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생활할 땐 한 달에 많이 벌어야 150~160, 170만 원 벌다가 이제 가게를 운영하면서 한 달에 고정적으로 한 4,000~5,000만 원 정도 벌고 있는 예전에 개그맨 했던 김주호라고 합니다.
무명 개그맨분들은 거의 수입이 없죠. 저는 전에 돌잔치 같은 행사 구걸해서 받아서 수입이 그나마 있었죠.
식당한 지는 2년 정도 됐어요. 2년 만에 수입이 40배나 늘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솔직히 제가 이렇게 잘 될 줄 저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손님들이 많이 오시니까, 많이 찾아주시니까…
또 개그맨 했었던 장점을 살려서 손님들한테 말도 많이 걸고 하니까 저 보러 오시는 손님들도 많거든요. 단골은 많으세요.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개그맨 할 때는 깔짝깔짝 그냥 나왔어요. 코미디빅리그라는 프로그램 했었고… 했다고 하기는 좀 그래요. 사실은 나와서 뺨 한 대 맞고 들어가고 약간 이런 스타일이어서요.
개그맨 생활은 무명으로 한 10년 정도 했었죠. 계속 사실은 연차가 쌓일수록 사람들한테는 신인인데, 연차는 10년 넘은… 중고 신인이었죠.
10년이나 개그맨 하다가 식당을 하게 된 건 쉽지 않지 않았어요. 되게 쉬웠어요. 왜냐하면 모든 일이 10년을 했는데 안 되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죠.
꿈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맛을 볼 만큼 맛을 봤다고 저도 생각이 들어서 내려놓을 때 되게 쉽지 않지 않았어요. 되게 쉬웠어요. 저는 빨리 접고 싶었어요. 빨리 끝내고 뭐든 하고 싶었거든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개그맨 할 때 사람들 비위 맞추는 게 솔직히 힘들어요. 행사라도 하나 받으려면 돈 있는 분들 앞에 가서 자꾸 딸랑거려야 하고, 노래도 한번 해야 하고, 쇼도 해야 하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저를 되게 초라하게 만들더라고요.
그리고 뭘 열심히는 하고 싶어서 시간을 빼는데, 아이디어 회의라는 게 그렇잖아요.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서로 주저리주저리 떠들다가 아이디어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이게 개그맨 모든 분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2시간 짜면 얼마만큼 나온다는 게 있으면 저는 24시간 짜겠어요.
12개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데 20시간을 짜도 안 나오고, 3일을 짜도 안 나오고… 그러면 사실 그 시간은 되게 무용지물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식당이라는 건 제가 3시간 일하면 3시간에 대한 페이를 받을 수도 있고, 4시간 일하면 4시간에 대한 페이를 받을 수도 있잖아요.
개그맨을 그만두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제가 시간탐험대라는 프로그램을 촬영할 때 안경을 벗고 촬영했어요. 렌즈라도 사실 끼면 되는데, 감독님이 리얼리티를 되게 강조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조명 하나 없이 깜깜한 데서 촬영하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목이 부러졌어요.
그때 당시에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다가 좋은 기회가 돼서 내려와서 식당을 하게 됐어요.
좋은 제안이라는 게 저보고 1년만 고생하면 아는 형님이 저한테 가게를 열어주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대신 제가 열심히 목숨 걸고 한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저도 사실은 이해가 안 가요. 누가 열심히 한다고 가게를 열어주겠어요. 그런데 개그맨 할 때 제가 숙소 생활을 했었거든요. 지금은 너무 잘되고 있는 조세호 씨, 남창희 씨랑 숙소 생활을 했었는데, 그 형들의 친구세요.
그때부터 저도 10년을 같이 숙소생활 하니까 알고 지냈을 거 아니에요. 그 형님이 식당으로 성공을 많이 하신 형님이시거든요.
그분이 저한테 내려와서 너도 형 일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묻더라고요. 그러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저한테 제안을 처음 해 주셨거든요. 그게 병원에 누워 있을 때 갑자기 생각이 나서 바로 연락드리고 치료받고 나서 내려오게 됐죠.
