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국가 간 영토를 두고 강한 대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남중국해를 두고 대립 중이고 일본과 러시아는 쿠릴열도를 두고 다투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은 센카쿠 열도를 두고 싸우고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았으나 간도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동아시아 국가가 중심이 된 영유권 분쟁은 국가의 이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전개되는데요. 한국 역시 국제법적으로도 실효적으로도 한국 영토인 독도를 두고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을 지정하면서 독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일본이 생떼를 쓰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에 대해서는 차후 다시 한번 자세히 다루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일본 영토 중 한국이 반드시 찾아와야 할 섬 하나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지난 2009년 6월 일본의 군사 전문 잡지 ‘군지겐큐’에는 ‘다케시마 포폭격 작전은 가능한가’라는 기고문이 실렸습니다. 독도라고 불러야 하지만 원문을 그대로 가져오다 보니 다케시마라고 언급한 점은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이 기고문을 쓴 주인공은 다카이 미스오라는 전 육상자위대 교관 출신입니다. 그는 “독도를 공격한다는 것은 군사의 ㄱ도 모르는 이가 떠올리는 황당한 공상이 아니다”라고 썼습니다. 일본인의 속마음을 여지없이 드러낸 이 기고문에서 그는 다양한 공격 루트를 제시한 후 “이 제안을 정부가 참고해야 하며, 방어 작전을 재검토하고 국방 체제 전면 재검토를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독도 점령 시나리오를 접한 한국 네티즌은 일제히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면 우리는 대마도를 점령해 협상 우위를 점하면 된다고 맞섰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히로시마에서 독도까지가 약 200km 거리이고 한국에서도 비슷한 거리로 측정됩니다.
하지만 대마도는 다릅니다. 부산에서 대마도는 고작 49km 떨어져 있습니다. 맑은 날은 부산에서 대마도가 보일 정도로 가깝죠. 반면 대마도는 일본 규슈에서 무려 147km 떨어져 져 있어 오히려 한국에 더 가깝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독도보다 무려 3,700배나 큰 섬입니다. 그러니까 일본 자위대가 독도를 침공하면 한국군이 재빨리 대마도를 빼앗아 협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그런 주장을 반대할 계획은 없지만 전제가 잘못됐습니다. 독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본 땅 대마도를 탈환하자는 그 주장 말이죠. 왜냐하면 원래 대마도는 우리 영토였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 8월 18일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정부 수립 후 처음 연 기자 회견에서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할 것이다. 대마도는 상도와 하도 두 개 섬으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 영토인데, 350년 전 일본이 이를 불법으로 탈취한 것”이라며 당장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일본에 요시다 시게루 내각은 이에 대해 강한 반발을 표했는데, 이에 맞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9월 9일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을 발표해 버립니다.
그리고 일본이 이를 수긍하지 않자 이듬해 1월 8일 연두 기자 회견에서 다시 한번 일본을 압박합니다. “대일 배상 문제는 임진왜란부터 기산해야 한다”라면서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350년 전 일본인이 그 섬에 침입했고 도민들이 민병을 일으켜 그들과 싸웠다. 그 역사적 증거는 도민들이 이를 기념하고자 대마도 곳곳에 건립한 비석을 일본인이 전부 뽑아다 도쿄 박물관에 갖다 둔 것으로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는데요.
그러면서 “이 비석도 찾아올 계획이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으므로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라고 역설했는데요.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해 12월 31일 연말 기자 회견에서도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마도 문제는 대일 강화 회의 석상에서 해결할 수 있고, 일본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역사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라며 대마도 영유권을 거듭 주장했습니다. 이런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반환 요구는 무려 60차례에 걸쳐 이뤄졌다고 하죠. 그러나 이 문제는 6.25전쟁을 겪으며 흐지부지됐는데요. 그가 지속해서 요구했다면 어쩌면 한국 땅으로 귀속됐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같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주장이 억지 주장은 아닙니다. 미국 문서관리기록청(NARA)에서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고 표시된 지도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어떤 내용일까요?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정부는 ‘JANIS’라는 육·해군 합동 정보 조직을 운영했습니다. 당시 JANIS는 전쟁 중 세계 곳곳 수행하게 될 미군의 군사 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취합해 책으로 펴냈는데요. 그중 제75권은 한국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2권으로 편철된 이 책은 ‘Korea’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요.
