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닥터프렌즈입니다. 이번 의학의 역사는 ‘성형수술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성형수술은 지금 되게 보편화돼 있잖아요. 일단 성형수술의 정의에 대해서 한 번 얘기해 볼게요. 성형수술의 정의가 뭘까요?
미용수술을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요. 외모를 개선하기 위한 수술 같은 것뿐만 아니라 성형수술은 범위가 더 넓어요. 화상 같은 것도 성형외과에서 보죠.
그러니까 이게 기본적으로는 ‘인체의 선천적 또는 후천적 변형을 보수하는 데 사용하는 ‘예술’이며, 기능적인 장애와 보이는 모습을 정상 또는 그에 가깝게 교정하는 것’을 성형수술의 정의라고 17세기의 이탈리아 의사가 말했어요. 정의 자체는 17세기인데, 그거를 이용해서 고대로 넘어가는 거죠.
옛날에 처음으로 시행된 성형수술은 부위가 어디일까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이 시행되는 성형수술은 쌍꺼풀이죠. 근데 이 당시에는 코예요. 기원전 800년 전까지 넘어갑니다.
고대 인도 사람들은 노비에게 벌을 줄 때 노비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여전히 밑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눈을 뽑거나 손을 자르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던 거예요. 하지만 누가 봐도 그 노비가 죄를 저지른 걸 알리고 싶었기 때문에 표식을 남기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낙인은 너무 약하다고 생각해서 더 고통이 큰 벌을 주기 위해 코를 자릅니다. 게다가 인도의 아리아인들이 코가 높으니까 자르기도 쉬워서 덜컥 잘랐던 거죠.
사실은 코가 이렇게 생긴 게 위에서 내리는 비도 막아주고, 앞에서 바람이 불면 이물질이나 바람 자체도 막아줬던 거예요. 코가 없으면 굉장히 힘들거든요. 근데 그건 고려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노비의 주인들이 몰락하고, 그 노비들은 도망 노비가 되거나 풀려났어요. 그런데 노비들이 코가 없잖아요. 그래서 인도는 코 재건 수술이 발달해요.
‘수슈루타’라는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코 재건술을 하는데, 진짜 대박입니다. ‘국소피판술’이라는 걸로 이마를 돌려서 코를 재건해요. 이마에 혈관이 올라가는데, 그 혈관을 따라서 피판을 자른 다음에 건너서 코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이마는 당겨서 꿰매면 되니까요.
이게 지금도 이비인후과에서 사용하거든요. 우리 코가 사라지면 이마근을 이용하거나 혹은 튜브 형식으로 이용해서 수술하는데, 이때 이걸 시행했어요. 인도에서 완전 선진화된 수술을 했어요. 그때 마취도 없고 항생제도 없어서 많이 죽었겠지만, 수술을 해낸 거예요.
그런데 이게 알렉산더 대왕 이후로 인도에 있는 문물이 유럽으로 많이 넘어간단 말이에요. 그땐 코 성형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유럽에서는 코를 안 자르니까요. 코를 자르는 건 인도에서만 성행하던 처벌이었어요. 중국 같은 경우에는 이제 얼굴에다 먹물로 문신을 했지, 다른 문화권에서는 코를 자르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코 성형수술이 전혀 관심 없이 완전히 사장되어 있다가 대두되기 시작한 게 15세기 대항해 시대예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갔다가 매독을 들고 왔습니다. 초기 매독이 지금보다 훨씬 독했기 때문에 인체의 말단 조직이 삭아서 없어져요. 괴사가 되는 거죠.
그러면서 코가 자꾸 사라지니까 사람들이 그제서야 재건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때는 이미 2,000년이 지나서 인도에서 넘어왔던 건 남아 있지 않았어요.
일반인은 그냥 코 없는 대로 살았겠죠. 그런데 귀족은 코가 없어지면 대장장이한테 가서 기존의 모양을 본떠서 쇠로 코를 만들었어요. 그다음에 무두장이한테 가서 제일 좋은 소가죽을 씌웁니다. 그리고 그걸 코가 있던 자리에 붙였어요.
소가죽이나 양가죽을 붙여준 건데, 프랑켄슈타인도 아니고… 동물 가죽이랑 인간의 피부랑 바늘이 통과를 하는 순간, 거기 있는 균이랑 이물질 반응 등등 때문에 다 죽게 된 거죠.
