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고급 차량 수천 대를 운반하던 선박 한 척이 유럽 앞바다를 지나다 사고를 쳤습니다. 선박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인데 이 사고로 폭스바겐 3,695대를 포함, 벤틀리, 포르쉐 등 고급 차량 전부가 전소됐죠. 전문가들은 구조 비용과 차량 인도 손실 그리고 추가 주문에 따른 비용 상승분까지 더하면 해운사가 배상해야 할 금액이 1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람보르기니의 경우 불에 탄 슈퍼카를 교체하기 위해 아벤타도르 생산을 재개하기도 했죠. 2022년 2월 일본 해운선 미쓰이 OSK 라인이 운영하던 ‘펠리시티 에이스’는 그렇게 1조 원을 싣고 바닷속으로 침몰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 유럽 앞바다를 지나는 또 다른 선박 한 척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1년 전 슈퍼카를 잔뜩 싣고 가던 선박에서 불이 나 침몰한 후 1년 만에 또 자동차 운반선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인데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선박 역시 일본 조선업체가 건조하고 일본 용선사가 운용하던 선박입니다.
지난 7월 25일 자정 네덜란드 아멜란드 섬에서 26km 떨어진 해역에서 화재에 휩싸이기 시작한 18,500TEU급 ‘프리맨틀 하이웨이’호는 약 4천 대의 자동차를 독일 브레머하펜 항에서 이집트 포트사이드 항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해안 경비대는 이 화재의 원인을 ‘알 수 없음’으로 기재하고 있지만 이 선박에는 벤츠를 포함 총 3,783대의 자동차와 전기차 500대가 실려 있었죠. 그래서 이 사고의 원인을 전기차의 리튬이온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죠.
신고를 받고 출동한 네덜란드 해안경비대는 당시 헬기와 보트를 이용해 생존한 선원 23명을 안전하게 구조했는데요. 화재가 얼마나 격렬했던지 선원 7명은 빠르게 번지는 불길을 피해 바다로 뛰어내렸는데 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여러 명이 화상, 골절, 호흡 곤란 등을 겪었습니다. 선원들이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을 만큼 화재는 엄청났습니다.
네덜란드는 즉각 소방대원을 파견했지만, 선박 승선이 불가능해 소방정을 활용해 선박 외부에 물을 뿌리는 등 화재 진압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길이 너무 거세 사실상 버려뒀고 표류 끝에 침몰할 것으로 내다봤는데요. 만약 배가 침몰한다면 북해 가장자리의 세계유산 ‘바덴해’ 해역에 끔찍한 환경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다행히 어렵게 화재 진압을 끝내고 네덜란드 북동부 엠스하벤 항구로 예인 되었죠. 그런데 이 선박의 운용국이 1년 전 사고를 냈던 펠리시티 에이스와 마찬가지로 일본입니다. 프리맨틀 하이웨이는 일본 용선사 ‘쇼에이기센’이 운용하는 선박이었는데요.
참고로 손해보험 용어 중 ‘전손 처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령, 차량의 문이 파손되거나 유리가 깨지는 등 일부가 파손된 ‘분손’의 경우 그 문짝이나 유리를 교체하는 비용만 지불하면 됩니다. 하지만 일부가 파손된 ‘분손’임에도 이를 ‘전손’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일부만 파손됐지만 전부 파손된 것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있죠.
예를 들어, 이번 사고와 같이 자동차 외형은 청소만 하면 멀쩡하지만, 엔진이 타거나 내부 기관이 타버려 외형을 제외하고 전부 교체하다 보면 수리비가 손해보험액을 초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보험사가 손해배상액 최대치를 지급하는 ‘추정전손’ 절차에 따라 차량을 폐차시키고 손해 발생을 야기시킨 해운사에 배상금을 청구하게 되죠.
이번 사고 역시 4천 대 가까운 차량 전부 ‘현실전손’이거나 ‘추정전손’으로 처리되어 신차 값을 전부 물어내야 할 판입니다. 그래서 이 사고 역시 4천 대에 달하는 차량 가액에 여러 손해를 합산하면 아마 1조 원은 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사실 일본의 선박 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불과 3년 전에는 일본 조선업체가 연달아 초대형 사고를 쳐 전 세계 화주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시작은 아프리카 남동부 모리셔스입니다.
2020년 7월 25일 일본 미쓰이 상선 소속 파나마 선적 ‘와카시오 호’는 중국을 출발해 싱가포르를 거쳐 브라질로 향하던 중 모리셔스 해안에서 선박이 좌초되고 맙니다. 모리셔스 앞바다를 지나다 암초에 걸린 것인데 단순히 암초에 부딪힌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박은 좌초되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충돌로 선미에 있는 1,180톤짜리 연료탱크가 파손된 겁니다. 기름이 유출되기 시작했죠.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모리셔스 바다에는 거대한 기름띠가 형성되기 시작하더니 선박유 천 톤이 흘러나와 해안의 숲까지 스며들어 바다를 폐허로 만들어 버립니다. 모리셔스의 지원 요청을 받은 프랑스는 해군 함정 및 군용기를 파견했고, 자원봉사자 수천 명이 기름 유출을 막기 위해 힘썼지만, 오염된 바다를 복구하기는 불가능했죠.
