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는 제1차 이탈리아 전쟁을 일으켜 피렌체, 로마, 나폴리를 차례로 함락시켰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프랑스의 뜻대로 될 것 같았던 그때, 이탈리아에서 전례 없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합니다. 당시 이 병에 걸렸던 이탈리아 성직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머리 전체가 반점과 딱지로 뒤덮이고 양쪽 팔이 어깨부터 손끝까지 뼛속 깊이 쑤셔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오른쪽 무릎이 아프더니 결국 온몸에 빠짐없이 종기가 돋아났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이 질병이 무엇인지, 어떻게 치료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죠. 우리가 얼마 전 겪은 코로나19처럼 당시 이탈리아는 난리가 났고, 그들은 이 병을 ‘프랑스 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병은 이탈리아에서만 창궐한 것은 아닙니다. 이탈리아를 공격한 프랑스도 마찬가지였죠. 나폴리 침공 후 반프랑스 동맹에 밀려 철수한 샤를 8세 역시 이 질병에 걸렸고, 가까운 신하부터 시작해 곧장 프랑스 전역으로 퍼지게 되는데요. 프랑스인들은 이 병을 ‘나폴리 병’이라고 부릅니다.
해당 질병은 이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체, 아니 전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됩니다. 5년 뒤에는 런던, 모스크바를 포함한 유럽, 그리고 인도 항로를 통해 1520년에는 아프리카, 중국 그리고 일본까지 퍼지죠. 그때까지도 이름이 없다 보니 각 나라에서는 이 병으로 옮겨온 국가명을 붙여 불렀습니다.
폴란드는 독일 병, 러시아는 폴란드 병, 중동에서는 유럽병, 일본에서는 당나라 두창이라고 불렀는데, 이 질병의 이름은 바로 매독입니다. 여러분은 매독이라는 질병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누군가는 더러운 성병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저 전염성 질환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질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기에 치료도 어려운 질환인데도 그런데 이 매독 때문에 일본이 초비상에 빠졌습니다.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황 알렉산드르 6세, 프랑수아 1세, 파가니니, 가토 기요마사, 톨스토이, 나폴레옹, 하이네, 카사노바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이 유명인들은 전부 매독에 걸렸거나 매독으로 사망한 사람들입니다.
매독은 중세에 전 유럽 인구의 20%가 걸렸을 정도로 당시 창궐한 페스트만큼이나 무서운 전염병이었죠. 어떤 역사학자들은 그 대단했던 나폴레옹의 실패 원인을 매독으로 보기도 하는데요. 당시 나폴레옹 군의 40%가 매독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매독에 걸린 여성들은 2기가 되면 목덜미를 돌아가며 멜라닌 색소가 나타나는데 이를 비너스 목걸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르네상스 말기에 유행한 레이스 주름 양식의 거대한 옷깃은 매독에 걸린 여성들의 목덜미 자국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죠.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 페스트는 정복되었으나 매독은 지금까지도 인류를 괴롭히는 재앙적 전염병입니다.
다만 선진국에서는 적절한 관리가 이뤄지는 만큼 일본이 매독으로 의료 붕괴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꽤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요. 사실 일본에서 매독은 1950년 연간 20만 명이 감염되며 기승을 부린 역사가 있습니다. 이후 항생제 페니실린이 보급되면서 급격히 감소했다가 10여 년 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죠.
2022년에는 1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감소했던 매독이 다시 증가한 것일까요? 일본이 매독이 퍼진 이유로 내세운 것은 바로 채팅 앱이었습니다. 특히 20대 여성 감염자가 많은 이유로 채팅 앱을 통한 즉석 만남, 특히 코로나 시국에 일어난 일이라는 겁니다.
일본 매체 ‘일간 겐다이’에 따르면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달까지 올해 들어 8,349건의 신규 매독 환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 동기에 발생한 6,385건에 비해 30% 넘게 증가한 수치입니다. 만약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3년 매독 감염은 17,000건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연간 1,220건의 감염이 발생한 2013년에 비하면 10년 동안 감염자가 13배 이상 증가하는 셈이죠.
특히 일본 전국 47개 도도부현 가운데 올해 매독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지역은 한 곳도 없었다는 게 충격적인데요. 수도 도쿄도가 2,052건으로 가장 많았고 가장 적은 야마나시현에서도 12건이 보고 되었습니다. 대도시 환락가나 그 주변 지역뿐 아니라 지방에서조차 매독은 이제 더 이상 보기 드문 질병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죠.
문제는 일본에 성병을 담당할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성병 전문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오가미 야스히코 원장은 매독의 신규 감염자 증가세가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풍부한 치료 경험과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의사가 많지 않다는 점이라고 우려를 표합니다.
또한 베테랑 성병 전문의 고령화로 현장을 떠나는 의사가 많아지면서 진료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의료 붕괴가 현실화할 것이라며 일간 겐다인은 지적했는데요. 성병 전문가인 오노에 원장은 급증하는 성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체계는 쉽게 갖춰지지 않는다며 결국 예방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죠.
한편 도쿄도는 예방책으로 도심 곳곳에 무료 익명 임시 검사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아울러 의사, 간호사 등 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매독 대응 관련 특별 연수도 실시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서 우리는 일본의 대처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투명하지 않은 정보는 그들이 과연 선진국이 맞는지 의심하게 했죠.
어쩌면 이번 일본 매독 사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본의 상태가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역시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으로의 여행객이 늘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이 있는 우리 역시 안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 간의 교류가 잦아졌다는 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유튜브를 조금만 찾아보면 비슷한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죠. 그리고 이는 매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매독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2019년 5,954명에서 2021년 6,293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 국회와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매독 확진 건수는 2021년 337건에서 2022년 401건으로 늘어나 1년 만에 20% 가까이 늘었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20, 30대 남성이 전체 환자의 6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지난 2023년 8월 1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매독을 4급 감염병에서 3급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 감염병 관리법’을 발표하기도 했죠. 매독은 세균성 감염증으로 주로 성적 접촉에 의해 퍼지고, 걸리더라도 증상이 없거나 증상이 있다가도 곧 사라지는 일이 있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확산할 우려가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뇌나 심장에 심각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요. 임산부가 매독에 걸릴 경우 사산 혹은 유산으로 연결되거나 태어난 아기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죠. 잠복 매독 시기는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계속되기도 하며 3기 매독의 경우는 뇌, 신경, 눈, 심장, 대동맥, 간, 뼈, 관절 등 다양한 부위에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대동맥이나 심장판막에 손상을 주기도 하고 경련이나 마비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만약 조금의 증상, 혹은 이 콘텐츠를 보고 설마 하는 마음이 있다면 주위의 시선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곧장 병원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이런 매독, 우리나라에는 언제 처음 들어왔을까요? 이 역시 일본과 무관하지 않은데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따르면 조선에서 천포창이 처음 발견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10년 무렵으로, 서양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고 합니다. 19세기 후반이 되어 일본인 등 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급속히 퍼졌고 일제강점기에는 공창이 매독을 퍼뜨린 진원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매독이나 임질과 같은 성병은 화류계에서 비롯된다고 하여 화류병으로 불리기도 했죠.
매독에는 특효약이 없어 수은을 치료제로 쓰기도 했는데 부작용이 심각했고, 인육이 좋다는 황당한 소문까지 돌아 매독에 걸린 딸을 위해 아버지가 묘지를 파헤치는 사건까지 발생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도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20세기 들어서야 치료제가 개발되며 이런 행동은 점차 멈추게 되는데요.
일본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추세로 볼 때 절대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특히 일본 여성과 교류가 잦아진 현재 이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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