그런데 비참한 게 뭐냐면 지금은 어디서 이상한 짓해서 죽으면 전 세계가 알잖아요. 근데 그때는 옆 동네에서도 같은 이유로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 와중에 ‘안토니오 브란차’라는 의사가 매독이 번지기도 전에 조수가 코를 다쳐서 그걸 재건했는데, 굉장히 신기한 수술을 했어요. 양피지에다가 일단 코 모양을 그리고, 그 양피지를 잘라서 팔뚝에 대고 그려요. 그다음에 팔뚝의 살을 자르고 끝에 한쪽 면을 남겨서 혈액공급이 되게 한 다음에 팔을 코에다 붙인 다음에 꿰매는 거예요. 그리고 주위를 묶어요. 이 상태로 2주가 지나면 팔에서 코로 피가 통하는 거죠. 그럼 붙여놨던 부위를 자르고 콧구멍을 만들어서 재건하는 수술을 이미 개발해 놨어요.
물론 인도보다는 좀 후진 방법이기는 해요. 이마를 돌리는 게 낫지, 팔은 좀 그렇잖아요. 하여튼 이런 방법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보가 막 돌아다니지 않던 때니까 브란차라는 의사가 죽고 나서 100년이나 지나서야 적어도 죽지는 않는, 거부 반응이 생기지 않는 방법이라는 게 퍼지면서 그때부터는 코가 없어지면 팔에 있는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이 성행합니다.
그러다가 19세기가 오는데, 그때 당시에 유럽에서 대두되던 학문이 우생학과 골상학이에요. 인간은 우열한 종이 있고, 또 열등한 종이 있다는 걸 골상학, 생김새로 판단할 수 있는데요.
그때 전 유럽에서 유대인을 되게 미워했어요. <베니스의 상인> 보면 샤일록이 나오잖아요. 그런 식으로 되게 탐욕스럽고 돈만 아는 존재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유대인 인종의 특징이 매부리코가 있고, 코가 약간 길어요. 전 유럽이 그런 코 생김새로 유대인을 차별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수술로라도 어떻게 고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수술하기 시작합니다. 매부리코를 깎아내는 니즈가 생겼어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 항생제가 없고 소독을 잘 안 해요. 그 상황에서 코를 수술하면 많이 괴사가 되기도 하죠. 그래서 역으로 재건술이 막 발달하기 시작해요. 매부리코 성형하려다가 망가져서 다시 또 재건하는 거죠.
그때가 되어서야 수슈루타가 썼던 저서를 발견합니다. 해부학적으로 그때는 어느 정도 발전했기 때문에 이마로 올라가는 혈관이 있으니, 그것만 살려서 돌리면 된다는 걸 깨닫고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재건술은 여전히 미흡한 단계였어요.
그러다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죠. 그전까지의 전쟁은 전열 보병이 앞으로 나가서 1열이 총을 쏘고 앉으면 다음 열이 총을 쏘고… 그렇게 전진하다가 가까워지면 칼을 뽑아서 싸우는 식이었다면 1차 세계대전은 완전히 양상이 달라지는데, 참호전이 생깁니다. 달려가서 싸우는 게 아니라 먼저 도착한 애들이 굴 파서 얼굴만 내놓고 쏘는 거예요. 그러면 얼굴만 다쳐요. 얼굴에 부상이 집중돼요.
그런데 그때 당시의 의학으로는 눈을 맞는다거나 턱을 맞으면 살아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총알이 날아와서 코에 맞으면 살 수 있었단 말이죠. 귀랑 코는 잘하면 살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1914년부터 종전까지의 코 재건 수술을 보면 매년 양상이 달라요. 처음에는 기껏해야 이마근을 돌리다가 나중에는 튜브를 달아서 조금 더 자연스러운 코 모양을 만들어주고, 나중에는 아예 그냥 콧구멍까지 제대로 된 코를 만들기도 해요. 갈비뼈 같은 걸 잘라서 코뼈 이식해 주는 등의 방법으로 현대 의학에서 쓰는 코 재건술의 개념 자체는 거의 그때 나왔어요.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개념은 그때 나왔어요. 전쟁을 통해서 성형수술이 발달한 거죠.
이후에 유방 수술 같은 미용 수술도 나오기 시작하는데, 미용 수술도 역사가 만만치가 않아서 성형 수술의 역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사실상 재건 수술의 역사죠.
그런데 ‘수슈루타’가 한 명이 아니라는 설이 지배적이에요. 고대 인도의 아주 위대한 명의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수슈루타’ 아니었을까 싶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정의한 병이 너무 많아요. 백내장도 치료했지, 성형도 했지… 약간 랍비나 이집트에서의 임호텝 등 어떤 현자를 지칭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의학의 역사는 수술 방식도 기괴하고 신기하지만, 처음에 왜 수술했는지에 대한 그 니즈가 사실 좀 궁금하거든요. 다음에는 그것들에 대해 준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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