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미경입니다. 오늘 제가 쓴 책에서 주변 사람을 야금야금 좀 먹는 ‘의미박탈자’라는 사람과 그 특징에 대해 말해볼게요.
행동이 자기중심적이죠. 배려가 없어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흔하게 보잖아요. 와이프가 큰 수술을 하고 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명절이 껴있는데 몸을 추슬러야 하는 데 가서 그냥 장 보고서는 전 부치라고 하고 왔다 갔다 하는 거 보니 할 만하다고 말하는 거죠. 또 다른 특성은 내로남불의 사람들이에요.
명절 당일 아침에 시댁에서 제사 지내고 아침 식사하고 오는데, ‘며느리 너는 명절 다음 날 친정 가라.’ 이런 것도 약간 선택적 가부장이잖아요. 그런 내로남불의 사람들도 의미박탈자의 특징이고요.
2인칭 시점으로 상대를 안 보는 사람이에요. 1인칭은 나, 2인칭은 너잖아요. 상대방이 힘든데, 그 힘듦을 토로하는데, 그냥 무시해 버리는 거예요. 예를 들면 회사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요. 아침에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도 나가서 일한다고 하면 ‘야, 우리 때는 더했어. 지금 세상 좋아진 거야.’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계시죠.
‘우리 과장님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면 ‘야, 우리 과장은 더 또라이야! 너희 과장님 정도면 천사야.’ 이러면 할 말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설사 정말 나의 과장님이 더 또라이일 수는 있지만 어쨌든 내 친구가 회사 상사 때문에 힘들다고 얘기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면 상대방 말을 따라가 줘야 하잖아요.
‘어머, 그랬어? 왜? 무슨 일 있었어? 속상했겠다.’ 이렇게 그냥 말을 따라가 주는 능력이 떨어지는 거죠.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기도 하고 우리가 공감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상대방을 수단으로 보는 사람이요. 저는 이게 가장 문제라고 봐요. 인간은 누구나 다 목적이 돼야 해요. 그런데 연예인들 보면 자식이 번 돈을 다 자기가 가져가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럴 경우 우리가 부모랑 연을 끊은 연예인들 욕하지 않잖아요. ‘당연하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라고 하잖아요. 사실 부모가 자식을 ATM 기계로 본 거죠.
기타 부부 사이도 되게 흔해요. 우리가 결혼생활을 유지할 때는 남편과 부부 둘 다 각각의 역할을 해줘야 하죠. 기본적인 돈을 버는 역할, 가정을 관리하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이걸 넘어서 상대방을 기능과 역할로만 보는 거죠.
외래에 오신 분이 한 번은 몸살이어서 앓아 누운 거예요. 딱 하루 지나니까 남편이 짜증을 내더라는 거죠. 집이 엉망이고 내가 애를 봐야 하고 저녁에 와도 식사도 안 차려져 있다고요.
와이프가 아플 수도 있고 생각과 감정 이런 게 있다는 게 인지가 안 되고 집안 살림해 주는 파출부,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집사, 이런 기능과 역할로 보니 짜증이 나는 상황인 거죠.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특성들이 상대방을 끊임없이 평가질해요. 그런데 그 평가질이 마이너스 평가예요. 잘못한 것을 계속 지적하는 거예요.
실수한 거, 잘못한 거, 잘하는 건 기본이고, 못한 걸 꾸중하고 야단을 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비난과 질책을 받는 삶에 익숙해지고 어려서부터의 그 나이 삶의 패턴이 나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이 돼요. 기본 베이스가 열심히 노력해서 잘해서 나한테도 도움이 되고 너한테도 도움이 되자는 게 아니고 잘못 없이 잘해서 누군가한테 혼나지 말자가 베이스가 되는 삶인 거죠.
