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5년 1월 10일 미 해군은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부근에서 수천 파운드의 채프를 투하해 레이더 추적을 회피하는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아마 전투기 등 군 항공기의 가장 위험한 적 중 하나는 전투기를 탐지하고 추적하는 적 레이더일 겁니다. 레이더에 걸리면 지대공 미사일이나 공대공 미사일 등으로 요격이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적 레이더가 전투기를 추적할 수 없도록 레이더를 교란시키는 방식 중 하나는 채프라는 것을 공중에 살포하는 겁니다. 채프는 레이더를 교란시키기 위해 만든 미세한 금속성 먼지와 같은 형태인데 이 작은 금속 조각들은 레이더 전자기파를 거의 100% 반사시키는 알루미늄과 같은 재료를 씁니다.
채프를 뿌리면 레이더는 목표물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레이더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가장 전통적이고 기초적인 전자 방해 공격인 것이죠. 당시 미 해군은 이를 투하한 후 레이더 추적을 회피할 수 있는가를 훈련 중이었는데 전혀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샌디에이고 지역에서 약 3시간 동안 전기공급이 중단되면서 65,000여 개 시설에 정전이 발생했고 신호등까지 꺼지면서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어야 했죠.
하지만 미국 정부와 전력 회사는 정전 사고의 원인이 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이를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전 사고는 미국 정부에 상당한 충격이었는데 이 사고를 계기로 정전 사고를 은폐하고 극비리에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무기 개발을 시작합니다.
단 한 방에 모든 전력공급을 중단시키는 무서운 무기, 전력 복구에 신경이 쏠려있을 때 본격적으로 폭격을 퍼부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사탄의 무기, 한국 역시 5,600억 원을 쏟아부어 개발하기로 천명한 이 무기를 알아봐야겠습니다.
2022년을 3일 앞둔 지난 12월 28일 국방부는 ‘2023~2027년 국방중기계획’을 공개했습니다. 5개년 국방중기계획은 매년 수립해 군사력 건설 및 운영의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크게 방위력 개선 분야, 전력 운영 분야, 부대 계획 분야 등 3개로 구분합니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5년간 331조 4천억 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기로 했는데 방위력 개선 분야에서 특별한 무기가 하나 눈에 띕니다. 바로 적 전력망을 무력화시킬 ‘정전탄’을 개발하겠다는 것인데요.
도대체 이 정전탄이 무엇이길래 국방중기계획에 등장한 것일까요? 위 미국의 실험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한동안 정전 사고를 은폐한 미국 정부가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쉽게 말하면 정전 사고를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 무기를 만드는 겁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미 해군 항공기 30여 대가 해안에 살포한 채프가 원래는 바다로 떨어졌어야 하는데 이들이 전력 발전소에 낙하하면서 전기공급이 마비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잠시 언급했던 채프는 알루미늄 등의 금속 물질이 코팅된 미세한 조각들인데 이들이 송전선 등에 달라붙어 전기공급을 방해한 겁니다.
이 원리를 알게 된 미군이 이 원리를 응용해 무기로 발전시킨 것이고, 쉽게는 정전탄, 정확한 명칭은 ‘탄소섬유탄’입니다. 은밀히 극비리 개발 중이던 정전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991년 걸프전이 처음입니다. 정전탄의 구조는 일반 전차 혹은 인마살상에 사용되는 자탄과 동일한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개의 자탄이 미사일처럼 생긴 탄두 안에 있다가 탄두가 폭발하면 공중에서 공기를 타고 확산하죠.
자탄에서 빠져나온 나노미터 굵기의 탄소 입자가 공기를 타고 떠다니다 송전선이든 변압기든 전기가 통하는 시설에 앉는 순간 전기 합선과 누전을 발생시켜 전력 공급을 차단하게 되죠. 쉽게 말하면 전력공급을 차단함으로써 전기로 작동하는 모든 시설을 먹통으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여기에 합선이 더 잘 일어나도록 전도가 높은 니켈 등을 도금하기도 합니다. 당시 미군은 정전탄을 장착한 토마호크 미사일로 바그다드의 변전소를 공격해 이라크 전역 발전시설의 85%를 마비시켰습니다. 전기는 물론 모든 통신시설이 먹통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상당한 혼란이 야기됐었죠.
뒤에서 다루기는 하겠지만 한국 역시 정전탄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고 있고 이는 분명 북한과의 전면전이 발생하면 사용하게 될 것이고 아마 전 세계적인 사용 빈도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전력공급을 차단시키고 통신시설을 마비시키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지만,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비살상용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민간인 피해라는 윤리적인 책임을 피하기 어렵지만 정전탄은 인명 살상용 무기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 전장은 미사일이나 전투기 폭격 등의 불꽃으로 시작되는 전쟁이 아니라 어둠으로 시작되는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올해 처음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휴전국이기 때문에 항상 북한과의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무기체계를 강화해 왔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미사일 기지 및 전력망을 파괴할 수 있는 정전탄 개발을 2006년에 이미 시작했죠. 당시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응용연구를 시작했고 시제품 개발업체로는 풍산을 선정했었습니다.
