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석가탑을 노린 도굴꾼 덕에 발칵 뒤집힌 세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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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재미주의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중국과 일본은 서로 ‘우리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을 만든 국가’라며 치열하게 논쟁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한국에서 발견된 ‘이것’ 때문에 그들의 논쟁은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끝나버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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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은 일제 강점기, 6.25를 거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문화재를 잃고 훼손 당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도굴꾼들이 기승을 부리며 문화재는 끊임없이 몸살을 앓게 되었는데요.

그러던 중 1966년 9월 3일 경주 불국사 경내에 괴한들이 잠입해 석가탑을 훼손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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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석가탑의 사리함을 도굴하려 했으나 다행히 사리함을 빼내지 못해 실패!

하지만 그들의 도굴 행위 때문에 사리탑에는 큰 흠집이 생기고 옥개석의 위치까지 뒤틀어지는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결국 석가탑은 해체 수리까지 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요. 개인의 욕심 때문에 귀중한 국보를 훼손하다니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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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대반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해체 작업 중 버팀목이 부러지며, 2층 옥개석이 땅으로 무너지게 되었는데요. 여기까지만 보면, ‘아이고 망했다’ 싶은데 무너진 2층 탑신 내부가 드러나면서 놀라운 것들이 발견되게 됩니다.

탑신석 중앙에서 사리공이 나왔고, 그 안에는 사리외함, 각종 공양품, 금동제사리외함, 비천상, 목제소탑, 목서지편, 금박편, 수정옥, 관옥 등 엄청난 문화재들이 그 속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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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발견된 문화재 중에서도 최고의 성과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발견으로 당연히 우리나라 역사 학계는 난리가 났죠. 그런데 중국과 일본 측도 다른 의미로 난리가 나는 상황이 벌어 졌습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는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은 중국과 일본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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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금강반야바라밀경’868년, 일본의 ‘백만탑다라니’는 770년 추정.

중국의 경우 868년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 추정이라 아주 애매한 사항이었죠. 그래서 두 나라는 서로가 최초라며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요. 그러다 한국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중국과 일본 문화재보다 훨씬 앞선 751년 즉,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로 판명나면서 그들의 논쟁은 의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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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불국사 사중기 중 ‘751년 불국사를 시작했다’ 라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인데요.

공약품의 경우 건축물을 짓는 초기에 안치하기 때문에 근거로 사용된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704~751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어찌되었건 이것이 세계 최초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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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자기네들이 세계 최초라고 생각했었지만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발견으로 단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언제나처럼 황당한 주장을 시작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사용된 한자 중 ‘땅 지’가 그림과 같이 표현되었고, ‘처음 초’가 지금의 표기와 다른 한자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 ‘이건 당나라 측천무후 시기에 사용된 무주제자이고, 그리고 중국 닥종이로 만들어졌다’ 이 두 가지 이유를 들며 ‘이것은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다’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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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제자는 당나라에서 사용한 문자가 맞지만 당시 중국에 신라방이 있을 정도로 한중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무주제자로 쓰였다고 해서 중국 것이라 건 어불성설이었습니다.

또한, 다라니경에는 비출 조가 사용되어 있는데요. 이건 중국에서 사용하지 않는 한자였습니다. 여황제 측천무후의 이름에 사용된 한자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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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다른 주장, 중국의 닥종이로 만들어 졌다는 것도 그냥 던지고 보는 주장이었습니다.

종이의 성분 그리고 활자의 서체를 분석해 보니 8세기 신라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인데요. 중국의 황당한 주장에 한국 학자들이 이렇게 반박하자 중국의 학자들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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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여전히 중국 안에서는 금강경을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로 교육하고 있으며, 대다라니경 조차 중국에서 인쇄되어 한국으로 전해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귀중한 국보를 도굴하는 범죄는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덕분에 한국에 잠들어 있던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는데요. 참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재미주의였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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