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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비밀을 가직한 신라의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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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 채널에서 유독 유물 발굴과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주 다루고 있는데 제가 유물과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살지 않았던, 즉 어떤 영상매체나 음성 매체로도 확인할 수 없는 그 시절이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다양한 매체가 이를 좀 더 흥미롭게 각색해서 간접적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해 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각색된 사실입니다. 제가 직접 살아보지 않은 그 시대를 타인의 상상력으로 경험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다채롭고 놀라운 기록물들이 많지만, 유적의 경우 잘 보존되지 못 한 경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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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겪고, 경제 발전에 매진하느라 유적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고 이를 제대로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죠. 혹시 여러분은 해자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해자는 동물이나 외부인, 특히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성 주위로 둥글게 파서 만든 일종의 물웅덩이입니다.

가령 기마병이든 병사든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 가까이 다가와야 하는데 해자는 적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접근하는 적을 섬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천년 왕국 신라의 궁성으로 알려진 월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던 월성이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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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00년 전 물웅덩이였던 해자를 퍼내기 시작하자 상상도 못 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오늘은 여러분과 신라시대 경주 월성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경주시 인왕동에 가면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왕조, 신라의 궁궐터 월성이 있습니다. 무려 천년이나 지속된 왕조였던 만큼 문화재청은 경주시와 함께 경주월성 복원 및 정비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 시작은 고작 1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신라 5대 왕 파사가 101년부터 축조하기 시작해 신라가 멸망한 경순왕 9년까지 신라 시대 모든 결정이 내려졌던 역사적인 왕궁의 복원 계획이 고작 10년 전에 세워졌다니 조금 의아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14년이 지나서야 복원 계획이 세워졌다는 점도 이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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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경주를 방문하는 방문객이 아닌 경주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 이 도시에 산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천년왕국 신라의 수도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워낙에 많은 유물이 매장되어 있다 보니 재개발도 할 수 없고 마음대로 건물도 지을 수 없으니까요.

일제 강점기 이후 경주의 경제를 지탱한 것은 학생들의 수학여행이었습니다. 1971년부터 추진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덕분에 경주는 역사 도시를 넘어 관광도시로 태어나 불과 10년 전까지 경주는 수학여행의 메카였죠. 그러나 점차 해외여행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경주는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콜로세움과 피라미드 앞에 만리장성과 병마용갱 앞에서 경주는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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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3년 12월 2일이 됩니다. 당시 집권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안동에서 업무보고를 받고는 곧바로 헬기를 타고 경주로 이동합니다. 그해 5월 복구한 숭례문에 대한 부실 복원 논란이 제기되면서 전체 문화재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였는데 하필 경주의 상징과도 같은 석굴암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적이었든 석굴암을 방문한 대통령을 지역 국회의원들이 그냥 지나칠 리 만무했는데 당시 경주를 지역구로 두고 있던 정수성 국회의원은 박 전 대통령에게 월성 및 신라 왕궁 복원을 위해 정부의 예산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건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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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배석 유진룡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에게 원활한 추진을 지시하면서 관심을 드러냈고 본격적으로 월성 복원 계획이 수립됐죠. 그리고 드디어 천년 왕국 신라의 궁성 복원에 파란불이 켜졌습니다. 그런데 무려 834년간 신라의 궁성이었던 월성을 발굴하고 보니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땅 아래에 무려 7개의 문화층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 땅 밑에서 고려시대 유물이나 유구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신라시대 유물 바로 위에 조선시대 문화층이 나타난다는 것은 신라 멸망 후 약 500년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는 의미로 고려시대 어떤 이유로 우리 조상들은 이 드넓은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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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왕성이었던 만큼 월성 주변에도 해자는 존재했는데 해자를 천년 만에 세상에 드러낸 것은 1914년 일본 고고학자인 도리이 류조입니다. 도리이 류조는 월성 남서쪽 월정교 부근에서 성벽의 일부를 발굴했는데 그 아래 5개 층위를 조사해 토기, 골촉, 동물 뼈, 조개더미 등을 수습했습니다.

이후 관련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조사목적이 선사시대의 유구 또는 조개더미 탐색이었던 만큼 토성 구조와 관련 내용을 연결 지을 수 없었고 조사 성과 또한 너무나 간략히 보고된 한계가 있습니다. 이후 간헐적으로 성벽 외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다 1979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은 월성으로 진입하는 구간을 발굴 조사했는데 이 조사를 통해 해자가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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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90년~2014년까지는 해자로 주요 대상으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직접 발굴조사를 진행했으나 성벽이나 내부 구조 등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죠. 그러다 2014년 박 전 대통령이 월성 발굴에 관심을 보이면서 현재에 이르렀는데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해자와 월성 내부에 대한 세밀한 발굴이 진행 중인 겁니다.

