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내 곁에 3명의 사람만 둘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을 내 옆에 두는 것이 좋을까요? 첫 번째, 자기 자신을 그냥 이해하는 게 아니라 깊이 이해하고 스스로를 되게 존중할 줄 아는 사람, 자기 자신에게 예의를 갖출 수 있는 사람을 옆에 두고 싶어요.
그리고 정반합을 따르면서 조율적인 대화를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을 또 내 옆에 두고 싶어요. 정반합이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죠.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들이 되게 다를 수 있죠. 그러면 약간은 아쉬운 점이 있지만 서로 충족될 수 있는 합에 대한 것을 조율해 나가는 거죠. 나는 A, 상대방은 B, 그러면 우리는 어떤 C를 도출해 낼까? 일부 충족, 일부 좌절. 근데 그 좌절이 너무 크지 않도록 하는 거죠.
보통은 서로 싸우잖아요. 서로 내가 맞는다고 하면서요. 그렇게 되면 조율이 실패되고 다툼과 갈등이 계속 이어지죠. 우린 서로 다르다는 거가 뭐가 더 좋고 뭐가 더 나쁘고가 아니라 다른 거는 그냥 존중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 대신에 서로 이 부분들을 합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조율적인 대화를 통해서 도출을 해내야겠죠. 양쪽이 다 윈윈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을 조율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해요.
그리고 세 번째는 개방적인 호기심이 많은 사람을 되게 두고 싶어요. 왜냐하면 개방적인 호기심은 자기 확장으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욕구하고 연결된 마음이라서 때로는 지치고 삶의 여유가 없고 그러면 현재를 유지하고 조금 더 안정에 대한 것을 추가하는 마음이 더 들 수 있어요.
그런데 내가 갖고 태어난 개인적인 씨앗들이 있잖아요. 근데 그 씨앗은 굉장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자기 시련이라는 이야기들은 결국은 그 씨앗 속에 있는 정보들을 최대한 많이 알고 그걸 끌어내서 싹 틔워서 키우는 과정이 자기실현 과정이거든요.
근데 그 시작점은 개방적인 호기심, 자기 자신에 대한 호기심, 타인에 대한 호기심,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죠. 내가 스스로 나를 보면서 그 씨앗들을 발굴해 낼 수도 있지만 어떤 자극과 만나면서 끌림이 일어날 때가 있잖아요. 뭔가 확 올라오는데 열망 같은 것들이 또 발견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건 다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이 체험할 가능성이 되게 높은 거죠.
자신만의 씨앗은 체험을 통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살면서 지금까지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내가 이런 거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구나.’하고 발견한 순간에 대한 기억을 해보세요. 그 시작은 분명 호기심, 궁금함, 특히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대한 거가 한 사람의 퍼스널 시드 안에 탑재된 정보이겠죠.
그런 부분들이 ‘내가 이런 부분에 관심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만들죠. 그래서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일차적 반응에 대한 거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해요. 감정적일 수도 있고 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일차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 되게 긍정적이고 끌림이 느껴지고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일차적 반응이 중요한 단서예요.
그래서 경험하는 나를 관찰자로 보면 이러한 것에 대해서 내가 이런 반응을 하는 사람이고, 이런 반응을 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것처럼 숲 안에 있다가 숲 밖으로 나와서 성장 동기를 보는 거죠. 스스로가 자기 자신이 어떤 시드를 가졌는지에 대한 걸 모든 사람은 다 알아차릴 수 있어요.
그러나 이런 훈련들이 많이 안 돼 있어서 이거를 딱 깨트려 주는 그런 계기가 없어서 수많은 정보를 우리가 다 일상에서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그게 저는 되게 안타까워서 상담할 이런 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타인들이 나한테 예의를 갖추길 원하잖아요. 근데 스스로가 자기 자신한테 매너 있게 대하는 사람이 나도 존중해요. 그리고 자기를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을 상대방과 섞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요.
우리는 되게 관계 속에서 힘들어질 때 보면 누군가가 나를 단정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그 과정에서 왜곡되고 부정되고 이런 일들이 되게 많이 일어나잖아요. 근데 스스로를 잘 알고 스스로를 잘 존중할 수 있고 예를 잘 갖춘 친구나 어떤 대상이 있으면 나를 바라볼 때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이렇게 자기랑 섞지 않고 그냥 나로서 봐주고 존중하는 게 가능한 거니까 그렇게 되면 에너지가 굉장히 세이브가 되겠죠.
오히려 이런 친구가 내 옆에 있으면 내가 미처 모르고 있는 부분을 누군가가 비춰줄 때 오히려 내 자신에 대한 이해가 더 확장될 수 있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왜곡 없이 나를 비춰줄 수 있는 거니까 더 신뢰하면서 또 내가 더 확장되는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으니까 이런 사람이 있으면 난 너무 좋을 거 같아요.
두 번째로는 정반합을 선택했는데요. 우리가 심리학에서 엄마 없는 아이는 없다고 얘기하잖아요. 그 말은 그 엄마가 뭐 생물학적 양육자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생존하고 성장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혼자서 자급자족할 수 없어요. 근데 또 우리는 다 달라요. 만인만색이죠. 그러다 보니까 누군가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다 달라요.
그러니까 정반합 조율을 잘해서 효율적으로 뭔가 함께 대화해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내가 세상에 대한 곤경에 처해있다고 해도 도와줄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든든함, 안전함, 연결감에 대한 부분들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대상이죠.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대상이기도 해요.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거죠. 나도 상대도 이렇게만 하면 갈등과 오해를 최소화하면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과정이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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