감정이 아니거든요.
과거 탓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게 연민이란 말로 하니까, ‘아, 내가 정말 그런 것도 겪었지.’, ‘그런 일도 겪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렇게 하고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전환점이 생기는 거 같다고도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죠. ‘난 과거가 이래서 현재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거지. 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고, 여기에 대해서 누구도 나를 원망할 수 없어.’, ‘나를 비난할 수 없어.’ 그런데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 좀 다르게 생각해요.
실제로 부모님이 때리고, 때리지는 않더라도 욕하고, 혹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가출해서 생계를 책임져야 되고. 진짜 그런 경우에는 그분들의 성격이 나쁘다, 좋다를 떠나서 약할 수밖에 없어요. 항상 위험함을 느끼고, 항상 불안해하고, 특히 어려서 폭력에 시달리던 분들은 조금만 하게 되면 겁이 나고, 그랬을 때는 저는 이거는 확실히 ‘아, 어려서 진짜 학대를 받고 고통받았던 분들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진짜 증상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그 밑으로 가게 되면 또 조금씩 달라져요. 그러면 무시할 수 없는 거는 두 유형인데, 하나는 무관심 유형이에요. 이 부모의 무관심이 과연 사랑받지 못함이었냐, 아니냐는 자매나 남매나 형제분들이 얘기하는 거에 따라 달라요. 어떤 형제분은 ‘한 번도 우리 엄마는 나를 안아 준 적이 없어요.’, ‘나한테 따뜻한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우리 엄마 날 한 번도 사랑해주지 않고요.’, ‘너무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런데 반대의 성격인 사람은 ‘우리 엄마 너무너무 쿨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 한 번도 우리를 간섭한 적이 없고요.’, ‘우리를 막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게 굉장히 내가 따뜻하고 친밀감을 원하고 내가 약하고 그런 분한테는 그 반응이 오지 않는 게 사랑받지 못함으로 느껴져요. 그 반대로 굉장히 독립적인 사람한테는요. 걱정과 관심이 나를 믿지 못하니까 사랑받지 못함은 아니지만 결국 신뢰하지 못함, 일종의 진정한 사랑이 없음으로 느껴지게 되지요. 즉, 같은 부모라고 할지라도 어떤 기질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언니랑 엄마는 한 편이야.’, ‘오빠랑 아빠는 한 편이야.’, ‘우리 가족은 전부 한 편이야.’, ‘나만 사랑하지 않고, 지네들끼리 너무 사랑하면서 잘 지내.’가 되는 거지요.
그런데 또 다른 유형은 야단의 유형이 있어요. 이 야단치는 것도 문제의 포인트를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서 부모님이 야단을 사랑받음으로 인지하는 사람과 사랑받지 못함으로 인지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른이 됐고, 내가 달라졌어요. 점잖아졌어요. 진짜 착한 사람들은 학대에 해당되는 행위도 부모님의 사랑으로 느껴져요. 그래서 똑같은 학대 행위마저도 사랑으로 생각해요. 결국은 이 모든 특징을 하나 한다고 그러면, 어찌 되었든지 간에 자신이 과거에 사랑받았냐, 사랑받지 않았냐에 대해서 계속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은, 하나의 공통되는 특징은 현재가 불안정하다는 거예요.
현재의 삶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나의 사랑받지 못함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거고 거기에 대해서 대체적으로는 피해자의 기억이 많기 때문에 부모님이 야단을 쳤던, 불행에 빠트렸던 피해자의 기억이 대체적으로 맞겠지만, 또 정도의 차이는 있게 된다는 거지죠. 실제로 부모님에게 사랑받지 못한 사람과 그리고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렇게 나눠지는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지금 현실에서 어떠한 불안정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부모님한테 여기에서 우리가 진짜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하고 완벽할 만한 사랑받은 존재의 특징도 있어요. 결국 그거는 모든 조건이 맞는 사람들이에요. 실제로 그분의 부모님도 이분들을 굉장히 사랑했어요. 그리고 이 사람은 틀림없이 내가 사랑받았다는 기억을 갖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일단 굉장히 흔들리지 않아요. 왜냐면 우리가 보통 빠르게는 4, 5살, 느리게는 10살에서 11살 정도가 되면 죽음에 대해서 알게 돼요. 그러면 애들이 한번 죽는 거예요, 마음속으로는. ‘영원히 사는 게 아니다.’
그럼 그거를 넘길 수 있을 때 뭐가 필요하냐면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나중에 부모님은 잊어 먹더라도 때때로 살다 보면 죽느니만 못 한 순간에 오거든요. 그 죽느니만 못 한 순간에 넘기는 희망은 우리 안에 살아있는 부모님의 사랑이거든요. 어려서 충분히 사랑받는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희망을 잃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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