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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에서 발견한 손톱크기 금조각 유물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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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그리스 안티키테라섬 앞바다에서는 기원전 1세기쯤 침몰한 것으로 보이는 화물선에서 유물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난파선에서는 묘한 기계가 하나 발견되는데요. 해당 기계는 오랫동안 바다에 잠들어 있던 탓에 많이 부식되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무슨 물건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기계는 섬의 이름을 따 ‘안티키테라 기계’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당시 과학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이 기계는 우주의 움직임을 표시함으로써 다른 다섯 행성의 움직임과 달의 위상, 그리고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기 때문이었죠. 이후 연구진이 오랜 시간 비밀을 밝혀내려 매진했으나 밝혀낸 것이라고는 원형, 구조, 지구 공전을 중심으로 행성들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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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지금 기준으로 약 2100년 전, 그러니까 우리가 삼국시대였던 그 시기,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정교한 기계장치를 만들었는지 이게 연구용인지 장난감인지 그 용도조차 파악하지 못했죠. 이렇듯 그 시대의 과학 기술로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물건 또는 그 정도로 경이로운 유물을 오파츠라고 부릅니다.

위에 안티키테라 기계를 비롯해 독일에서 발견된 3600년 전 천문반,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 콜롬비아에서 2500년 전 만들어진 비행기 모형 ‘황금 셔틀’이 있고, 좀 더 크게 보자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반도에는 이런 오파츠 가 있을까요? 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금 조각 하나가 하수구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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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여러분들도 경주 안압지라는 이름은 들어보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작은 연못인데 삼국을 통일한 직후 674년 문무왕이 축조했죠. 그런데 이 안압지의 원래 이름은 월지입니다. 연못은 삼국통일 후 축조했기 때문에 약간의 사치를 가미했는데 삼국사기는 2월에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은 월지는 상당히 훼손됐습니다. 특히 1926년 경주 군수 박광렬은 월지 풍경을 즐기겠다며 임해정이라는 정자를 지으면서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해 월지 주변 노점상이 들어서며 말 그대로 개판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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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왕자가 살았던 동궁 터가 노점 포장마차가 된 겁니다. 그러다 1975년 경주 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되면서 월지에 대한 발굴이 시작되는데 이 연못에서 한국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5천 평에 조금 부족한 연못에서 무려 33,000점이 나왔죠.

그리고 2016년 11월 하수구를 조사하다 오파츠가 발견됐죠. 2016년 11월 경주에 동궁과 월지를 발굴하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제 조사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와 인접한 부근에는 일제강점기에 부설된 철로가 지나고 있었는데 그 철로 옆 배수로에 자꾸 물이 차 더 이상의 발굴은 불가능해 상층부만 조사하고 발굴장을 정리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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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인부 한 명이 흙 속에서 콩알 크기의 반짝거리는 작은 물체를 찾아냅니다. 아주 작았지만, 반짝거리는 금박을 입힌 이 유물을 수거해 일단 기록으로 남겨놨는데 열흘 뒤에 또 다른 인부가 그 주변에서 비슷한 물건을 찾아냈죠. 그렇게 수습된 2점의 금박 조각은 수장고에 보관해 뒀는데 이후 수습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전해집니다.

두 금박 조각을 꺼냈더니 마치 쌍둥이처럼 문양의 패턴이 비슷했고 이를 이어보니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었으니까요. 가로 3.6cm, 세로 1.17cm, 두께 0.04mm로 어른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크기에 무게 또한 0.3g에 불과한 이 조각에 대한 현미경 조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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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사를 시작하면 할수록 충격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데요. 금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늘어지기는 하지만 깨지지는 않기 때문에 이를 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혹시 하나라도 손상될까 무려 6개월 동안 정성을 다해 평면으로 펴냈습니다. 그리고 현미경을 통해 금박 조각을 본 연구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로 탄성을 쏟아냈죠.

1300년 전 신라 장인이 만든 초미세 캔버스가 눈앞에 등장했으니까요. 손톱보다도 작은 금박 두 점을 현미경 아래에 두고 관찰했더니 0.05mm 굵기의 초미세 선으로 새긴 그림들이 드러났습니다. 화사하게 피어난 꽃 무리 속에 비둘기가 내려앉은 자태는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정교했고, 두 금박 조각을 붙여보니 암수 한 쌍이 서로 마주 보는 쌍조 문도가 등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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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선각단화쌍조문금박’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우선 이 금박 화조도가 놀라운 점은 99.99% 순금으로 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불순물이 제로에 가까운 고순도 순금인데 신라시대 금관 6점의 금 함유량이 89%라고 알려졌죠.

