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프렌즈 오진승 선생님 _ 이하 호칭 생략)
닥터프렌즈 우창윤 선생님 _ 이하 호칭 생략)
황승택 기자님 _ 이하 호칭 생략)
오진승) 안녕하세요, 닥터프렌즈입니다. 지난번 시간에 이어서 황승택 기자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하는데요 백혈병 진단을 받으시고, 또 여러 차례 재발이라든가 인공와우 수술까지 많은 힘든 일들을 겪으셨는데, 그때 심정이라든가 감정,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한번 좀 이야기를 듣고 싶거든요.
황승택) 저의 어떤 투병생활을 정리해본다면, 지금 백혈병 혈액암이라고 하죠? 혈액암이 세 번 발병하면서 한 3년 9개월간 투병을 했었고요. 끝난 다음에 회사에 복직을 놀랍게 해서 1년간 생활을 잘하다가, 갑자기 난데없이 급성 중이염 진단을 받고…
황승택) 대부분 급성 중이염은 주사, 항생제 치료를 받으면 쉽게 정리가 된다고 했는데, 저는 그거와는 다르게 청각 세포가 손상이 돼서 청력을 한 200일 동안 잃었었고요. 그래서 인공와우 수술이라는 어떤 의료기기 수술을 통해서 지금 청력을 듣고 있고, 제가 법적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저는 지금 청각장애인으로 자격이 있는 장애인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정상 생활을 외부의 기기 덕분에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심정적으로는 가장 힘들었을 때는 첫 번째 혈액암 진단을 받았을 때가 제일 힘들었죠.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누구든지 암이란 거는 ‘한국인들 중, 4명 중 1명이 암’, 이런 숫자 속에 있었던 암이었고…
황승택) 저는 나름대로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유산소 운동을 하고, 술을 그렇게 많이 먹는 편도 아니었거든요, 가족력도 없었고. 그래서 그때, 첫 번째가 가장 큰 충격이 있었고… 제일 힘들었던 거는 두 번째 발병이죠, 재발했을 때. 왜냐하면 너무 치료가 잘 됐었고 예후도 좋았고, 또 조혈모세포 이식이라는 혈액암을 치료라는 데 있어서 가장 어떤 확률이 높고 재발 위험을 낮춰주는 처치를 했음에도, 또 한 번 암이 재발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이제는 또 재발 같은 경우에는 생존율이 떨어질 수도 있는 문제고, 저 같은 경우에는 계속 그 치료 과정 중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순간이 많이 있어서 두 번째 재발이 가장 심리적으로는 힘들었습니다.
황승택) 오히려 뒤에도 한 번 더, 세 번째 재발이 났었는데, 그때는 좀 아이러니하게 한 번 겪어봤던 일이어서 그런지 한 하루 정도 실망을 하고 ‘또 치료를 한번 하면 되겠지’ 오히려 그렇게 마음을 굳세게 먹었던 것 같아요.
오진승) 두 번째 재발 얘기를 좀 들으셨을 때, 그때 좀 어떻게 이거를 극복하셨는지 사실 궁금하거든요.
황승택) 그 당장은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척수 검사를 하지 않습니까? 그 검사 결과를 들었는데 주치의 선생님 오셨어요. 그래서 ‘재발한 것 같다’, 그러는데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다만 엄청 제가 낙담했던 것 같아요.
