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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몇 개야?’ 금괴보다 귀한 고려시대 참기름 병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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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 등의 옛날 무덤을 허가없이 파헤쳐 유물을 훔치는 일”을 두고 흔히 ‘도굴’이라고 합니다.

여기 한국 역사상 최악의 도굴꾼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바로 그 ‘이토 히로부미’인데요. 하얼빈 역에서 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즉시 군에 체포되었는데, 어차피 그에게 불리하게 내려질 판결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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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판사를 꾸짖고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며 당당하게 재판에 임했죠. 일본 법정에서 안중근 의사는 왜 그를 처단할 수밖에 없었는지 15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알렸는데요.

가령,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고종황제를 폐위 시킨 죄’, ‘한국의 교과서를 불태운 죄’, ‘군대를 해산시킨 죄’ 등등입니다.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를 처단한 안 의사는 얼마 뒤 당당히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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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 의사가 거론하지 않았던 이토에 16번째 죄악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도굴죄’입니다. ‘함부로 조선의 문화재를 훔쳐 빼돌린 죄’ 역시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한국 문화재 중 고려청자에 미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땅 곳곳의 고려시대 무덤을 마음대로 파내고 고려자기를 빼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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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묘를 파헤친다는 것이 조선인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효였기 때문에 웬만큼 미친 정신상태가 아니면 이런 짓을 지르지 않는데요. 이토는 그런 예의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본 왕에게 ‘거북모양 주전자’를 선물하고, 일본 왕가 및 귀족 들에게도 고려자기를 선물로 주며 자신의 입지를 강화해 나갔는데요. 당시 1,000점이 넘는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됐다고 알려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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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 극악무도한 이토 히로부미도 직지심체요절 원본을 가지고 있다는 전설의 도굴꾼 ‘서 씨’도 절대로 찾아내지 못한, 아니 영원히 찾아내지 못했을 고려청자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끌어올려 진 장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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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지난 2017년 3월 중순 전북지방경찰청은 갯벌을 훑으며 낙지잡이를 하던 어민 9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이들은 ‘매장 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요.

주거지에서 문화재 9점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충남 태안군 일대 갯벌을 돌며, 낙지잡이를 하는 것처럼 속이고 갯벌에 매장된 고려청자 등 도자기 9점을 도굴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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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억씩 호가하는 국보급 문화재는 아니지만, 고려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보통 고려청자라는 것은 옛 조상들이 부장품으로 함께 묻혔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어떻게 조개나 줍고, 낙지나 캐는 갯벌에 고려청자가 매장됐느냐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고려청자를 도굴한 지역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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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입니다. 보통 ‘바다의 경주’라고 부르는 바로 그 태안말이죠.

아래에서 더 설명하기는 하겠지만 태안을 ‘바다의 경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2007년입니다. 우리나라 유물 발굴 역사를 뒤집어 놓은 중대한 사건이 태안 깊은 바닷속에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하기 7개월 전인 2007년 5월 14일 밤, 쭈꾸미 잡이가 생업인 어민 김용철 씨는 이날도 신진도 부근에서 생업에 매진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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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씨는 기분이 상당히 좋았는데, 전날 밤 꿈 덕분입니다. 꿈속에서 그는 바닷가에서 마음 놓고 물장구치고 놀았는데, 어민들 사이에서 수영하는 꿈은 상당한 길목으로 여겨집니다. 그날 잡은 총 800여 마리의 주꾸미 중 한 마리가 조금 특이했는데요. 보통 주꾸미는 생존을 위해 소라껍데기 속으로 들어가 폐각류나 돌 등으로 입구를 틀어막는 특성이 있는데, 그중 유독 푸른 빛깔이 도는 녀석이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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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꺼내 보니 비색을 띤 작은 접시였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주위 동료들에게 알렸는데, ‘유물일 수 있으니 지자체나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들었습니다.

4일 뒤 그는 태안군청에 이를 신고하게 되는데요. 이 사실은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게 됐고 관계기관의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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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주꾸미가 끌어올린 푸른 접시는 고려청자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이것이 그 유명한 ‘태안 쭈꾸미 고려청자 사건’입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즉각 태안의 대섬 앞바다 아래에서 긴급 탐사를 실시했는데요. 그 아래에서 ‘청자유병 9점을 수습하고, 주변에 다량의 고려청자가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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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탐사지역은 이미 언론에 공개된 상황이었고, 도굴 위험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문화재청이 조사해역을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어로작업 및 수중잠수 행위를 금지하는 현장보존 조치를 취했는데요.