3년간 연구개발과 시제품을 생산해 성능검사를 통과하면 양산을 시작할 계획으로 13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습니다. 그러다 10년 뒤 2016년 발표된 ‘2017-2021 국방중기계획’에 다시 탄소섬유탄이 등장하는데 당시 우리 군은 2021년까지 탄소섬유탄을 신규 개발해 수백 발을 실전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ADD는 탐색 개발을 통해 체계와 주요 구성품에 대한 위험분석과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개발 가능성을 확인했고, 2022년 3월에 공개한 사업내역서에서 2025년까지 정전탄 체계개발 사업이 완료할 것으로 공지한 만큼 거의 막바지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데요.
당시 관계자는 ‘탄소섬유탄이 북한 대형발전소 상공에서 폭발하면 핵과 미사일 기지 그리고 지하에 있는 7,000여 개의 군사시설에 공급하는 전력망이 끊겨 전쟁 수행 능력이 무력화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는데요. 북한의 가장 큰 전력 설비는 단연 수력발전입니다. 한국은 화력, 원자력, 신재생, 수력 등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지만, 북한은 수력이 약 63%, 화력이 37%를 차지합니다.
물론 1980년대 말 구소련의 도움을 받아 44만 kW급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기도 했었으나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중단됐고 한반도 에너지 재개발기구가 신포지역에 경수로형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했었으나 2차 핵 문제가 대두되면서 2006년 아예 종료되어 현재는 수력과 화력으로 모든 전력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북한은 산지가 많은 덕분에 작은 강들이 많은데 크지 않은 강까지 무리하게 막아 수력발전소를 건설했죠. 그러나 이러한 발전소들은 만약 우리 군이 탄소섬유탄 몇 개만 쏘면 전부 먹통이 되어 버립니다.
만약 평양 주변의 평안남도나 남포특별시에서 오는 송전선에 앉는 순간 평양으로 공급되는 전력은 물론 미사일 조립공장에 전력공급이 중단되고, 핵시설 인근에 있는 발전소를 공격하면 핵 개발은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최근 자강도를 비롯한 내륙지역에서 단거리 및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어 여기로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를 공격하면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데요.
쉽게 말하면 탄소섬유탄 하나로 북한의 눈과 귀, 무기까지 전부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인 겁니다. 이에 ADD는 지난 2020년 6월 모집 공고를 통해 정전탄 체계개발에 필요한 시제 업체 선정을 시작했는데 그 결과 풍산이 무기 케이스를 구축하고, LIG 넥스원이 유도 키트와 시스템 통합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신관은 한화가 맡아 개발하기로 하고 오는 2024년 11월 완료할 예정인데요. 이제 1년가량 남았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시험발사를 진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듯 한국이 몇 년째 정전탄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그 장점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999년 5월 유고슬라비아 중부지역 4만 피트 상공에서는 레이더망을 뚫고 등장한 미군 스텔스 폭격기가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투하한 폭탄들이 지상의 시설물을 직접 타격한 게 아니라 공중에서 자탄으로 분리되어 직접 타격하지 않고 거미줄 모양의 탄소섬유를 살포했죠. 정전탄을 쏜 겁니다.
이 폭격으로 거미줄 모양의 탄소섬유들은 지상 발전소에 달라붙었고 순식간에 송전시설에서 방전과 누전이 발생하면서 유고 전역의 전기 70%가 차단됐습니다. 그리고 이를 복구하기까지 20시간이 걸렸죠. 유고를 순식간에 암흑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인명살상은 제로에 가까웠는데요. 이 사례에서 정전탄의 장점이 드러납니다.
첫째, 전력공급만 차단할 뿐 시설과 인명피해가 거의 없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알 수 있듯 그간 전력 설비를 무력화하는 방법은 고폭탄으로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는 필수적으로 민간인 피해가 동반되고 윤리적 책임을 피할 수 없죠. 하지만 정전탄은 전력망을 무력화시키지만, 민간인 피해를 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윤리적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둘째, 일단 전력공급이 차단된 발전소를 재가동시키려면 송전선, 송전탑, 발전소에 거미줄처럼 내려앉은 탄소섬유를 전부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복구에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결과적으로 적군의 전쟁 수행능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죠. 더구나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핵심인 현대전의 특성상 통신 시설이 마비되면 전쟁 지휘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정전으로 인한 심리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탄소섬유가 발전소에 달라붙는 순간 암흑으로 바뀌게 되는데 야간에 이런 공격이 이루어진다면 극도의 혼란과 공포를 가져옵니다. 보통 전쟁은 사기에서 결정된다고 봤을 때 정전탄이 불러오는 혼란과 공포는 감히 상상을 초월하죠.
2006년부터 개발하겠다고 천명했던 정전탄은 2009년에도, 2017년에도, 2023년에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워낙에 전략무기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미 실전에 배치해뒀을 수도 있고 아직까지 개발을 완료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인 피해가 없고 완전한 공포를 선사해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무기라면 얼마든지 개발해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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