끊임없이 나의 말과 행동과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셀프 체크를 하게 되는 분들은 부모님 중에 많아요. 어렸을 때 부모가 뭔가 잘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반복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의 ‘의미박탈자’로 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의미박탈자’가 내 주변에 있다는 거죠. 그리고 어쩌면 나도 모르게 의미박탈자일 수 있다는 거죠. 뭔가 의미박탈자는 가해자 같은 개념이잖아요.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이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는데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부모로서도 있고 연인으로서도 있고 직장 상사로도 있기는 한데, 금방 알잖아요. 직장 상사로서는 우리가 빠르게 파악할 수 있죠. 평판도 있고요. 그리고 별로 감정이 엉키지 않기 때문에 안 힘들잖아요. 그냥 혼나더라도 힘들기는 하지만 마음이 다치지는 않죠. 그런데 사적인 관계에서는 힘들죠.
사적인 관계에서 이미 상대방이 의미박탈자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도 끊어내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아요. 그 이유가 있어요. 부모, 자식을 한번 생각해 봐요. 부모가 의미박탈자이고, 그 밑에 자란 자식들이 있어요. 부모의 역사와 나의 역사가 섞여 있는데 나쁜 역사만 있지 않아요.
그 어떤 부모 자식도 좋을 때가 있잖아요. 내가 아팠을 때 엄마가 간호해 줬던 기억, 놀이동산에 데려갔던 기억 등이요. 그러니까 의미박탈자하고 관계를 끊어냈다는 얘기는 나쁜 것만 쏙 도려낼 수는 없죠. 사람하고의 관계에서는 다 섞여 있기 때문에 힘들어요. 좋은 것도 같이 끊어 내야 하잖아요.
연인도 마찬가지잖아요.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인 거 아는데 그동안 내가 이 사람한테 보여줬던 사랑, 노력, 쏟았던 여러 정성들 생각하면 헤어지기 좀 어려운 경우 있잖아요. 나쁜 역사와 좋은 역사가 같이 섞여 있어서 나쁜 것을 끊어내면서 좋은 것도 같이 끊어내야 하잖아요. 그게 힘든 거죠.
그리고 인간이 갖고 있는 기본 욕구가 있어요. 특히 좋은 부모 밑에서 사랑받으면서 크고 싶잖아요. 모두 인성 개차반 부모한테 구박받으면서 크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이건 아주 기본적인 욕구죠. 이게 욕구로 표현되는 게 하나는 인정 욕구, 하나는 애정 욕구잖아요. 이걸 부정해야 해요.
‘우리 부모는 나쁜 부모라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뭔가 하나 큰 걸 포기해야 하는 거잖아요. 우리 부모는 나쁜 부모고, 그래서 나를 사랑해 줄 수 없다고 인간의 기본 욕구를 부정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죠.
그래서 어떤 분이 굉장히 힘들게 하는 부모가 계셨어요. 그런데 관계를 좀 나름의 거리 조절을 하면서 하신 말씀에 되게 인상 깊어요. ‘내가 원하는 부모가 우리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어요. 그리고 내가 노력하면 엄마가 바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게 안 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에 괴로웠어요.’ 내가 좋은 엄마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모가 없다는 기분이었겠죠.
특히 가까운 부모님이면 뭔가 거리를 두면 죄책감이 올라오고, 불안이 올라오고,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동안에 나왔던 패턴인 거예요. 어쨌든 부모와 자식 간에 거리를 둔다는 건 한국 사회에서 비난받잖아요. 이런 사회적인 비난도 있고, 내면으로 올라오는 죄책감도 있고요. 그래서 그냥 꾸역꾸역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죠.
또 헤어진 후에 내 삶이 행복할 거라는 확신이 없어요. 여태껏 그냥 저냥 살아왔거든요. 견딜 만했거든요. 그런데 헤어진 후에 내 삶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는데 불안하죠. 이미 나는 부정 정서의 전문가거든요. 나에 대한 개념도 부정이고 타인도 잘 못 믿겠어요. 세상에 대한 콘셉트도 네거티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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