아마 오염된 자연을 복구하려면 최소 수십 년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고로 일본은 전 세계 화주들로부터 미운털이 박혔습니다. 우선, 역사상 손에 꼽히는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로 자연을 파괴시켰다는 점 때문에 그랬고, 둘째는 사고 원인 때문입니다.
모리셔스 해안은 원래 수심이 얕아 10만 톤급 선박은 이 해안선을 지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모리셔스 해안에 접근했을 당시 해안 경비대는 접근하지 말 것을 경고했지만 선장은 와이파이를 공짜로 이용하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경고를 무시했죠. 어쨌든 사고 발생 3주 후 선박은 두 조각으로 쪼개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모리셔스 해안 사고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3개월 후에 상상도 하기 싫은 사고가 터졌으니까요. OECD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 물동량의 90%는 해상으로 운송됩니다. 1년에 약 9만 척 이상의 화물선이 대양을 항해하며, 이들이 나르는 컨테이너가 4천만 개에 이르는데요.
지난 2020년 11월 30일 일본 국적 선박인 14,000TEU급 ‘원 에이퍼스 호’는 중국 항구를 출발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까지 화물을 운반하던 중 하와이에서 북서쪽으로 2,600km 떨어진 지점에서 거대한 파도를 동반한 태풍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악천후를 견디지 못한 선박이 휘청하는가 싶더니 결국 컨테이너가 무너져 버렸죠.
보통 바다는 예측 불가능한 악천후가 발생할 수 있어 아무리 튼튼한 선박이라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강한 파도가 옆에서 때리는 경우 배가 좌우로 뒤뚱거리는 롤링 현상이 발생하죠. 롤링 현상이 발생하면 보통의 경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이는 롤링 각도가 20도 이내일 경우에 해당합니다.
30도를 넘어가는 순간 컨테이너의 무게가 측면으로 가중되면서 운동에너지를 증폭시켜 무너지게 되는데요. 원 에이퍼스호 사고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어쨌든 이 사고로 컨테이너 1,816개가 바다로 떨어져 분실됐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1년 동안 유실되는 컨테이너보다 많은 양입니다.
사고를 찍은 영상을 잘 살펴보면 8단으로 쌓아 올린 컨테이너가 마치 택배 박스 무너지듯 전부 고꾸라졌는데요. 하지만 기름 유출은 없었음에도 하와이 주정부와 미국 연방정부는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왜냐하면 바다로 떨어진 컨테이너 중 60개에 위험물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폭발을 일으킨 주범 ‘화학비료’가 컨테이너에 있었던 겁니다.
만약 컨테이너가 열리는 순간 하와이 앞바다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 펼쳐질 우려가 있어 하와이 주정부와 미국 연방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렇다면 이 선박에 어떤 문제라도 있었던 것일까요?
원 에이퍼스 호는 ‘오션 네트워크 익스프레스’라는 일본 국적의 해운회사 소속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일본의 3대 해운기업인 일본우선, 상선미쓰이, 그리고 가와사키키센이 각사의 컨테이너 사업 부문을 통합, 공동투자해 발족한 회사입니다. 사고 발생 초기 컨테이너선에 실린 화물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전 세계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죠.
그런데 사고 당시 원 에이퍼스 호를 때린 파도는 16m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많은 이들이 의문을 표했습니다. 14,000TEU급 선박이 고작 16m 파도에 쓰러질 수 있느냐 말이죠. 전 세계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의 실시간 위치를 제공하는 ‘마린 트래픽’에 따르면 원 에이퍼스 호는 2019년, 그러니까 사고 1년 전 건조된 최신형 선박이었습니다. 선령 1년에 불과했죠.
그렇다면 이 선박은 누가 건조했을까요? 바로 일본의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가 건조했습니다. 2013년 1월 1일 일본의 ‘유니버셜 조선’과 ‘IHI 마린 유나이티드’가 합병하여 발족한 회사죠. 일본 조선사가 합병해 발족한 회사가 만든 선박이 고작 16m의 파도도 이겨내지 못해 컨테이너 1,800개를 분실하면서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박을 만들던 일본의 건조 기술도 이제 노후화된 것 아니냐는 전 세계 해운업계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순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조선 빅3는 전 세계에서 발주되는 선박의 절반 이상을 건조하면서 사실상 독주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이런 독주체제는 기술력이 뛰어난 점이 가장 큰 역할을 했겠지만 일본 정부와 일본 조선업계의 몇 번에 걸친 자살골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더구나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은 발주 물량의 90%를 흡수하고 있고, 차세대 친환경 선박으로 꼽히는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도 한국이 거의 100% 독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의 현재를 반면교사 삼아 한국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신뢰를 구축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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