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계의 샤넬’, ‘비타민계의 에르메스’, ‘커피계의 롤스로이스’ 등등 한 분야에서 독보적이고 월등한 퀄리티를 자랑하는 제품에는 다른 명품을 차용해 그 우수함을 표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한국계 허준이 교수가 수상하면서 의외의 제품 하나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분필인데요. 천재 수학자들 사이에서 “천사의 눈물로 만들었다.”라느니, “이 분필로 쓰면 오답이 나올 수 없다.”라며 극찬을 쏟아낸 ‘분필계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하고로모’ 분필입니다.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는 세계적인 수학 난제를 풀어냈음에도 한없는 분필 사랑을 드러냈고, ‘전 세계 수학자들이 사재기하는 분필’이라며 이 제품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1932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 ‘하고로모’ 분필이 이제는 일본이 아닌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지난 2019년 5월 23일, 미국 CNN이 운영하는 ‘Great Big Story’라는 유튜브 채널은 ‘왜 세계 최고 수학자 들은 분필을 사재기할까?’라는 영상을 게재했습니다. 3년이 지난 현재 이 영상 조회수는 무려 2,500만 회를 넘어섰는데, 해당 영상에는 ‘브라이언 콘래드’ 미국 스탠포드대 수학 교수, ‘맥스 리블리치’ 워싱턴대 수학 교수, ‘데이비드 아이젠버드’ 전 미국 수학회 회장, ‘데이비드 베이어’ 콜롬비아대 수학 교수, ‘웨이 호’ 미시간대 수학 교수까지 총 5명의 수학자가 등장하는데, 영상의 주인공은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이 수학자들이 아니라 ‘분필’입니다.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수학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분필을 두고 다섯 명의 수학자들은 하나같이 이 분필을 ‘추앙’했습니다. 추상대수학과 대수 기하학의 대단한 족적을 남긴 공로로 2005년 미국 수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데이비드 아이젠버드’ 교수는 “제가 도쿄대를 처음 방문했을 때 하고로모 분필을 발견했는데, 당시 한 일본인 교수가 우리가 미국보다 더 훌륭한 분필을 만든다고 자랑했을 때 ‘분필은 분필이지, 뭐…’라며 가볍게 넘겼습니다.”라며 그가 처음 이 분필을 만난 때를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렬한 팬이 되었다고 말했죠.
그런데 아이젠버드 외에 모든 수학자는 ‘수학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동반자’라며 이 분필을 극찬했고, 한 교수는 “2015년경 이 회사가 망한다는 소문이 돌길래 즉시 가능한 많은 분필을 사 모으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 10년 치를 모아 뒀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약간의 돈을 받고 뒷거래를 하고 있죠.”라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놨는데요. 이 분필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천재 수학자가 10년 치를 사재기해 두는 것일까요?
고체 폭탄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했으나 평생 독신으로 지낸 ‘알프레드 노벨’은 죽기 직전 유언장을 통해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자신의 전 재산으로 마련된 기금을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6개 분야의 ‘노벨상’이 제정됐고 매년 12월, 전 세계는 노벨상으로 떠들썩합니다. 그러나 그가 상당히 중요한 학문임에도 ‘수학’을 제외시킨 것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그가 이론 위주의 학문보다는 실용 위주의 학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항간에는 ‘미타그레플레르’라는 수학자가 노벨의 부인과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복수심으로 제정하지 않았다는 속설도 있지만, 노벨은 결혼한 적이 없으므로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렇게 노벨 수학상이 제정되지 못하면서 수학계에는 노벨상에 버금가는 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얼마 전 한국계 허준이 교수가 수상한 ‘필즈상’입니다.
1924년, 캐나다 수학자 ‘존 필즈’는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 수학자 대회에서 “남은 기금으로 국제적인 수학상을 제정하자.”라는 제안을 내놨고, 6년 뒤 1932년, 스위스 취리히 대회에서 정식으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일견 필즈상이 노벨상보다 수상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매년 수여되는 노벨상과는 달리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 수학자대회에서 수상자가 결정되기 때문이고, 수상자의 연령도 40세 이하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평생 딱 한 번만 수상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그 난이도가 더 높다고 보는 것이죠.
물론 수학계에도 ‘3대 수학상’으로 일컬어지는 ‘아벨상’과 ‘울프상’이 있지만, 아무래도 그 역사로 따지자면 ‘필즈상’이 가장 권위있다고 여겨지는데요. 그간 한국인 중에 필즈상에 가장 가까웠던 인물로는 ‘리군 이론’으로 잘 알려진 이임학 박사가 있습니다만, 그 역시 수상의 영광을 안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5일, 한국계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수상했죠. 전 세계 모든 수학자들이 꿈꾸는 그 상을 받은 겁니다. 수상 이후 그의 인생을 조명하는 수없이 많은 기사가 쏟아졌지만, 제 눈에 띄었던 것은 그가 인터뷰 때 언급한 ‘분필’입니다.
바로 ‘하고로모’ 분필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학자는 분필과 칠판을 사랑하는 최후의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며 ‘전 세계 수학자들이 사재기하는 분필’이라고 언급했는데요. 2019년 CNN이 게재한 영상에서 수학자들은 “분명 이 분필은 천사의 눈물로 만들었다.”거나 ‘분필계의 롤스로이스’라고 표현했는데, 허준이 교수에 앞서 필즈상을 받은 ‘안드레이 오쿤코프’도 이 분필만 사용한다고 알려졌습니다. 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자신의 은퇴 행사에서 기념품으로 이 하고로모 분필을 나눠줄 정도였다고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수학자들이 전부 극찬하는 것일까요?
