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상담심리사웃따>라는 채널명으로 유튜브를 하고 있고, 프리랜서로 상담하며 강의도 하고 있는 나예랑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잘해 주려고 노력해도 주변 사람들이 계속 떠나가는 사람들, 그래서 결국에 혼자가 되는 사람들이 갖는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일단 먼저 생각난 것은 눈치를 보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은 타인에게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죠. 사실은 타인에게 관심이 있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사랑받는 것, 내가 수용 받고 인정받는 것에 더 많은 비중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그 사람에게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 나의 주장을 잘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다 맞춰 주고 따라가기만 하면서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는 참 착하고 좋은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좀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게 되는 것 같아요. 눈치를 많이 보는데, 실제로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사실은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선물을 줬는데, ‘이걸 주면 이 사람이 좋아하겠지?’, ‘이 사람이 나를 더 특별하게 생각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주는 건데, 사실 이 선물이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좋아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는 거죠.
눈치를 살살 보면서 줬지만,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고맙지만, 썩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았던 사람 정도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착하지만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 그냥 피상적인 관계를 맺지만, 진실한 관계는 어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눈치 보는 사람은 사실 사람이 떠나가는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겉도는 관계만 맺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타인을 도구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타인을 착취하는 사람이죠. 타인이 나와 동등한 대상이 아니라 나를 인정해 주는 도구, 칭찬해 주는 도구, 위로해 주는 도구, 사랑해 주는 도구화시켜서 대하는 사람들이에요.
이러면 타인이 느끼기엔 자신이 고갈되는 것 같고 진이 빠진다고 할까요? 계속 공급만 해 줘야 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블랙홀처럼 타인 안에 있는 에너지를 쭉쭉 빼먹는, 마치 위로나 인정과 사랑을 맡겨 놓기라도 한 것마냥 빨대에 꽂아서 도구화시키는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오래 남기 어렵다는 거고요.
세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경계선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은 대인관계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선’이라고 하죠. 너와 나 사이에 있는 선, 이게 없는 사람은 ‘너’와 ‘나’를 합쳐서 ‘우리’라고 해야 하는데, ‘너’와 ‘나’를 합쳐서 ‘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도 ‘나’고, ‘너’도 ‘나’고, ‘우리’는 ‘하나’이고…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너는 무조건 나와 생각이 같아야 하고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거죠.
예를 들어서 내가 게임이 싫으면 너는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하고,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면 네가 떡볶이를 좋아해야 한다는 거예요. 모든 걸 공유해야 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고, 취향과 모든 생각까지, 정치 성향까지 같기를 바라는 거죠. 이런 걸 우리가 ‘융합’이라고 하죠. ‘융합’은 결론적으로 상처를 남기고, 스트레스를 주고, 서운하게 만들고, 상대방을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또 반대로 그 경계선이 너무 강해서 과분화된 사람도 있죠.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다며 굉장히 선을 강하게 긋고 자신의 어떤 것도 오픈하지 않은 채 페르소나로만 사람을 대한다면 또 관계가 오래가기 어렵겠죠. 경계선이 건강하다는 것, ‘너’와 ‘나’ 합쳐서 ‘우리’, 함께해도 괜찮고 따로 해도 괜찮은 선이 야들야들하게라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관계를 잘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런 사람들이 보이는 어떠한 행동이나 자주 사용하는 말버릇 같은 게 있다면, 특히 눈치를 보는 사람들은 “네가 좋은 걸로 해~”, “나는 뭐든 상관없어. 네가 좋으면 다 좋지~” 이렇게 얘기하죠.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약간 마음이 무거워요. 무겁고 또 답답하고, 뭔가 솔직하지 못한 것 같고, 벽이 있고 친밀하지 않아요.
그런데 오히려 제가 먼저, 강하게는 아니더라도 “나 오늘은 마라탕 먹고 싶은데, 그거 어때?” 이렇게 물어 봐주면 훨씬 수월하게 서로 조율할 수 있는 거잖아요.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눈치만 보는 사람은 오히려 불편함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분들이 자주 쓰는 말은 “네가 좋은 게 다 좋은 거지. 나는 너 하자는 대로 할게~”라는 말을 잘 써요.
