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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만이 640조 투자한 네옴시티… “한국과 손 잡은 이유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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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재산만 2,800조 원에 이르는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이 최근 한국을 방문하면서 모든 언론의 포커스가 그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는 소공동 롯데호텔 약 2,200만 원 짜리 로열 스위트룸에 머물며 객실 400개를 예약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역시 미스터 에브리띵답게 통이 크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요.

사실 그가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자신의 전 재산 약 5분의 1의 해당하는 640조 원을 투자해 건설중인 ‘네옴시티’와 관련하여 한국정부와 기업의 협력을 의논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미 방문 하루만에 26개의 MOU가 체결 됐습니다.

서울 면적의 44배에 해당하는 면적에 건설예정인 네옴시티는 크게 3개 거대 프로젝트로 이루어지는데 직선 도시 ‘더 라인’, 바닥 위 부유식 첨단산업단지 ‘옥사곤’, 그리고 사막 관광단지 ‘트로제나’입니다.

여기에 석유의에서 탈피해 그린수소와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로만 네옴시티를 운영하기로 하면서 수많은 도시의 롤모델로 태어나게  될텐데요.

그런데 사우디 북동쪽에 건설중인 네옴시티의 건너편에는 한국인 피가 흐르는 한국인 후예가 살고 있습니다. 1200년 전 중동으로 흘러들어가 한국 문화를 간직하고 산다는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최근 유튜브에서 한 달에 천만 원 벌기, 부동산투자로 인생바꾸기, 부업으로 현금 파이프만들기 등 자신의 지식으로 돈 버는 노하우를 가르치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런 컨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도 , 이를 소비하는 구독자들도 역시 돈을 벌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인데 과연 그들이 꿈꾸는 경제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요?

2022년 기준 포브스가 발표할 ‘세계 부자 순위’ 에서 1위에 등극한 인물은 바로 테슬라의 ‘일론머스크’입니다. 순자산 약 220조 원으로 집계됐는데요. 머스크가 만약 본인 , 아들,  손자와 함께 하루에 1억씩 쓴다면 몇 년을 쓸까요?

하루에 1억씩 3억을 쓴다면 머스크가 재산을 전부 탕진 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2,200년입니다. 예수 탄생 후 현재까지 매일같이 3억을 간신히 쓰면 전 재산을 탕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머스크를 ‘자동차팔이 소년’ 정도로 여기는 인물이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입니다.

왕실 자산은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지만 언론이 평가하는 그의 재산은 약 2,800조 원입니다.

머스크의 10배인데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없는 머스크에 비해 빈 살만은 왕실재산이 그의 재산입니다. 예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국방과학연구소를 통째로 사 가고 싶다는 발언을 남겨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세계 1위 부자의 농담은 이렇게 살벌하고 스케일이 큽니다.

1985년생 고작 37살의 젊은이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최첨단 신도시 네옴시티를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는 중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비행기로 2시간 날아가면 타북주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지역 26,500제곱킬로미터 면적의 네옴시티가 건설되죠.

그런데 리야드에서 동쪽으로 30분만 날아가면 알 윤(Al-Yun) 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여기가 바로 한국인의 후예가 사는 곳으로 알려진 마을입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30여년 전 신뢰할만한 인물로부터 사우디 남동쪽 후프프 지역에 ‘알 윤’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 스스로 한국인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인물이 살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사우디로 답사를 떠나는데요.

그리고 자신이 한국인 후예라 주장하는 칼릴 아브라힘이라는 인물을 만났는데 그의 주장은 충격적입니다.

한 때는 족보도 있었지만 50년 전 관공서에서 전부 가져갔다면서 우리 조상중에 1200년 전에 윤이라는 성을 쓴  인물이 커다란 공을 세우고 이 마을을 봉토로 얻어 ‘알 윤’이라는 마을이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나 450년 전 우수만투르크의 침공 때 전쟁에 투입되어 대부분 몰살 당해버려 이제는 6가구 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은 놀라웠죠.

