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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태종의 총명하고 뛰어났던 셋째 공주와 외손주 권총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조선시대 태종의 셋째 공주 ‘경안공주’.

경안공주(1393년~ 1415년)는 조선 제3대 왕인 태종의 딸로 1393년 (태조 2년)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의 4남 4녀 가운데 3녀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정숙하고 아름다웠다고 전해지며 총명하고 지혜롭기까지 해서 태종과 원경왕후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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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경안공주는 그녀의 동생 충녕대군(세종)과 천성과 기품이 서로 닮았기에 왕실에서는 그 뛰어남을 이를 때 항상 함께 언급하게 됩니다.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인 1403년(태종 3년) 11세의 나이로 대학자 권근의 아들인 길천군 권규와 혼인을 하게 됩니다. 혼례 후 경안공주는 시부모를 섬기는데 예절을 극진히 하였고, 가정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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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남편 권규도 태종의 신임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게 되는데요. 1407년에는 중앙군인 5위중 하나인 호분위를 맡아 호분위상호군(정3품 당하관)의 직책을 맡았고, 이듬해에는 조선의 3군 중 하나인 우군(양광도, 서해도 및 서북면)을 지휘하는 우군도총제를 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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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 명나라의 동정을 탐문하기 위해 사신으로 갔다 올 정도로 능력이 있었던 그는 그 공을 인정받아 1416년 길창군으로 다시 봉해집니다.

하지만 경안공주는 1415년(태종 15년) 발열 증세를 보이다가 2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경안공주가 발열 증세를 보일 때 내의원에서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병이라고 진단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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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크게 슬퍼하며, 경안공주를 애도하기 위하여 3일간 조회를 정지하였으며 한동안 육선(고기반찬)을 물리고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경안공주의 장례는 불사를 거부한 부마 권규의 뜻에 따라 불교식이 아닌 ‘예경’대로 행하는 유교식으로 치러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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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418년(태종 18년) 막내아들 성녕대군이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슬픔 끝에 격노하였습니다.

내의원에서 경안공주와 성녕대군의 병명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였다며 의원 양홍달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고 박거 등의 다른 의원들은 장형에 처했습니다. 이렇게 누나인 경안공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 충녕대군(세종)은 19살이었으며, 그녀의 죽음에 수많은 형제 중 가장 슬퍼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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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충녕대군에게 경안공주는 그를 이해하고 인정해준 사람이었으며, 그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답해주는 또 다른 선생님이었습니다.

경안공주가 시집을 간 후에도 보내준 격려 서신과 위안은 혈기를 억누르고 서책에 매진해있는 충녕대군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생 충녕대군에 관련된 미담과 칭찬을 태종과 원경왕후에게 자주 전하는 정치적 후원자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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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세종은 아직도 누이의 사색과 독서의 깊이를 따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일찍이 뛰어났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요절을 하게 됩니다.

경안공주와 부마 권규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권담이고, 차남은 권총이었으며 딸은 어려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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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1413년(태종 13년)에 태어난 차남 권총은 경안공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 3살에 불과하였고, 9살이 되던 1421년(세종 3년) 부마 권규도 29세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태종은 외손주 권총을 안타까워하며 궁궐로 불러들이게 됩니다.

정조의 명을 받아 역대 왕들의 모범이 되는 행적을 모아 편찬한 ‘갱장록’에는 경안공주의 막내아들 권총에 대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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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말년에 외손자 권총을 몹시 귀여워했습니다. 어릴 때는 태종의 무릎에서 자랄 정도로 많이 아꼈다고 전해지는데요. 부마 권규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권총이 궁궐 안으로 들어오면서 더욱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종의 측근 신하 중에 수염이 긴 사람을 본 어린 권총은 호기심에 그의 수염을 뽑아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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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린아이의 악의 없는 행동이었지만 조선은 유교의 나라였고, “신체발부 수지부모” 즉,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당시 이 사건은 어린아이가 저지른 것이었지만 문제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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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는 권총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는 공론이 일어났고, 라는 명문이 있었기에 막강한 권력의 태상왕 태종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태종은 “조정의 엄격한 예법을 생각하면 죽여야 마땅하지만, 외손자가 어리고 무지하니 목숨만은 살려주시오”라고 신하들에게 부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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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권총은 숭례문 밖에 유폐되어 1년 이상을 지내게 되고, 당시 중병에 걸린 태종이 “외손자가 몹시 보고 싶은데 조정이 무서워 만나보지 못한다.”라고 말하자, 이에 신하들은 태상왕의 병을 고려해 권총을 사면해 주기로 결정을 하면서 그는 마침내 석방됩니다.

이후 권총은 부귀한 가운데 성장하였으나 교만하지 않았고, 두루 관직을 거쳐 예종대에는 예조판서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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