불순물 제로에 가까운 정련 기술은 현대 시대에서도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1300년 전에 이 정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99.99%의 순금 0.3g을 두께 0.04mm로 얇게 펴 초미세 캔버스를 만든 후 미세 도구를 사용한 ‘조금 기법’으로 새와 꽃을 아주 정교하게 새겨 넣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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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굵기인 0.08mm보다 가는 0.05mm 이하의 굵기 각 선으로 캔버스의 왼쪽과 오른쪽에 두 마리의 새를, 새 주위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묘사한 꽃문양 ‘단화’를 새겼죠. 꽃술과 새의 깃털 간격이 고작 0.1mm도 안 되는 무수한 선으로 새겼지만 겹치는 부분 따위는 없습니다. 이게 과연 1300년 전 인간이 만든 것이 맞나 싶을 만큼 대단한 작품이죠.

이를 조사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현재까지 알려진 당대 전 세계 고대 공예품들 가운데 이 금박만큼 미세 가공술을 쓴 전례가 없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더 재미있는 점은 이 그림들이 워낙에 미세한 선으로 새겼기 때문에 구체적 형상을 보려면 현미경으로 6배 확대해야만 확인이 가능한데 지난 콘텐츠에서 말씀드렸듯 그 기술력을 보려면 복원이 가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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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를 국가무형문화재 김용운 조각장을 포함해 현직 장인들에게 같은 크기의 금속판에 재현해 보도록 했는데요. 결과는 당연히 실패. 확대경을 사용해 가는 철필 등을 이용해 머리카락 굵기의 미세한 선는 어렵게 새길 수 있었지만, 신라 장인처럼 자유자재로 새를 그리고 꽃을 그리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실 수 있듯 머리카락과 선의 굵기를 비교한 사진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1300년 전 장인들에 뛰어난 손 감각으로 확대경과 미세 철필 등의 도구를 썼을 것이라 추정만 할 뿐 이를 동일하게 복원하는 것은 실패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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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에 도전한 김용운 조각장 역시 컴퓨터로 도안한 그림을 레이저로 쏘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현 시대 장인들이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금박화조도는 컴퓨터로도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는, 즉 인간의 기술력으로는 복원에 성공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아직 금박 조각의 용도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학계에서는 동궁과 월지가 신라시대 별궁 터라는 점에 근거해 왕실에서 사용되던 용품의 일부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실기물의 끝 장식이거나 마구리 장식일 가능성이 높은데 쓰임새가 정확히 밝혀지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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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이를 종교 유물로 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과시할 수 없을 만큼 초미세 세공법을 사용했다는 점으로 볼 때 인간이 아닌 신에게 바치는 봉헌품의 일부일 가능성을 본 것이죠. 또한 제작기법도 완전히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김경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사는 ‘넓은 금판에 문양을 새긴 뒤 필요한 부분을 오려냈을 것이다. 현미경 분석 결과 금박을 선에 맞춰 잘라낸 흔적이 확인됐다’라고 설명합니다.

보통 금속공예품은 망치로 정을 내리쳐 무늬를 새기는데 금박화조도는 금박 두께가 0.04mm로 얇아 이런 방식으로 새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죠. 당대 최고의 일컬어지는 신라 장인들의 솜씨는 고려시대 장인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인데요. 고려시대 금도금 은잔의 경우 5mm에 선 20개를 그려 넣었는데 위 금박화조도는 5mm에 무려 선 60개를 그려 넣었으니 1/3 정도 더 정밀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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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한반도 조상들의 세밀함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지난번 소개해 드린 청동기 시대 거울인 다뉴세문경은 2300년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거울에 새겨진 선의 골 깊이가 0.7mm, 선의 간격이 0.3mm, 선의 굵기가 0.2mm로 나타났죠. 이미 우리 조상들의 세공기법은 청동기 시대에 완성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보통 한국인을 두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쇠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이라며 손기술이 뛰어난 배경을 쇠젓가락을 꼽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신라시대 아니 청동기시대 우리 조상들의 도대체 무엇을 사용하셨길래 이렇게 세밀한 손기술을 가졌던 것일까요? 지금 우리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우리 조상들의 기술, 예술, 문화들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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