콩으로 된장을 만들고 고추를 즐겨 먹으며 한국 문화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런 주장은 단 한 번도 제기된 적이 없어 조사가 필요했습니다.

약 1200년 전에 실제로 윤이라는 성을 가진 인물이 존재했는지 알아야하는데, 조사 결과 이희수 교수는 당시 755년에 사망한 고구려유민 출신 당나라 장군 ‘고선지’를 떠올렸습니다.

신라와 당나라는 연합을 구축해 고구려를 멸망 시켰는데 이후 고구려 주민들을 당나라로 강제로 이주 시켰습니다.

고선지 역시 이 당시에 당나라로 끌려간 것으로 보이는데 고구려유민 출신으로 그는 당나라에서 화려한 이력을 썼습니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그는 장군으로 대단한 전투를 여러 차례 치르면서 당나라를 괴롭히던 ‘달해 부족’을 전멸 시키고 실크로드에 걸쳐있는 서역정벌의 책임자가 됐죠.

그리고 토번족 정벌을 시작으로 그의 발 아래 무릎 꿇은 서역 20여 개국과 서방 72개국을 모두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751년 그 유명한 ‘탈라스전투’가 벌어집니다. 이 전쟁은  당나라와 이슬람 세력이 격돌한 최초의 전투였으나 내부 배신과 반란이 발생해 패배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이끌던 3만명의 부족 대부분은 아랍군에 의해 붙잡히거나 죽음을 당했는데 윤씨 성을 가진 고구려 병사가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칼릴 아브라힘은 중동에 정착한 그의 조상 윤씨가 이후 바레인을 거쳐 이곳으로 와 정착했다고 했죠. 다만 당나라의 고선지처럼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아 후손들이 문헌연구와 인류학적 조사를 병행해 찾아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단지 후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 속 인물의 흔적을 찾아 그의 삶을 복원 하는 것은 불확실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현대 시대로  접어들어서는 확실하면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기도 합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카고 대학교 ‘로버트 루카스’ 교수는 1993년 세계적인 학술지 ‘Econometrica’에 게재한 논문 ‘Making a Miracle’에서 한국의 발전을 두고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후 25년 간 전 세계적으로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7.5% 를 넘은 국가는 13개에 불과하고 그 중 우리나라가 당당히 1위를 기록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기적에 가까운 경제성장 배경에는 몇몇 중요한 사건들이 있는데 가령 베트남전 파병으로 받은 지원금, 서독으로 파견한 광부와 간호사 덕분에 얻어낸 차관 등이 있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잘 떠올리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중동건설붐’입니다.

1979년 가수 현숙이 부른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라는 곡은 낯선 중동에서 고생하는 가장들을 그린 가슴 절절한 노래로 중동근로자 가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는데 이 시기 한국의 많은 가장은 중동 건설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있었죠. 사실 사우디는 1970년대 초 넘쳐나는 오일머니를 감당하지 못해 그 많은 돈을 인프라 구축에 투자했는데 사우디 역사에서도 한국 역사에서도 전설처럼 남아있는 공사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항만공사’입니다.

20세기 최대 토목공사로 불리던 이 공사는 1976년 당시 한국 1년 예산의 1/4에 이르는 1조 원이 훌쩍 넘는 입찰 금액을 공시했고 미국, 독일, 일본, 스웨덴, 캐나다, 호주 등 전세계 9개국 31개 건설회사가 입찰에 참여했습니다.

경쟁국들이 한국은 이런 공사를 할 능력이 안 된다며 깎아내리는 방해공작 때문에 사우디 건설청이 아예 현대건설에 입찰자격을 막아서기도 했는데 당시 사우디 국왕 덕분에 입찰자격을 부여받았죠.

그리고 1975년 이란에서 건설한 80억짜리 중동 실적이 전부였던 현대건설은 결과적으로 이 공사를 수주했습니다.

당시 현대건설에 정주영 회장의 “해보기나 해봤어?”라는 명언이 탄생한 것도 이 공사였는데 현대건설이 써 낸 입찰금액은 9억 3,114만 달러였습니다.

