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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명종도 부러워하는 ‘이것’ 가진 역대급 부자 공주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의혜공주(1521~1564년)는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의 차녀로, 어머니는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생모인 문정왕후였습니다. 그녀는 중종과 문정왕후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1531년(중종 26년) 의혜공주가 11세 되던 해, 그녀는 춘천부사 한승권의 아들인 청원위 한경록과 혼인을 하게 됩니다. 의혜공주와 한경록은 ‘숯장수와 혼인한 공주’라는 설화의 주인공으로 지금까지도 이 내용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설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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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폭정을 바로 잡고자 왕위에 오른 중종이 모처럼 11명의 딸과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중종은 누구 덕에 이렇게 호의호식하며 지내는지 물었고 다른 공주들은 모두 아버지의 덕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의혜공주만이 “사람은 자기 쌓은 업보대로 살아가는 것인데 어찌 아버지의 덕이라고 할 수 있냐”라고 반박하였습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중종은 이튿날 새벽 동대문을 열 때 제일 먼저 들어오는 자에게 의혜공주를 시집보내라고 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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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락원에 살면서 숯을 구워 한양에 내다 팔던 한경록은 타고난 성품이 부지런하고 성실하여 동대문이 열리면 늘 첫 번째로 장안에 들어왔습니다. 중종이 지정한 그날에도 한경록은 첫 번째로 동대문을 통과하였고, 결국 의혜공주는 한경록에게 시집을 가게 됩니다. 가난한 숯장수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래도 의혜공주는 아버지와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알뜰히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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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의혜공주는 남편이 일하는 숯터에 올라갔다가 거기에 있던 숯가마의 이맛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황금 덩어리였죠. 놀란 의혜공주는 남편에게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한경록은 대수롭지 않게 몇 해 전에 숯가마를 수리할 때 가져온 돌이라고만 했습니다. 의혜공주는 이것이 황금 덩어리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공주와 한경록은 황금 덩어리를 팔아 논밭을 마련하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큰 부자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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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설화와 미담이 전해지는 의혜공주와 한경록의 실제 삶은 달랐습니다. 공주는 결혼 이전부터 사저와 관련하여 여러 잡음이 있었습니다. 1529년(중종 24년) 조정 대신들은 비가 새고 무너질 위험이 있는 곳들을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의혜공주의 사저 공사에 들어간 재물이 새로 짓는 집에 들어가는 것과 정도가 비슷하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듬해에는 흉년으로 힘든 상황인데도 군인 5백 명으로 하여금 의혜공주의 집을 수리하게 하였다며 불만을 표시합니다. 또한 공주가 시집을 간 해인 1531년, 그녀가 집을 채색하기 위해 많은 물건을 사들인 것을 두고 조정 대신들은 큰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렇게 의혜공주는 공주가 어릴 때부터 조정에서 문제를 제기할 만큼 중종의 사랑 속에 많은 혜택을 받고 자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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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의혜공주와 부마 한경록은 여러 비행을 일으켜서 종종 문제가 됩니다. 1541년(중종 36년), “한경록은 정순옹주의 부마인 여성위 송인과 함께 시장의 장사치들과 어울리며 불의한 일을 많이 하여 여론이 좋지 않다”라는 내용의 상소가 올라오게 됩니다. 권력을 이용하여 전답, 가옥, 노비, 물화와 같은 것들을 처리하면서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상소가 계속해서 올라왔으나 중종은 어린 부마들이 사리 분별을 못해서 벌인 일이며, 종들의 말만 듣고는 죄를 다스리기 어렵다면서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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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543년(중종 38년) 9월 사헌부에서는 한경록이 목욕을 핑계로 강원도 고성에 내려가는 바람에 지나가는 고을들이 그를 맞이하고 배웅하느라 고생이 많으니 그를 돌아오게 하라는 요청을 하게 됩니다. 중종은 처음에는 이를 묵살하였으나, 계속해서 지방마다 상소가 올라오자 곧 돌아오게 합니다. 물론 이때에도 중종은 처벌을 요구하는 사헌부의 요청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중종 대에 의혜공주와 한경록은 화려한 가옥, 사적인 이득과 같은 사생활 문제를 종종 일으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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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544년 12월 의혜공주의 아버지인 중종이 승하하고 그녀의 이복형제인 인종이 조선의 제12대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인종은 왕위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고 1545년 7월 친동생 명종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명종은 12세로 어린 나이였기에 명종을 대신하여 어머니인 대왕대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게 됩니다.

이 일은 인종에서 명종으로의 단순한 왕권 교체그뿐만 아니라 인종을 지지하던 대윤에서 명종을 지지하던 소윤으로의 정권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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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이 왕위에 오른 후 두 달도 되지 않은 시점, 대왕대비 문정왕후의 밀지를 받은 윤원형은 명종의 왕권을 굳히기 위해 대신 이기, 의혜공주의 부마인 한경록 등과 함께 윤임을 비롯한 대윤 일파의 대부분을 역모죄로 몰아서 숙청하는 을사사화를 일으킵니다. 반대파를 제거한 문정왕후는 소윤일파와 함께 정권 실세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해 9월, 한경록은 공을 인정받아 위사공신 이등에 오르며 공신이 됩니다. 이렇게 공신에 오르면서 의혜공주와 한경록은 문정왕후로부터 더욱 큰 총애를 받게 됩니다. 문정왕후는 딸 의혜공주의 집을 자주 방문하였으며 명종 또한 누나에게 병이 들었을 때 자주 문병을 왔습니다. 이렇듯 최고의 권력자에게 많은 배려를 받았던 공주와 한경록의 권세 또한 높아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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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경록은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사생활 문제그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는 조정 대신들에게도 무례함을 일삼았고 임의로 백성을 잡아 가뒀을 그뿐만 아니라 공이 있는 부마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수수하거나 인사 문제에도 관여했습니다. 공주 또한 명나라 사신으로 가는 이들에게 개인적인 물건을 사 오라고 지시하거나 백성들의 땅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녀의 아들들도 말썽을 일으켜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됩니다.

오죽했으면 1556년에 한경록의 집에 벼락이 치자 사람들은 ‘벼락이 경록의 집을 쳤다’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한경록은 여러 행실이 문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정왕후와 명종의 비호로 큰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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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의혜공주는 명종과 문정왕후를 배경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심지어 명종이 그녀의 집을 보고 궁궐보다 더 훌륭한 정원을 가졌다고 감탄했으며 사람들은 당대 동방의 제일가는 부자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564년 의혜공주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는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으며 장남은 판관 한의, 이남은 도사 한완, 삼남은 동지 증 판서 한순이고, 딸 둘을 낳았으나 그 가운데 한 명은 1544년 9월 4일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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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1577년에 을사사화의 위훈삭제가 결정되면서 을사사화로 책훈된 위사공신들에게 벼슬과 품계를 떼고 도성 밖으로 내쫓는 형벌이 내려졌습니다. 이때 한경록은 선조의 비호를 받으며 파직만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위세 있게 한 시대를 풍미한 부마 한경록은 1593년 임진왜란 중에 왜군에게 살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의혜공주와 한경록의 묘소는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산 119-39번지에 있으며 2007년 7월 25일 의정부시 향토 유적 제14호로 지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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