황승택) 그래서 교수님이 ‘저는 환자 함부로 포기 안 한다’, 그런 말을 주치의 선생님이 저한테 했던 말이 기억이 나는데… 3, 4일은 정말 너무 낙담해서, 다시 그 긴 항암과 다시 치료가 시작된다는 그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런 고민의 끝이 보면, 선택지가 2개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이런 절망 속에서 계속 그냥 우울해하면서 치료할래?’ 아니면 ‘다시 일어나서 어떻게든 살아갈래?’ 사람이 지금 선택지가 있는데, 뭐 죽음을 선택하기 쉽지 않잖아요, 치료라는 방법이 일단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살아보자’라는 그 선택지를 제가 선택을 했던 것 같고, 그냥 마라톤을 뛰는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황승택) 저의 혈액암 같은 경우에는 고형암이 아니라서, 고형용의 항암 치료를 두 사이클 내지 세 사이클을 돌리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몸에 거의 핵폭탄을 투여해서 저희 모든 면역세포를 없앤 다음에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는 그 과정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게 사이클이 정말 길고 하나의 어떤 마라톤 같아요. 저는 이제 42.195를 뛰었는데 재발했다는 것은 다시 이쪽으로 온 거죠, 다시 출발점으로. 그래서 ‘다시 뛰자’, ‘어떻게든 살아보자’ 그 두 가지 마음으로 첫 번째 재발의 어떤 심리적인 공황이나 그런 것들을 극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오진승) 사실 암 환자분들의 이런 정신적인 고통을 정신과적으로는 ‘디스트레스’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암 진단받았을 때 어떤 정신적인 불안, 공포, 두려움, 재발에 대한 걱정 이런 것들을 통칭해서 ‘디스트레스’라는 말이 아예 있을 정도로 사실 암이라는 건 진짜 그런 심리적으로 좀 많이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질환인 것 같은데, 우창윤 선생님도 혈액종양내과에 있으면서도 좀 환자분들 힘들어하시는 거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
우창윤) 그렇죠, 많이 보고… 병이라는 게 의사들은 또 굉장히 희망적인 면들도 생각을 하잖아요.
우창윤) 그래서 치료를 이끌고 나가고 싶은데 환자분이 정말 심리적으로 무너져 내려서, 그걸 끌고 나가는 게 좀 힘들어서 환자분께 조심스럽게 정신과 진료라든지 이런 다른 ‘저희가 정서적인 도움도 줄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도 최근에는 더 많이 하고 있고요. 그런 좀 포괄적인 이런 지지 치료를 함께해 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오진승) 저는 황승택 기자님 그때, 이낙준 선생님 세바시 때도 뵙고 이제 오늘도 뵙고 하는데, 또 두 딸의 아버님이기도 하고 아내분의 남편이기도 하시고 이런 힘들었던 그런 감정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드는데…
황승택) 제가 성격은 솔직한 편인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남들에게 이렇게, 막 얘기하는 게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힘든 부분들을 얘기했더라면 어떤 울고 나면 감정이 이렇게 순화되는 것처럼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때는 그냥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많이 있던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는 왠지 어떤 ‘내가 힘들다’, ‘내가 아프다’라는 것을 얘기하면 그 사람이 어떤 ‘강인하지 못하다’ 그리고 ‘나약한 존재가 아닌가’라는 어떤 그런 시선이 많이 있었다는 걸 제가 그냥 사회생활을 해 가면서 그냥 느꼈던 것 같아요.
오진승) 당시 일기에는 어떤 얘기를 쓰셨어요? 다른 분들한테는 좀 말씀을 못 하시고 티를 못 내셨던 그 내용이 어떤 내용이셨어요?
황승택) 그 일기 내용 속에서 ‘지금의 이 순간만은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라는 그런 감정도 썼었고, 또 하나는 약간의 죽음을 준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쓰면서, 아이들이 제 일기장을 볼 걸 생각하면서 ‘아빠는 오늘 이렇게 이렇게 했어’, ‘지금 이런이런 생각을 한단다’라는 그런 글도 조금 남겼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왜냐하면 그게 허황된 일이 아니었거든요.
황승택) 저는 치료 방향에 있어서 죽음이라는 게 확률상으로도 정말 나올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전작을 쓰면서 이게 저에게 마음의 위안이 가장 됐던 건 뭐냐 하면, 혹시 제가 잘못되더라도 두 딸들에게 ‘아빠는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사람이었어’라는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어떤 큰 위안이 됐었던 것 같아요.
오진승) 아까 이제 말씀하셨던 게 우리 사회는 힘들다, 아프다, 괴롭다는 얘기를 하기가 좀 어렵다… 그게 뭔가 나약한 사람같이 보이고 그래서 그런 걸 많이 억누르셨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지금은 좀 달라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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