또, 타인을 도구화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랑을 많이 하죠. 자기 얘기를 많이 하고 타인의 말에 잘 공감하지 않고, 공감한다고 해도 연기로 하기 때문에 굉장히 짧고, 별로 영혼 없이… 이야기가 결국 ‘나’로 돌아오죠.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대화를 할 거예요.
그리고 타인의 의견을 묵살하고 무시하고 내 말이 맞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할 겁니다.
또 경계선이 없는 사람들은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자 하는 어떤 집착하는 말, “네가 그러고도 나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어?”, “너는 변했어. 네가 처음부터 그랬다고 생각해?” 이런 말을 잘하죠. 그런데 사실 연애하는 경우에 더 그런 것 같은데, 연애하고 6개월까지는 서로 하나가 되는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에 ‘융합’ 상태여도 병적으로 보지는 않아요.
그런데 6개월이 지나서 한 2년째 접어들면 서서히 호르몬이 사라지게 되면서 ‘너는 너, 나는 나’로 분리되는 것이 사실 건강한 연애거든요. 그런데 그게 계속되지 않는다면 호르몬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심리적 요인이 있지 않을까요?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먼저 눈치를 보게 되는 사람들은 타고나기를 그럴 수도 있어요. 물론, 대인관계에 민감하고 타인에게 많은 무게중심을 두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좀 어렸을 때 애착을 잘 형성하지 못하고, 즉 공감과 사랑을 잘 받지 못하고 결핍되어 있는 경우에 타인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겠죠. 사랑받는 건 인간의 본능적인 거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어렸을 때 충분히 받아야 할 때 받지 못하게 되면 커서도 계속해서 그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상태가 되면서 계속 수용되고자, 좋은 사람이 되고자,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눈치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또 타인을 착취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본인이 그걸 충분히 받을 만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그것을 착취하는 형태로 받아내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실은 다 결핍에서 온 것인데, 타고난 성격에 따라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자기를 다 죽이고 따라가기만 하느냐, 아니면 나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강제로 빨대를 꽂아서 뽑아내느냐… 이런 식의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고요.
경계선이 없는 사람도 의존해서 공급받은 경험이 부족하니까 불안한 거죠. 그 사람이 나를 떠날까 봐… 그리고 전반적으로 ‘나는 사랑받을 수 없어…’, ‘나는 수용될 수 없어…’ 이런 역기능적인 핵심 신념이 있기 때문에 계속 그걸 의심하게 되는 거죠. 불안해하는 거죠.
내가 함께 있으면 그래도 나와 하나니까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일 텐데, 서로 분리되면 이게 의심하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하나가 되려는 행동 양상을 보일 수 있어요.
그리고 사실 같이 있어도 좋기만 한 것도 아닐 수 있어요. 어떤 작은 말 한마디에, 행동 하나에 그런 사람들은 계속 근거를 찾거든요.
내 역기능적 신념을 받쳐줄 만한 근거를 찾는 데 레이더망이 잘 발달하여 있어서 ‘얘는 변했구나…’, ‘나를 지금 모욕하고 있구나, 무시하고 있구나…’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이미 결핍을 겪은 상황인데, 그것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면 ‘나는 변할 수 없는 사람인가?’라면서 절망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이 지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핵심 신념을 바꿔야겠죠. 그러니까 결국 내가 낀 안경을 벗고 투명한 안경을 껴서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도록 신념을 바꿔야 할 거예요.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겠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무리 솔루션대로 해도 안 되고, 상담받아도 안 된다고 얘기하실 거예요. 단기간에 결코 되지 않는 것이죠. 내 평생을 그 안경을 끼고, 그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노력한다고 해서 한 2~3년 만에 핵심 신념이 바뀌기는 어렵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장기간, 멀리 바라보고 계속해서 자신의 신념을 인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게 굉장히 자동적인 사고고 무의식에 있는데, 그걸 자아의 위치로 꺼내서, 내가 의식의 위치로 꺼내서 나를 인지하는 거죠. 생각을 생각하는 것, 인지를 인지하는 것… ‘메타 인지’라고 하잖아요. 자신을 성찰하는 자기 성찰이기도 하고요.
