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닥터프렌즈입니다. 오늘도 돌아온 의학의 역사, 골절 치료의 역사입니다. 골절이 시작된 건 엄청 오래됐을 거예요. 사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한데 사실 골절이 꼭 싸워야 생기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그때부터 치료는 했을 거예요. 골절이 진짜 아프거든요.
어떻게 치료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그러면 뼈의 생김새를 언제부터 제대로 알았을까요? 치료라는 게 사실은 원래 모습대로 돌아가는 거니까요. 아쉽게도 고대나 선사시대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 인체 내부의 생김새를 그리지는 않았어요. 해부에 대한 증거도 전혀 없습니다.
해부라는 게 결국에는 시신을 째는 거잖아요. 그런데 동굴에서는 어두우니까 못할 거고 밖에서 해야 하는데 당시 인류가 지금의 인류처럼 절대적인 강자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피 냄새가 나면 사람을 식량 삼아 습격하는 맹수도 있었을 것이고 시신이 빨리 썩을 것이고 그런 위험이 도처에 있으니까, 사실은 해부를 굳이 시도해 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도시가 이루어지고 나서 아마 해부를 했을 텐데 아무래도 고대 그리스겠죠. 근데 이때 의사나 해부학자들이 딱히 뼈에 관심이 없었어요. 뼈의 기능도 모르던 때죠. 게다가 사람 해부가 가능한 기간이 되게 짧았어요.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이유로 금지됐죠.
그 이후로 해부학의 아버지 갈렌이 비교해부학을 만들어요. 다른 동물 해부를 한 다음에 사람으로 하면 대충 이런 식으로 생겼겠다고 하는데 이게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죠. 제일 많은 오류가 생기는 게 뼈에 대해서 제일 오류가 많이 생겨요. 그런데 이 사람이 기원전 150년경 사람인데 이 사람이 쓴 지식이 르네상스 시대까지 쭉 이어집니다.
천 년이 넘게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해요. 갈렌 해부학 무오론이 있어요. 갈렌 해부학은 틀리지 않았다는 거죠. 이게 너무 극심한데 사람 뼈는 어떤 식으로든 보게 돼요. 많이 다치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돼요. 그런데 갈렌의 해부학에 보면 사람 허벅지 뼈가 둥글다고 표현이 돼 있어요. 실제로 보면 직선이거든요.
그러면 관찰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랑 상충하고 관찰한 게 계속해서 누적되면 ‘아, 우리가 이전에 잘못 알고 있었구나. 우리가 관찰한 게 맞구나.’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 휘어진 뼈는 곰을 보고 그린 거라서 곰은 넙다리뼈가 휘어있거든요.
그러면 ‘동물은 둥글지만, 우리 뼈는 곧구나’라고 해야 하는데 내가 본 관찰이 내가 믿고 있는 어떤 관념에 우선시 되는 시대는 르네상스 이후예요. 그때까지는 내가 어떻게 배웠는지가 훨씬 중요해요. 그래서 이때는 요즘 사람들이 똑바로 된 바지를 입으니까 이 습관 때문에 뼈가 휘었던 게 직선으로 변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치료를 제대로 하기는 어려웠겠죠.
비로소 개선된 게 르네상스 이후인데 그마저도 장기가 더 궁금하니까 뼈에 관심이 덜해요. 그래서 뼈는 실제로 18세기 이후부터 관심을 가져요. 특히 체슬던이라는 의사 선생님이 정상 뼈만이 아니고 질환에 걸린 뼈까지 다 그려요. 매독에 걸린 뼈, 루마티스에 걸린 뼈, 그래서 뼈 해부학에 대해서는 체슬던이 전설이죠. 이 사람이 남긴 저서가 어마어마해요.
그러다가 19세기에는 사진기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우리가 정확하게 내부를 알 수 있죠. 근데 사실 생각해 보면 뼈가 부러졌고 내가 똑바로 된 모습을 알고 있다고 해서 치료를 할 수는 없어요. X-ray가 나와야 지금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고칠 수 있잖아요. X선이 나오기 전까지는 내 눈앞에 있는 환자의 뼈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 수가 없어요.
게다가 근육의 기능도 알아야 견인도 하고 할 텐데 이러한 정보의 제한 때문에 시행착오가 많이 일어나요. 그리고 옛날에는 일단 신체적 투쟁을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사냥하거나 맹수의 습격이 있거나 그리고 진짜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이러한 위험은 사실 중세 유럽까지 가면 문명화가 많이 됐고 법이 있는데도 골절은 엄청 많았어요.
왜냐하면 먹을 게 없으니 뼈가 약해서 같은 충격을 받아도 부러져요. 그래서 케임브리지 연구진이 1100년대부터 1500년대까지 묻힌 12세 이상의 유골을 분석했어요. 44%의 사람에게서 골절 징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전사들이 아니라 그냥 일하는 사람들인데 노동 때문에 부러진 거죠. 일하다가 스트레스성 골절이 있을 수도 있고 지금 골절에서 회복했다고 하는 건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는 걸 회복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부정 유합도 회복이에요. 살았으니까요. 그러니까 대부분이 부정 유합입니다.
사실은 어느 정도의 기능 장애를 수반하는 거예요. 선사시대에는 사실 골절 기록이 없어요. 골절이 굉장히 빈번하게 벌어졌을 거고 치료했겠지만 현시점에서는 찾기가 어려워요. 이집트는 어떻게 치료했는지 파피루스에 기록이 있습니다. 기원전 2900년에 나무껍질로 된 부목을 대고 거기다가 린넨을 묶었대요.