제1권의 표지에는 ‘비등록 기밀’ 즉 등록되지 않은 기밀문서라는 의미의 문구가 기재되어 있는데 서문에 “이 책은 우리가 한국에서 수행하게 될지도 모를 군사작전 계획의 바탕이 될 구체적인 지형학적 정보를 하나의 출판물로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미 책 제목에 대마도 포함이라고 쓰여 있는 것처럼, 781페이지로 구성된 책 전반에 걸쳐 한국의 모든 지형과 더불어 대마도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데요. JANIS는 “한국은 소수의 큰 섬과 수백 개의 작은 섬을 가지고 있는데 울릉도, 대마도, 제주도가 대표적이다”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당시 일본은 자신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맥아더 연합군 최고 사령관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정문기 박사의 주장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외무성이 개입합니다.
외무성은 대마도 반환 요구에 대한 반대 자료 작성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한 후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등 일본의 5대 학회를 모두 동원해 2년 동안 대마도와 관련된 수없이 많은 연구 결과를 쏟아 냈는데요. 대표적으로 1949년 ‘일본역사’에 발표된 ‘쓰시마의 역사적 위치’가 있죠.
한편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본에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토대가 된 자료는 미국이 작성한 위 책이 아니라 한국에서 발표된 논문입니다. 1945년 ‘한국 수산학의 태두’라고 불리는 정문기 박사가 쓴 ‘대마도의 조선 환속과 동양 평화의 영속성’이라는 논문인데요.
정문기 박사는 “대마도는 고려에서 조선까지 약 600년 넘는 시간 동안 우리에게 복속된 땅”이었다는 증거를 세세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대마도는 해적의 소굴이었고 밀수의 거점이었으며 침략 전쟁의 전초기지였다”라는 점을 들어 동양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한국으로 환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그리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초안 작성 당시에도 한국 정부는 “조약에 한국 일본으로부터 대마도의 영유권을 돌려받는다는 문구를 포함할 것”을 미국 측에 공식으로 요청했습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보유한 외교 문서에 따르면 당시 한국 정부는 미 국무부에 문서를 보내 “한국은 정의가 영구적 평화의 유일한 기반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대마도의 영토적 지위에 대한 완전한 검토를 할 것을 요청한다”면서 “역사적으로 이 섬은 한국 영토였으나 일본에 의해 강제적, 불법적으로 점령당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5번째 문단(paragraph)에서 일본은 사할린의 남쪽 절반과 모든 부속 도서 그리고 쿠릴 열도를 소련에 넘겨주도록 명령받는다”고 되어 있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이런 사실을 고려해 한국은 일본이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칭 청구를 분명히 포기하고 그것을 한국에 돌려줄 것을 요청한다”라고 주장했는데요.
그러나 당시 미국은 “대마도는 일본이 오랫동안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으며, 평화 조약은 대마도의 현재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변으로 이를 거절했습니다.
대마도가 한국 고유의 영토라는 점은 역사적으로 증거가 차고 넘칩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직전 제작하도록 명령한 ‘조선팔도 총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그려져 있고, 대마도는 경상도에 속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1830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국도’라는 지도에도 대마도는 조선 영토로 그려져 있죠.
그뿐만 아니라 ‘산가요락가’를 쓴 일본의 승려 겐신은 자신의 저서에서 ‘대마도는 고려의 땅’이라고 적기도 했고, 1868년 일본 메이지 유신 당시 대마도의 마지막 도주 ‘종의달’이 일본 조정에 쓴 봉답서에는 “이번 서류부터는 조선에서 만들어준 관인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우리 조정에서 새로 만들어주는 관인을 사용함으로써 옛날부터 조선의 신하로 살아온 잘못된 점을 뉘우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종의달이 봉답서에 쓴 내용을 보면 대마도가 옛날부터 조선의 영토였음을 인정하고 있죠. 하지만 당시 대마도에 가뭄이 들고 흉년이 겹쳤는데, 조선에서는 대마도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하찮게 취급하자 도주 종이달이 자신과 도민들이 먹고살기 위한 식량을 일본으로부터 지원받기 위해 봉답서를 썼던 것입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대마도가 한국 땅이었다는 사실은 많습니다. 대마도가 언젠가 반드시 한국이 되찾아야 할 소중한 영토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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