발굴 3일 만에 수심 15m에서 침물선을 찾아냈는데, 이 배에 ‘태안선’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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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선에서는 약 25,000점의 유물을 인양했는데, 그중 23,000점이 자기였고, 대부분은 12세기에 제작된 청자였습니다. 대부분 지푸라기와 목재를 이용해 묶어 포장한 상태였는데 그중 백미는 사자머리 모양 향로 두 점이었습니다.

두 향로 모두 날카로운 이빨과 매섭게 뜬 눈이 예사롭지 않았고, 두꺼비형 벼루도 꺼내 올렸는데 이들 모두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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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도굴꾼이 이를 노리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면 10억 원은 족히 호가했을 보물들이 전부 빛을 보지 못했을 텐데요. 그렇다면 이 태안선의 발굴을 이끌어 낸 주꾸미 어부 김용철 씨 있는 보상을 받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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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받았습니다. 조사 결과 이 청자들은 왕실에서 사용하던 최고급 고려청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귀족 층이 사용하던 고려청자 전반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유물이었고, 김용철 씨는 6만 원을 보상금 명목으로 받았습니다.

상태가 양호한 고려청자 한 점이 보통 1천만 원을 호가한다고 봤을 때, 대충 평균을 내도 2조 5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계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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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에 발견된 고려청자 가격이 2조 원을 훌쩍 넘었지만, 그가 신고한 것은 고작 주꾸미가 끌어올린 고려청자 한 점에 불과했기 때문에 보상금은 고작 6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약 12만 원의 평가액이 책정됐으나 그조차도 개인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6만 원을 챙겼고, 신고자가 6만 원을 받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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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이 남긴 문화재에 가격을 들이민다는 것이 조금 염치 없어 보여도 ‘2조 원이 넘는 보물을 발견하는 단초를 제공했는데, 고작 6만 원은 너무했다’는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그렇게 마련된 법이 ‘매장문화재법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로 2011년부터 시행됐습니다. 법 제21조 3항은 ‘발굴의 원인을 제공한 자에게는 문화재의 가치와 규모를 고려해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김용철 씨는 보상금 6만 원 외에 추가 포상금 2,000만 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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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평가액이 1억 원 이상인 경우, 1등급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1등급 포상금 2천만 원과 보상금 6만 원을 더해 총 2,006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태안선 발굴 도중 새로운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태안선 발견 지점에서 고작 2km 떨어진 마도 부근에서 어부 심선택 씨가 청자 26점을 인양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이죠. 이번에는 주꾸미가 아닌 그물에 청자가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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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선이라는 중요한 침몰선이 발견된 만큼 국립해양문화재 연구소가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했고, 이곳에서 고려시대 침몰한 선박 3척이 잇따라 인양됐습니다. 이들은 각각 마도 1호, 마도 2호, 마도 3호로 명명됐는데 태안선이 청자운반선이었다면, 이 침몰선은 곡물 등을 나르던 식량운반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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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물도 발견됐습니다. 마도 2호선에서는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과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및 죽찰’ 등 두 점이 발견됐는데, 이 유물은 전부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당시 청자에 매달린 대나무 조각은 이들이 각각 참기름과 꿀을 보낸 택배임을 말해 줬는데요. 이렇게 도굴까지 해서 찾아야 하는 최고급 명품 고려청자가 생활용기로 사용됐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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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신고 덕분에 마도 1, 2, 3호가 발견됐고, 인양된 유물의 가치는 약 3억 8000만 원으로 1등급으로 평가됐습니다.

심선택 씨는 이 신고 덕분에 3,384만 원을 포상금으로 10만 원을 보상금으로 받았습니다. 태안이 바다의 경주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이 사건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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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경주야 ‘신라의 천년고도’니까 워낙에 유물이 많이 매장된 것이 이해되지만 태안은 어느 왕조의 수도는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바다에 침몰된 유물이 많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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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바닷길’ 때문입니다. 고려 및 조선시대에는 곡창지대였던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곡물을 싣고 수도인 개경과 한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태안 앞바다를 지나게 됩니다.

그런데 ‘안흥량’이라고도 불리던 태안 앞바다는 우리나라 바닷길 중 가장 험한 곳으로 꼽힙니다. 명량해전으로 유명한 전남 해남의 명량, 황해도 인당수, 김포 손돌목과 함께 4대 험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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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은 특히 짙은 해무와 바다 밑에 숨은 암초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옛날부터 ‘배 지옥’이라고 불렸었습니다.

옛날에는 선박을 운행할 때, 한 척 당 한 개의 닻돌을 실었는데,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닻돌이 무려 120점을 넘습니다. 최소 100척 이상의 선박이 침몰했을지도 모르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태안에서는 주꾸미가 고려청자를 끌어올리고, 그물에 고려청자가 줄줄이 딸려나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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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태안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보물선들이 등장하게 될지 기대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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