2014년부터 한 삽씩 떠내며 흙을 걷어낸 월성 해자는 신라시대로 우리를 인도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발굴을 담당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처음 발표한 것은 목선, 즉 나무로 만든 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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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사람이 타고 다니는 실제 크기의 배가 아니라 일종의 미니어처로 길이가 고작 40cm에 불과합니다. 약 1,6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배는 그간 한국에서 출토된 미니어처 중 가장 오래되었는데 이는 실제 선박의 1:9 배율로 제작됐습니다. 실제 배와 같이 선수와 선미가 분명하게 표현된 준구조선 모양으로 의례용, 즉 행사용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으로 출토된 유물입니다. 해자를 파헤쳐 보니 그 아래에서 멧돼지, 말, 개, 소, 사슴, 곰 등의 동물 뼈는 물론 바다사자, 상어 등 해양 생물의 뼈까지 나왔습니다. 이 말은 신라인들은 지상 동물은 물론 해양생물까지 섭취했다는 점을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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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동물 뼈 중 멧돼지류가 약 30%가량 출토되었는데 이로써 신라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육류는 돼지고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돼지 뼈 중 40%가 6개월~1년, 즉 어린 돼지라는 점인데 이는 신라시대에 이미 안정적으로 돼지사육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가장 충격적인 발굴 결과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해자가 둘러싼 성벽 바로 뒤에서 인골, 즉 사람의 뼈가 대량으로 발견됐다는 점입니다. 2016년 월성 서문 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5살 정도로 추정되는 유아의 인골이 발견되더니 1년 뒤에는 서쪽 성벽 기초 부분에서 50대 남녀 인골 2구가 추가로 발견되어 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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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살펴보니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관이 없고 남성은 누운 자리에서 정면을 향해 가지런히 배치했으며, 여성은 얼굴을 돌려 남성 인골을 바라본 상태로 바르게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영양상태를 조사해 보니 계급이 그리 높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1,600년 전 인골의 발견이 놀라운 것은 발굴지점이 해자 바로 뒤, 그러니까 성벽을 쌓기 위해 바닥층을 다진 기초부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반적인 사망에 의한 매장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일부러 희생시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문헌으로만 전해오던 ‘인주 설화’를 보여 주는 고고학적 첫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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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주건물을 지을 기둥 아래에 사람을 묻거나 기둥으로 세우면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설화인데 고려사에 따르면 당시 왕이 민가의 어린아이를 데려가 새로 짓는 궁궐의 주춧돌 아래에 묻는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그동안 설화로만 여겨졌던 인주 문화가 실제 사례로 발견된 첫 사례인 겁니다.

이후 조사단이 과거 자료를 살펴보았을 때 이미 부근에서 23구의 인골이 발견되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는데 이를 종합하면 천년왕국 신라의 궁성을 짓기 위해 최소 27명의 사람이 제물로 바쳐졌다는 점입니다. 성을 쌓기 위해 다짐층을 조성한 후 사람 제사를 지낸 뒤 본격적으로 그 위에 월성이 축조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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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월성의 전체적인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아마 아닐 겁니다. 이 월성이 어떤 환경이었는지는 씨앗을 모아야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월성 해자에서는 약 2만 개가 넘는 가시연꽃 씨와 다양한 수생식물 씨앗이 출토됐는데 이로써 가시연꽃을 비롯한 수생식물이 군락을 이루어 해자에서 자라고 있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해자의 수심, 주변 환경까지 추정할 수 있는데 연구소 측이 발견한 가시연꽃, 머루, 버찌, 자두, 복숭아, 쌀, 콩뿐 아니라 느티나무, 참나무, 소나무 등 총 63종의 씨와 열매류를 바탕으로 상상해 본 월성의 모습은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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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연꽃이 가득한 연못과 느티나무, 참나무와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5세기 월성 그리고 어린 돼지를 잡아먹던 신라인들의 모습이 상상되시나요? 지난 2022년 4월 30일 문화재청은 38년간 이어진 월성 해자 발굴 작업을 마무리하고 3년의 복원 정비사업을 거쳐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해자 복원은 월성 복원 정비사업의 핵심이었는데 정비된 해자의 폭은 최대 40m, 길이는 550m에 달합니다. 허물어졌던 연못의 구덩이와 돌을 쌓은 석축들을 되살린 것은 물론 부분적으로 남았던 통일신라시대 석축의 형태도 최대한 재현하고 물을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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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환경이 완벽하게 조성된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발굴과 복원을 약속한 만큼 천 년 전 신라의 모습이 완벽히 복원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제 꽃놀이도 끝났고 혹 따뜻한 5월에 경주로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월성 해자를 한번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신라시대 우리 선조도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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