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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웅의 등장’…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 역사를 쓰다

세계 축구의 변방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분데스리가를 폭격한 차범근을 시작으로, 맨유의 박지성을 이어 현재 토트넘 에이스로 군림 중인 손흥민이 활약하면서 한국에서 이제 축구는 국민 스포츠가 됐습니다. 피겨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김연아 선수는 출전했던 모든 경기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올포디움’이라는 기록을 쓰고 한국 피겨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땄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역시 국민 스포츠로 편입되었죠.

평창올림픽에서 아이언맨 가면을 쓰고 금메달을 딴 윤성빈 선수 덕분에 동계올림픽에서 응원해야 할 종목이 또 생겼습니다. 여기에 이어 한국인의 모든 시선을 잡아끌 종목이 또 하나 추가됐습니다.

하계 올림픽의 ‘높이뛰기’인데요. 아무런 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다리 힘만으로 하늘을 날아야 하는 종목 ‘높이뛰기’, 그리고 우상혁 선수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겠습니다.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스포츠로 승화시킨 종목인 높이뛰기의 룰은 간단합니다. 자신이 목표로 설정해 둔 높이에 세워진 바를 뛰어넘으면 됩니다. 바를 떨어뜨리거나 바 밑으로 지나갔을 때는 실격 처리되죠. 이렇게 간단한 스포츠지만 높이뛰기는 하늘을 나는 ‘인간새’의 경연입니다. 우상혁 선수가 세운 기록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으로 하고, 높이뛰기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합니다.

1968년 멕시코 시티에서 열린 멕시코 올림픽은 하계 올림픽 분야에서 참 많은 스토리를 남긴 올림픽으로 기억됩니다. 고도 2,290m에 위치한 멕시코시티는 기압이 너무 낮은 까닭에 육상 단거리, 높이뛰기, 멀리뛰기, 던지기 등 대부분 종목에서 세계 신기록이 작성되면서 사상 최초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온 대회가 됐습니다.

특히 멀리뛰기에서는 ‘밥 비몬’ 선수가 기존 기록을 무려 55cm나 경신해 8.9m를 뛰면서 올림픽 최고 영웅으로 떠올랐죠. 그런데 대부분 종목과는 반대로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기에서는 산소 부족으로 모든 선수의 기록이 저조했습니다.

이때 마라톤계를 장악한 선수가 바로 아프리카 고지대에서 살던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입니다. 당시 금메달리스트는 에티오피아의 ‘마모 월데’ 선수입니다. ‘마모 월데’가 에티오피아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면, 전 세계 영웅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쿠와리’ 선수입니다.

42.195km를 뛰어야 하는 마라톤에서 중간에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 선수의 경기는 끝났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아쿠와리 선수는 레이스 중간에 옆 선수와 부딪쳐 넘어지며 머리와 어깨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결승까지 아직 20km가 남았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그가 경기를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완주에 실패한 18인의 마라토너에 자신의 이름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마모 월데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한 시간이 훌쩍 지난 후 스타디움에 도착한 그의 무릎에는 피딱지가 앉아 있었으나 그는 다리를 질질 끌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미 마라톤 시상식까지 모두 끝난 마당에 경기장에 남아 있는 관중은 거의 없었지만, 몇몇 관중이 그를 발견하고는 금메달리스트보다 더 큰 환호를 보내주었습니다. 3시간 25분 27초라는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그렇게 부상을 안고 포기하지 않는 의지는 어디서 나왔느냐?”라고 물었고, 그의 대답이 역작입니다. “탄자니아 국민들이 5,000마일 떨어진 이곳까지 저를 보내준 것은 출발선에 서라는 것이 아닌, 완주하고 결승선을 통과하라는 뜻입니다.” 이 한마디는 올림픽에서 나온 가장 훌륭한 명언이 되었죠.

그런데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의 진짜 영웅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미국 대표 높이뛰기에 출전한 ‘딕 포스베리’라는 선수입니다. 경기장에서 그는 도움닫기 후 얼굴과 배를 하늘로 향하도록 뛰었고, 2.27m를 뛰어넘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왜 영웅이 된 것일까요?

높이뛰기의 역사가 1968년 전후로 나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가 시도한 얼굴과 배를 한 향하도록 뛴 자세가 이때 처음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포스베리 이전까지 높이뛰기 선수들은 ‘가위뛰기’와 ‘벨리롤오버’ 도약법으로 바를 넘었습니다.