사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하고로모 분필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제 와이프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졌는데, 서랍 한가득 이 분필을 잔뜩 쟁여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분필을 쌓아두고 쓰냐?’라고 물었더니, “이게 분필계의 에르메스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기억에 잊혀졌던 하고로모 분필이 알고 보니 전 세계 수학자들이 사재기하는 분필이라니 저의 부족한 안목을 탓할 뿐입니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일본어 이름을 가진 이 분필은 일본에서 태어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오로지 한국에서만 생산하고 있죠. 무슨 일일까요?
1932년 일본 나고야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하고로모 분필을 한자로 바꾸면 ‘깃 우’와 ‘옷 의’를 씁니다. 직역하면 ‘날개옷’이라는 뜻인데, 이런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은 당시 일본에서 가장 유명했던 ‘후지 분필’을 넘어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날개옷을 입고 후지 분필을 넘어 훨훨 날아다녀라.”라는 의미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후 정확히 83년 동안 3대에 걸쳐 가업으로 분필에만 매달렸는데, 전 세계 수학자들이 사재기하는 이 분필이 현재는 오로지 ‘made in Korea’로만 생산되고 있습니다.
3대째 가업으로 이어오던 하고로모 분필은 창업주의 손자 ‘와타나베 타카야스’ 사장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공장을 운영하지 못하게 됐는데, 당시 등장한 인물이 한국인 신형석 대표입니다. 한때 그는 재수학원에서 가장 잘나가는 수학 강사였지만, 지금은 하고로모 분필을 생산하는 ‘세종몰’의 대표입니다. 16년 전 출장으로 찾은 일본의 한 재수학원에서 이 분필을 만난 후 그 오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하죠. 그리고는 부업 차원에서 한국으로 하고로모 분필을 수입했는데, 2015년, 와타나베 타카야스 사장이 그를 긴급히 일본으로 호출했습니다.
“건강이 악화돼서 더 이상 분필을 생산할 수 없다.”라는 말에 신 대표는 “제가 해보면 어떨까요?”라면서 농담 삼아 이야기했지만, 와타나베 사장은 진지하게 그를 말렸다고 합니다. 제조업은 너무 힘들다면서 말이죠. 그런데 어쩌면 와타나베 사장이 그를 말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 하고로모 분필은 그 원재료부터 배합 비율까지 너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와타나베 사장이 공장 폐쇄 직전, ‘NIKKEI ASIA’와 진행한 인터뷰에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한 학원 선생님이 분필을 수입하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문을 닫겠다고 했을 때 기계를 그에게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한국을 방문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하고로모 분필을 만들려면 분필이 잘 쓰여지고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7가지의 재료가 정확한 비율로 배합되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 공장에서 직접 만든 기계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사용하려면 미세한 조정이 필요해 한국을 방문해 직접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습니다.”라며 그가 한국을 직접 방문해 기계와 원재료 배합 비율 노하우를 전수했음을 밝혔죠. 실제로 현재 포천 공장에서 하고로모 분필을 생산 중인 이 기계는 와타나베 사장이 20년 이상 공들여 직접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는 “하고로모 분필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을 때 전 세계 많은 고객들이 이를 비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팩스와 끊임없는 구매 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1990년 연간 9,000만 개의 분필을 생산했지만, 이후 화이트보드 시대로 접어들며 분필 수요가 급감했습니다. 2014년 폐업 직전 생산량이 고작 4,500만 개였습니다.”라며 분필의 수요 급감이 폐쇄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제 건강입니다. 몇 년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라며 그의 건강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밝혔죠.
어쨌든 이렇게 하고로모의 생산국이 한국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품질이 더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CNN 영상에 등장한 수학자들은 “몇 년 전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한국 회사가 이를 인수해 완벽하게 재현한다고 들었습니다. 여전히 이 분필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라며 이 분필을 사용할 수 있음이 기쁘다고 말했죠. 어쨌든 2015년 인수한 후 생산을 시작해 2016년, 3억 원 매출을 시작으로 2021년에는 무려 2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는 분필의 40% 이상이 전부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상황이죠. 미국이 1위, 중국, 일본, 영국, 독일 순으로 수출되고 있죠.
구글에 근무하는 유명 엔지니어 중 ‘제레미 쿤’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엔지니어 기술을 설명할 때마다 꼭 칠판을 가져와 하고로모 분필로 그림을 그려 설명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딱딱’거리는 그 소리가 모든 사람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수학자들이 이토록 분필을 사랑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수학은 여전히 다른 과목에 비해 판서가 많은 학문이고, 아직까지 대학의 수학과 강의실에서는 옛날식 칠판과 분필을 쓰는 곳이 많습니다.
기존 분필의 가장 큰 단점은 지울 때 분필 가루가 날린다는 점이고, 이는 기관지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하고로모 분필만큼은 7가지 원재료가 만들어 낸 적당한 수분으로 분필 가루가 거의 날리지 않고 부러지지 않게 단단하며 사람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선명함까지 갖추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만큼 하고로모 분필이 ‘made in Korea’라는 날개옷을 입고 전 세계로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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