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지형적인 장점을 가지면 그 장점 덕분에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거나 잘 살기 마련입니다. 좋은 석유가 매장된 중동 땅 위에 세운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은 그 자원을 잘 활용한 덕분에 전 세계 경제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을 가졌죠.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달랐습니다.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을 잇는 전략 요충지인 관계로 늘 강대국들의 싸움터가 되고 말았죠. 영국이니 러시아니 미국이니 하는 것들이 싸움질을 해대 마음 편히 농사도 지을 수 없었는데 여기에 사막이라는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제대로 된 농작물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불행하기만 했던 아프간에 희망을 전해준 건 한국인 한 명입니다. 모든 외국인이 지옥이 펼쳐졌다며 탈출을 감행할 때 홀로 아프간으로 걸어 들어간 그에게 탈레반 경찰은 제발 계속 남아달라고 부탁해 왔었는데 도대체 그는 그 지옥에서 어떤 일을 했던 걸까요?
아프간이 무장단체 탈레반의 손에 떨어지고 약 두 달 후 서울에서는 나이 지긋한 노신사 한 분이 아산재단으로부터 사회봉사상을 수상했습니다. 비영리단체 ‘영양과 교육 인터내셔널’ 설립자 권순영 대표입니다. 그는 아프간인 사이에서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인물인데 수상 후 남긴 수상소감이 인상 깊습니다.
그는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현재 상황이 좋지 않지만, 그들이 우리가 진행하는 사업만큼은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비정부기구가 아프간을 떠났지만 NEI는 끝까지 남아 난민을 돕고 있는데 탈레반 경찰이 직접 사무실을 찾아와 처지가 딱한 사람들을 도와달라면서 격려해 줬다’라고 말했죠.
도대체 그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길래 악명 높은 그들이 사무실까지 찾아와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일까요? IMF 기준 세계에서 가난한 국가 중 하나인 아프간은 덥고 건조한 사막이라는 지형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는데 식물 딱 한 종이 아프간에서 엄청난 번식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양귀비인데요.
인간의 뇌를 취하게 만드는 이 식물은 아프간에서 유독 잘 자랐는데 덕분에 아프간은 전 세계 공급량의 80%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프간인들의 주요 고용 창출원으로 자리 잡았죠. 2019년에만 12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하죠. 그래서 막대한 점유율을 무기로 수급과 가격까지 조절하고 있어 ‘제2의 석유 수출국 기구’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삶의 고단함에 지친 아프간인들도 점차 이 식물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한번 취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에 빠진 아프간인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고 기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아와 영양실조로 신생아 5명 중 1명은 5살을 넘기지 못했고, 임산부의 영양실조로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흔했죠.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을 알게 된 권 대표는 자비를 털어 36시간을 날아 아프간으로 날아갑니다.
그런데 그가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아프간을 위해 제시한 농작물은 다름 아닌 콩. 우리가 국수로도 먹고 두부로도 먹고 비지로도 먹는 바로 그 콩입니다. 사실 그는 미래가 창창하던 젊은이였습니다. 1972년 고려대학교 농예화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오하이오주립대 식품생화학 박사과정을 거쳐 1986년부터는 세계적인 식품 제조회사인 네슬레에 입사해 콩을 이용한 영아용 대체 분유를 비롯해, 의료 식품 개발을 담당했었죠.
그러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에 점령당하면서 뉴스에서는 연일 극심한 굶주림에 고통받는 현지 주민에 대한 소식이 다뤄졌습니다. 영유아 사망률 1위의 원인이 영양실조라는 사실에 식품영양학자로서 책임감을 느낀 그는 직접 아프간으로 건너갔습니다.
자비를 들여 3번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36시간을 날아간 아프간에서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고는 미국으로 돌아와 비영리단체 NEI를 설립해 즉각 수도 카불에 NEI 사무소를 냈습니다. 그는 정부 지도자들을 상대로 가난과 배고픔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콩을 재배해야 한다며 설득했죠. 왜 하필 콩이었을까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콩은 한반도가 원산지입니다. ‘밭에서 자라는 소고기’라 불릴 정도로 영양소가 풍부한 콩이 한반도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자세히 보자면 옛 고구려 영토인 만주 지역이 원산지인데 여기에서 5,000년 전부터 콩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회령 유적지에서는 고조선 유물과 함께 콩, 팥, 기장 등이 함께 출토되어 만주 지역이 콩의 원산지임이 밝혀졌는데 이러한 사실은 1920년대에도 증명됐습니다. 1929년 미국 정부는 동아시아로 ‘동양 농업 탐험 원정대’를 파견했는데 그들은 조선과 일본, 만주 등에서 야생 콩을 수집했습니다.