가위뛰기는 양다리를 발에 걸쳐 앉듯이 뛰어넘는 자세를 말하고, 벨리롤오버는 얼굴을 땅으로 향한 뒤 다리를 솟구쳐 뛰어오르는 자세를 말합니다. 이미 얼굴과 배가 땅을 향해 있고 복부가 막대기 위를 구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벨리롤오버(Belly Roll Over) 또는 등이 하늘을 향해 있다는 의미의 ‘등면뛰기’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포스베리가 배를 하늘로 향하는 혁명적인 시도를 했고, 이후 이 도약법을 ‘포스베리 플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이후 높이뛰기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다음 올림픽에서 40명의 선수 중 28명이 포스베리 플롭을 시도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이후 모든 선수가 포스베리 플롭으로 높이뛰기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포스베리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선수로 기억됩니다.

그간 한국에서는 동계 올림픽과는 달리 하계 올림픽 육상 종목에서만큼은 그렇게 큰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높이뛰기 종목에 우상혁이라는 돌연변이가 등장해 한국인도 이런 종목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지난 7월 19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 필드에서 열린 ‘2022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 진출한 우상혁 선수는 최종 2m 35cm를 뛰어넘어 2위로 은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은메달을 획득한 후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기분이 정말 좋다”라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는데요.

금메달이었다면 더 좋겠지만 은메달로도 충분히 기쁜 이유는 한국 육상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리스트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현역 최고 선수로 꼽히는 카타르의 ‘무타즈 에사 바심’을 넘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됐다는 점입니다.

그는 “세계선수권, 올림픽이 남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 노력해서 금메달을 따는 더 역사적인 날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며 다음번에는 반드시 금메달리스트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요.

이날 경기에서 그의 경기 운영은 다소 위태위태했습니다. 2m 19cm, 2m 24cm, 2m 30cm를 모두 1차 시기에 넘었습니다. 그리고 2m 33cm를 1, 2차 시도에서 전부 실패해 위기에 몰렸으나, 3차 시기에서 완벽한 자세로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2m 35cm에 도전해 1차 실패, 2차 성공으로 은메달을 확보했죠. 그 후 바심을 넘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차 시기에 2m 37cm에 도전했으나 아쉽게 실패하고, 바심이 1차 시기에 2m 37에 성공하자 우상혁은 승부수를 띄웠는데요. 바 높이를 2m 39cm로 올려 아예 금메달에 도전하기로 한 겁니다. 아쉽게 두 번의 시도에서 이를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도전은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은메달을 받아 들고 더 역사적인 날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는데요.

그의 말은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이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현재 세계 최고 점퍼 바심은 31세, 이탈리아의 장마르코 탬베리는 30세로 다소 나이가 있습니다. 우상혁 선수는 이제 고작 26세입니다. 짧은 머리, 거수경례에서 알 수 있듯 아직 군인 신분이죠.

타국 두 선수의 기량이 점차 하락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우상혁 선수의 기량이 더 오를 것 역시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 각오처럼 역사적인 날을 만들 기회는 연달아 찾아옵니다.

2023년 3월 중국 난징에서 세계 실내선수권대회가 열리고, 8월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립니다. 2024년 7월에는 파리 올림픽이, 2025년에는 도쿄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죠. 현역 최고 높이뛰기 선수로 꼽히는 카타르 바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된 우상혁 선수가 앞으로 바심을 넘어설 기회는 매년 한두 차례 대기하고 있는 겁니다.

원래 우상혁 선수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지만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올림픽에서 2m 35cm를 뛰어넘으면서 4위로 경기를 마쳤지만, 1997년 이진택이 세운 2m 34cm를 뛰어넘는 한국 신기록을 23년 만에 수립하며 대중의 뇌리에 그의 이름을 강하게 각인시켰죠. 올림픽 전까지 개인 최고 기록이 2m 31cm에 불과했지만 올림픽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 신기록을 세운 겁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2022년 3월 20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2022 세계실내육상챔피언십’에서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 마르코 탬베리를 넘어 우승을 차지했고, 5월 14일 카타르 도아에서 열린 ‘2022 다이아몬드리그’ 개막 시리즈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다이아몬드리그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만 초청받는 대회로, 그는 첫 출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는데요. 이날 경기는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바심 선수도 출전했으나 도전한 모든 높이에서 실패해 우상혁 선수의 금메달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오레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새로운 영웅의 대관식을 기대하게 했는데요.

이제 그에게 남은 목표는 세계선수권 우승과 올림픽 금메달입니다. 그간 올림픽 육상에서 한국은 1992년 황영주의 마라톤 금메달, 1996년 이봉주의 은메달이 있었지만, 트랙&필드에서는 메달리스트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우상혁 선수가 한국 최초의 높이뛰기 ‘메달리스트’가 아닌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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