그걸 통해서 내가 그런 신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저는 굉장히 많이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 상담 같은 걸 받는 방법도 있겠죠. 상담을 받게 되면 인지치료를 하게 되는데요. 신념을 바꾸는 치료인데, 혼자서도 해 볼 수 있어요.
내가 기분 나빠하는 어떤 상황이 있잖아요. 어떤 대인관계 속에서 누군가 나 빼고 둘이 이야기한다든지, 소근소근거리면 보통은 ‘둘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생각하고 넘길 수 있는 건데, 이 신념이 역기능적으로 잡혀 있는 사람은 둘이서 나를 욕하는 것 같고 좀 따돌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럴 때 그 순간에 굉장히 자동적으로 그런 생각이 딱 들 거예요. 그 순간을 잡아야 하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서 불쾌한 감정이 딱 올라온다면 그 순간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그 순간을 딱 캐치해서 ‘내가 지금 또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구나…’ 그때그때 바로잡아야 하고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면 자신의 과거를 좀 돌아보면서 나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떤 말을 들었으며, 어떤 분위기 속에서 살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서 사실 내가 사랑스럽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자란 환경이 내가 그렇게 느끼게끔 했다는 어린 시절에 대한 위로 같은 게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말씀해 드렸던 유형의 사람들이 하면 안 되는 것도 있어요. 대인관계 속에서 오히려 안 좋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행동은 앞서 말씀드렸던 것하고 반대가 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눈치를 보는 사람은 내가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에 초점을 두지 말고, 실제로 상대방을 진심으로 좋아하면 되는 것이죠. 내가 사랑받는 것에 초점 두지 말고, 실제로 사랑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거예요. 그러면 상대방에게 더 진실하게 대할 수 있고, 더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은 나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죠. 자기를 진심으로 대하는,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또 타인을 착취하고 도구화하는 사람들은 내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자기 자랑을 하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고 할수록 타인은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치고 떠나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은 타인은 나의 도구가 아니라, 상호 동등한 위치에 있는 하나의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타인을 도구화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아까와 같은 말이지만, 사랑받으려고 하는 것은 무게중심을 상당 부분 타인에게 둔 것이겠죠.
호흡기를 끼고 호흡하던 사람은 이걸 빼면 숨 쉴 수가 없는 것처럼 내가 받아야 할 인정, 애정, 사랑 같은 것이 내 안에서 자동적으로 끓어오르는 게 아니라,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타인으로부터 호흡기를 끼고 공급받다 보니까 굉장히 서로 힘든 거잖아요.
공급해 주는 사람이나, 계속 받아야 하는 사람이나 서로 힘들기 때문에 이걸 끊고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이 사람이고, 나는 나로 분리해야 하겠죠.
경계선이 없는 사람도 ‘우리는 서로 하나’가 아니라, 너는 너로 있고, 나는 나로 있을 때 우리가 서로 더 잘 사랑할 수 있고, 만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은 네가 나랑 달랐기 때문에 사랑한 거였거든요. 나는 그렇게 나에 대한 가치감이 없으면서 상대가 나처럼 된다면 과연 내가 상대를 계속 사랑할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나와 달랐기 때문에 눈에 들었던 거잖아요. 그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고, 상대방을 그대로 존중해 줄 때 나도 그렇게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계선이 없이 융합된 사람들은 타인의 한마디 말이나 작은 행동 하나에도 굉장히 상처받잖아요. 그럴 때 꼭 타인을 탓하거든요. “네가 나한테 그렇게 했잖아!”, “네가 나를 힘들게 했잖아!”라며 마치 상대방이 잘못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건 어떻게 보면 내 마음의 중심을 타인이 갖고 있다는 거잖아요. 내 마음을 열고 닫는 아주 중요한 열쇠를 타인에게 줘 버렸다는 거예요. 그것은 사실은 결코 건강하지는 않죠.
내 마음의 열쇠는 내가 꼭 쥐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지켜야 하고, 내 마음은 내 겁니다. 상대와 마음을 나눌 수는 있어도 전부를 줄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어렸을 때 이미 결핍 생겼고, 애착 장애가 생겼는데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이 드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은 피나는 노력에 의해서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고요.
자기 자신을 인지하고 아프고 부족한 나를 그대로 끌어안고 함께 갈 수 있다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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