총 4,471점 중 3,379점을 조선에서 수집했는데, 당시 탐험대장이었던 도셋과 모스는 조선에서 모은 데이터와 사진만으로도 훌륭한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라고 보고서에 쓰기도 했는데요. 어쨌든 콩은 어마어마한 단백질 식품입니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콩가루로 만든 빵, 콩죽 등으로 병사들의 영양 손실을 막았죠.
어쨌든 권 대표의 이러한 정성에 감동한 아프간 정부는 그에게 약 37,000평을 99년간 무상으로 이용하도록 허락했고 6개 종자를 아프간으로 가져가 아프간 12개 지역에서 시험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척박한 아프간에서 살아남은 종자 2종을 찾아냈는데요. 2005년의 일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11년부터 아프간에서는 종자를 수입하지 않아도 현지에서 수급이 가능할 정도로 콩 재배 산업이 자리를 잡았고, 2021년에는 아프간 34개 주 가운데 31개 주에서 약 13만 명의 농민이 콩을 재배하고 있다고 하죠.
척박한 아프간에서 콩이 수확되기 시작하면서 피골이 상접하던 아이들의 볼에는 살이 붙었고 영양실조로 사망하던 산모 수가 급감했죠. 그도 그럴 것이 영양실조의 가장 큰 원인은 단백질 부족인데 콩의 단백질 함유량은 소고기, 닭고기, 달걀 등과 비교할 것이 못 됩니다. 무려 40%에 가까운 단백질이 콩에 함유되어 있죠.
혹 여러분도 비지찌개를 좋아하시나요? 두부를 만들고 남은 콩 찌꺼기인데 비지의 국제 명칭은 일본어 오카라입니다만 아프간에서는 비지라고 부릅니다. 척박한 아프간 땅에 최초로 콩을 심은 사람이 바로 권순영 대표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잔인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탈레반도 권 대표에게는 예외였습니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간으로 건너간 그는 자칫 탈레반이 보기에는 미군의 끄나풀로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최우방국 한국 출신인데다 석박사를 미국에서 취득했으니, 탈레반이 보기에는 머리 까만 미국인이니까요.
그래서 탈레반 경찰은 매번 NEI 사무실을 감시했고 불시에 쳐들어오기도 했는데 난민에게 줄 식량 꾸러미를 만드는 모습에 처지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달라며 오히려 응원해 줬다고 하죠. 물론 수없이 많은 불시검문과 경찰조사를 받았으나 그들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마다 좋은 일 해줘서 고맙다며 계속해서 아프간에서 훌륭한 일을 해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해왔다고 하는데요.
미국을 포함해 많은 국가가 ‘아프리카 모델’을 내세워 아프간을 도우려 했었습니다. 지원금 명목으로 건네주면 알아서 잘 쓰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권 대표는 ‘아프가니스탄은 민족적 자긍심이 아주 높은 나라다. 타국의 원조를 고마워하지만, 한편으로는 수치스러움과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명언이 아프간에서도 적용되는 겁니다.
아프간의 수석 경제 고문이었던 자킬리월은 ‘많은 선진 국가들이 우리를 도우러 와서는 아프리카에서 성공한 모델이라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대개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권 박사는 맨몸으로 와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기르지도, 먹어보지도 않은 콩을 경작하다니요. 그런데 그는 우리와 똑같은 심정으로 고심했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창조했고, 무엇보다 우리 마음을 얻었습니다.’라며 회상합니다.
권 대표는 아프간에서 2030년까지 연간 30만 톤의 콩을 생산해 영양실조가 퇴치되는 날까지 멈출 계획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립형 영양실조 퇴치 모델’은 아프간뿐 아니라 기아로 허덕이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모두 배워야 할 전략입니다.
현재 스리랑카, 탄자니아, 필리핀, 인도 많은 국가가 그의 NEI 모델을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고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전 세계 기아로 사망하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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