당시에 모아놓은 돈은 7,000원, 8,000원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진짜로 차비도 없었어요. 창피해요. 근데 돈이 없었어요. 사실은…
지방에 내려오자마자 형님이 바로 가게를 차려주신 건 아니죠. 이 식당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처음부터 좀 배워보라고 해서 주방에서 설거지부터… 그리고 손님들 응대, 접대 같은 것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배우고 한 1년 뒤에 가게를 오픈하게 됐어요.
형님 가게에서 1년 열심히 배웠더니 이렇게 큰 가게를 차려주신 건 맞는데, 제가 열심히 여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형님한테 돈을 갚고 있죠. 이 가게를 차렸을 때 들어간 돈이 있으니까요. 어쨌든 터전을 만들어 주신 거고, 수입이 일정하게 나올 수 있게끔 해주신 거죠.
처음 식당 일 배울 때 솔직히 후회도 좀 있었어요. 왜냐하면 칼질도 안 해 봤으니까, 손도 많이 베이고… 특히 제가 좀 비위가 약해요.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게 나오면 그거 손으로 건져내야 하니까 헛구역질 같은 거 되게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여기 내려왔을 때는 이거 아니면 아니라고, 그리고 진짜 목숨 걸고 내려오겠다고 약속하고 온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겨냈고요. 지금은 또 아무렇지 않게 적응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가 바로 앞이 산이고, 외지긴 했어요. 그런데 ic 앞이다 보니까 유동인구는 없겠지만, 유동차량들이 많아서 들려주시는 것 같아요.
제가 개그맨 생활 10년 동안 하면서 유명하지 않다 보니까 서러움도 많고 고생한 게 진짜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하나 예를 들어 보면 시간탐험대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심지어 방송에도 안 나왔어요. 갑자기 똥을 먹으라고 하더라고요. 똥도 찍어 먹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거에 비하면 이건 고생도 아니죠.
고증해야 하는 게 있었어요. 왕의 똥을 먹어서 건강 상태 체크를 해야 한다거나… 그런데 그게 사실 방송에 나왔으면 제가 억울하지도 않은데, 지금 여기선 고생하면 그래도 수입이 있잖아요. 그런데 똥 찍어 먹고 그냥 저만의 추억으로 남았으니까 그런 거에 비하면 이건 고생도 아니죠.
당시에는 똥을 먹으라니까 그냥 먹은 거죠. 솔직히 기분이 안 나쁘면 그게 좀 그렇죠. 좀 많이 나빴죠. 사람한테 사람 똥을 먹으라고 하면… 그러니까 저는 촬영을 하고 나서 당시 PD님만 믿었죠. 어떻게 재미있게 나가겠지 싶었는데, 뭐 나오는 것도 없이 그냥 추억으로 끝났으니까, 기분이 나쁘죠.
연출이 아니라 다 실제로 했었어요.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된장에다가 고추장 좀 섞으면 똥 같거든요. 그렇게 해서 하면 연기할 수도 있잖아요. 지금 그 PD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서로 안 마주쳤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생각도 했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솔직히 하기는 했어요. 당시에 중고 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이걸 해서 내가 웃길 수 있다면 해야겠다고 해서 사실은 똥도 찍어 먹고, 벌레도 먹고, 아궁이에 있는 숯도 먹고, 오줌으로 세수도 했던 거거든요.
제가 지금 돌이켜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때 당시 너무 잘해야 한다는 강박, 너무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 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으니까, 재미가 없던 거예요. 지금처럼 편안하게, 저는 지금 개그맨 하라고 하면 너무 잘될 것 같아요.
그냥 잃을 게 없어요. 그냥 안 하면 안 해도 되고, 안 웃겨도 그냥 말라고 하면 되니까 지금은 가능하잖아요. 그때 당시에는 왜 그렇게 또 움츠려 있었고, 선배들도 무섭고, 형들한테도 괜히 눈치 보이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되게 당당하게 하니까 오히려 더 재미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거든요.