골절된 뼈가 정상 모양으로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부러진 데에 부목을 대고 린넨도 하고 더 신기한 건 그 부목을 더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해서 꿀을 뿌리거나 더 굳혀줬대요. 깁스로 만든 거예요. 실제로 기원전 300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사춘기 소년의 시신이 있는데 대퇴골 골절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개방형 골절이었어요.
그런데 그 부러진 뼈를 직접 대추 야자 잎으로 묶고 했던 흔적이 있습니다. 물론 치유된 흔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아마 치료 후에 바로 사망했을 거라고 추정돼요. 그래서 보면 미라에서 대퇴골이나 팔뚝 골절이 되게 많이 확인되는데 대퇴골 같은 경우에는 사실 살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는 보통 치료된 흔적이 거의 없고요.
팔뚝 같은 경우에는 변형은 있을지언정 그 후에도 꽤 오래 산 것 같아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도 사실 연세 많으신 분들은 낙상으로 고관절 골절이 발생하면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죠. 그래서 이런 치료법들이 전래가 돼서 그리스에 보면 히포크라테스가 되게 자세하게 기록을 남겼어요.
‘대나무나 나무, 납편 같은 걸로 고정을 하고 실이나 린넨으로 묶은 다음에 비계나 밀랍 같은 걸로 강화해서 부목을 만든다. 혹은 그게 여의치 않거나 피가 나는 상황이면 묶어두고 피가 그대로 나와서 피가 굳으면 캐스트가 된다.’ 일종의 그런 식의 방법이 있었어요.
그다음에 비교해부학이 나오는데 뼈는 아무래도 정자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갈렌이죠. 이 사람은 고정 치료를 잘 안 하고 내과적 치료해요. ‘너 오늘부터 성생활도 하지 말고 자위도 하지 마’ 그런데 사실 뼈가 부러졌는데 자위 참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비교해부학이 문제예요.
왜냐하면 뼈의 생김새에 대한 오해가 있으니까, 치료가 어려워요. 이러한 치료가 16세기까지 되는데 그때 파레라는 의사가 당시에 ‘거즈로 피나는 데를 닦자’ 이런 걸 고안하고 비로소 외과 의사의 대우가 올라가요. 파레는 본업이 이발사예요. 이런 공로가 인정돼서 외과 의사가 따로 떨어져 나와요.
그런데 이게 워낙 최근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내과 의사가 닥터인데 외과 의사는 미스터래요. 하여튼 그렇게 개선이 되면서 골절 치료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발전하죠. 16세기에 게르스도르프라는 사람이 그때까지는 부목을 하나만 댔는데 잘게 자른 나무 부목을 둘러싸서 더 단단하게 묶는 방법을 고안해요.
하나의 판인데 나무 조각이 있고 여기에 묶는 게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묶으면 딱 붙여지는 거예요. 한쪽 팔이 짧아지거나 이런 경우가 많고 기능에도 이상이 많아요. 그래서 한 번 부러지면 치료가 어렵죠. 그래서 의사들이 고민해요. 애들 중에 약간 다리가 휘거나 하는 거는 교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그쪽으로 관심을 많이 보이거든요.
실제로 정형외과가 영어로 Orthopedics인데 Ortho가 그리스어로 곧다고 pedic이 어린이거든요. 그러니까 어린이를 곧게 만드는 게 정형외과입니다. 사실 치료라기보다는 거의 고문이죠. 왜냐하면 뼈가 휜 이유가 있는데 그걸 고려하지 않고 휘어있으면 여기다가 부목을 대고 세게 묶어서 그것 때문에 부러지는 경우도 있고 그랬대요.
근데 신기하게 일부에서는 효과가 있어서 계속해서 성행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1767년에 기능성 버팀대가 나옵니다. 위에다 묶는 거랑 발끝에 묶는 거랑 해서 위, 아래를 딱 이어 줍니다. 그러면 위에 압력이 안 가해져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못 걸었는데 이제는 이걸 하니까 골절이 치료되는 동안에도 걸을 수 있는 거죠.
지금은 다 석고 고정하잖아요. 아랍은 이걸 굉장히 옛날부터 했어요. 판을 만들어서 다리를 넣고 거기에다가 석고를 부어서 굳혀요. 이런 치료를 옛날부터 했다가 18세기 유럽도 그걸 전수를 받았어요. 하지만 계속 그냥 부목만 하다가 처음으로 견인이 제대로 이루어진 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x-ray가 나오고 나서죠.
물론 그전에도 견인을 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있어요. 특히 동양은 꽤 오래전부터 했어요. 비틀어졌다는 게 직관적으로 보이니까 그걸 당겼어요. 그런데 그게 당겼다고 해서 바로 맞는 건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 비틀림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걸 완전히 교정하고 견인이 핵심이라고 생각한 건 20세기에 X-ray가 나오고 나서죠.
하지만 이것도 폐쇄성 골절이지 개방성 골절은 다 죽어요. 그래서 19세기 리스턴 박사님이 잘했던 절단, 그 위에서 자르지 않으면 거의 죽었어요. 왜냐하면 골수염이 생겨요. 뼈로 균이 들어가서 지금도 항생제 치료가 쉽지 않거든요.
그러던 시절이 개선된 게 마취, 소독 다 나오고 x-ray까지 나오고 그다음에서야 개방성 골절은 조금씩 개선됐죠. 지금도 당연히 폐쇄성 골절보다 위험하지만 무조건 죽는 건 아니니까요. 아무튼 골절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다음에도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의학의 역사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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