현대건설이 써 낸 금액을 본 경쟁 기업들은 현대 건설이 분명 실패할 거라고 봤습니다. 왜냐면 이 금액은 미국이 써낸 금액의 절반이자 차점자보다 3억 달러나 적었으니까요.

하지만 정주영회장은 “이 공사는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시작될 중동 건설업 진출을 위한 일종의 투자”라고 봤고 실제로 이후 4년 동안 무려 51억 6,400만 달러의 외화를 중동에서만 벌어들였습니다.

이런 외화벌이가 가능했던 것은 주베일 산업항에서 피땀 흘리며 노력한 한국인 근로자들의 노력과 정주영 회장의 뚝심이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예상된 공기보다 무려 10개월이나 앞당긴 덕분에 한국인들의 근면성실함은 사우디 시민들에게도 강한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얼마전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영자신문 아랍 뉴스는 “한국이 우리 마을에 오시네”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1970년대 사우디에서 피땀흘린 한국인 근로자들을 집중 조명 했습니다.

칼럼 제목은 ‘크리스마스 캐롤 산타 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를 빗대서 썼는데요.

칼럼은 ‘최근 국왕이 병원, 고속도로, 대학, 철도, 스포츠 경기장, 석유 및 가스 프로젝트 등 전 분야에 걸쳐 대규모 공사를 해외 업체에 발주했으나 상당수가 공기가 지연되거나 완성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1970년대 물결처럼 밀려온 1세대 한국 근로자들이 더욱 그립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첫 한류는 우리 사우디 왕국에서 시작된 것” 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1973년 사우디에 첫 진출한 후 한국 건설사들은 사우디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매년 최대 5조원을 수주했을 뿐 아니라 리비아, 바레인, 이라크 등 중동 건설 현장에서 10만여명의 근로자가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벌어들인 오일머니는 한국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죠.

유가 하락으로 중동건설붐은 사그라들었으나 그들이 남긴 성과는 지금도 사우디인들에게 남아있습니다.

당시 사우디에서는 한국인들을 “집안이 가난하고 나라 경제나 정치 불안이라는 위태로운 조건에서도 가족을 먹여살린다는 일념으로 묵묵하게 일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칼럼은 “공사비를 예전 물가에 비해 적게 주는 것도 아니고 최신공법이 등장 했는데 왜 완공이 지연되고 품질이 떨어지는지 사우디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썼습니다.

1970년대 공기를 앞당기고 고층빌딩은 물론 교량, 도로까지 흠잡을 것 없이 튼튼하게 만들어 내는 장면을 기억한 그들에게는 현재 상황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죠.

칼럼이 사례로 주목한 것은 수도 리야드의 고가도로였는데 이후 한국에 준 것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해 고가도로를 만들었지만 그보다 품질이 한참 떨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사실상 사우디를 통치하는 빈 살만 왕세자는 딱 20시간 한국에 머문 후 일본으로 출국했습니다.

대통령과 회담 후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등 8명의 재계 총수들이 직접 찾아와 면담을 하기도 했죠.

한국 기업들과 사우디 정부, 기업 등이 투자 포럼을 열고 20시간동안 무려 26개의 MOU가 체결됐는데 그 규모가 무료 40조 원입니다.

이 업무 협약이 전부 진행될지 여부는 지켜봐야겠지만 사우디가 특히 원자력과 방위산업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을 희망하고 있고 네옴시티와 관련해서도 이미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네옴시티 ‘더 라인’ 지하에 터널을 뚫는 공사를 수주 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이후 일본을 방문 하기로 했던 빈 살만 왕세자는 돌연 일본 방문을 취소하고 기시다 총리와의 회담도 전부 무산 시켰습니다.

방문 취소 사유에 대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일각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일본보다 나은 실정이고 우리나라에서 원하는 것을 다 얻었는데 굳이 일본을 갈 필요가 없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 인력을 수출하던 때와 달리 이제 대한민국도 그 위상이 달라진 만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의 종류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번 빈 살만 왕세자의 방문으로 주춤하던 대한민국의 경제가 다시 일어나 날개짓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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