지금 형들 만나면 그래요. 개그맨 같이 했던 형들도 그래도 멘트가 많이 좋아졌다고 해요. 그러니까 이게 사실은 속에 다 있던 건데 맨날 굽신거리기 바빴기 때문에 할 타이밍이 없었어요. 지금은 오히려 더 당당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다시 개그맨을 하고 싶지는 않고요. 개그맨에 대한 미련은 아예 없어요. 여기에 집중해서 장사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사는 데 되게 만족하면서 재미있게, 여기 분들 웃겨가면서 사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여기 길 건너편에 양평해장국 집이 있거든요. 거기가 전국 양평해장국 매출 중의 1위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뭘 해도 하나 더 저희가 열심히 하자고 해서 새벽 5시에 문을 열었어요. 아침 장사 손님을 저희가 끌어오려고 한 거죠. 그때 많이 홍보도 되고, 알아주시는 분들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며 가며 소문도 많이 나고 그래서 지금 장사가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가 카페를 또 마련해 놨어요. 카페 시설 때문에 오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 카페 시설은 다 무료예요. 부대찌개가 9,000원인데 이렇게 커피까지 드리면 안 남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도 저희는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시기 때문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매출이 3,000~4,000만 원 하면 1,000만 원 남겠지만, 그 이상을 훌쩍 뛰어넘으면 남는 게 되게 많아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수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고마우니까, 감사하니까 이렇게 해 드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지난달은 매출이 9,500? 9,560만 원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 4,000~5,000만 원 남는 것 같아요. 노하우라고 하면 저희가 처음에는 사리면을 농심 하나만 썼어요. 그런데 이 근처에 오뚜기 공장이 있어요. 혹시나 그 손님들 오셔서 기분 상하실까 봐 두 가지로 저희가 갖다 놓은 거거든요.
실제로도 공장에서 오세요. 그럼 이거 보시고 재미있다고 해요. 이렇게 처음에 농심만 쓰다가 자기들 것도 쓴다고 고맙다고 하죠. 그분들도 약간 자부심 같은 게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오시면 오뚜기가 더 많이 나간다는 이런 농담도 하거든요. 이런 얘기 하면 재미있기도 하고… 그분들도 농담인 건 아시겠지만, 기분 좋게 웃으시면서 식사하고 가시는 것 같아요.
개그맨 생활을 했을 때 아이디어 짜고 이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식당에도 어떤 걸 반영하면 더 좋을지 평소에도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거든요. 그런 것들 때문에도 장사가 잘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주류는 다 3,000원이에요. 저희는 식당이지, 술 파는 데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충분히 3,000원으로 드려도 괜찮습니다. 음료도 1,000원인데요. 원가가 1,000원이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남으니까 1,000원에 드릴 수 있는 거죠. 많이 남지는 않아도 저희가 손해 보면서 팔지는 않으니까요.
카운터 준비물에 머리 끈도 있고, 상비약도 있어요. 식당으로 성공하신 형님이 말씀하시는 거 하나하나 적어서 반영한 거거든요. 어쨌든 손님들이 오셨을 때 불편함을 겪을 수 있는 것을 편하게 해 드릴 수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다 해 놨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사람들한테 재미를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까 이쑤시개 같은 것도 되게 단순한 거지만, 재미있게 뽑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찾아봤어요. 보다 보니까 이쑤시개 기계가 있더라고요. 손님들이 신기하다고 한 번씩 무조건 해 보시고 가시거든요.
2년 만에 극과 극의 삶을 살고 있어요. 주거환경부터 말씀드리면 원래 반지하에 살았어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름에는 습하고 겨울에는 더 춥고… 반지하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그래도 지금은 가정생활을 아파트에서 하고 있고요. 저희 보금자리가 생겼다는 게 다행스럽죠.
사실 개그맨 생활할 때는 어쨌든 수입을 많이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기한테 해 주고 싶었던 게 많았는데… 마음만 그렇지, 직접적으로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이 항상 아팠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정도 돈을 벌고 있으니까 그걸 직접적으로 해 줄 수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고요. 집을 옮기게 됐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던 건 저희 아들 방이 생긴 게 사실 가장 좋아서… 그것 때문에 이사한 거예요.
아들이 친구들이랑 같이 그런 얘기한다더라고요. “너 어디 살아?” 했을 때 아파트 산다고 하는 게 내심 부러웠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같이 아파트 사는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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