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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조상을 러시아에서 찾다?! ‘악마의 동굴’로부터 시작된 연구

  • 지식

깊은 산속을 살피며 유물을 찾아다니던 소련의 고고학팀은 지난 1973년 러시아 극동 해안 지역에서 특이한 동굴을 하나 발견합니다. 유레카를 외친 고고학자는 급히 동굴을 탐험하기 시작했는데, 그 안에서 무려 7구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7구의 시신 중 6구에 대한 DNA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은 기원전 5700년대의 시신으로 밝혀졌는데요. 그로부터 50년이 지나 이들로부터 한국인에 대한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졌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인류의 출현과 진화에 대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서식했던 유인원 계통 중 몸과 머리가 작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바뀐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일어나 두 발로 걷게 되었고 자연히 앞발, 즉 두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도구와 무기를 만들어 쓰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들은 점차 활동 반경을 넓히며 아프리카 바깥 대륙으로 이동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송곳니도 퇴화하고 두뇌 크기도 증가했습니다. 이들은 사고력이 깊어질수록 더 좋은 도구를 제작했고 사냥했죠. 반대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다른 대륙으로 이동했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정설로 여겨집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동에 이동을 거듭해 동아시아까지 진출했다가 정착했는데요.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까지 진출해 정착한 이들은 오히려 그들의 이동 방향의 반대로 인류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한반도에는 70만 년 전의 유물이 출토된 만큼 그 이전부터 조상이 거주했을 것이라 추측하는데요.

집단생활로부터 시작된 청동기 문명이 한반도를 거쳐 전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다는 수많은 증거가 존재합니다. 일례로, 1800년대 핀란드의 유명 학자 아스페링은 ‘청동기 문명은 시베리아로부터 시작해 훈족계 이주민에 의해 우랄 지방으로 전파되었고 이후 북유럽의 핀란드까지 전파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1800년대 덴마크 학자 와르셰 역시 같은 주장을 폈습니다.

어느 국가든 그 국가에 남아 있는 유물의 존재로 그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충북 단양과 경기도 연천군에서 발견된 주먹 도끼 덕분에 한반도에는 70만 년 전부터 인류가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수없이 많은 유물이 침략에 의해 한반도에서 탈취되고 빼앗겼지만, 그 어떤 침략군도 가져가지 못한 유물이 있습니다. 바로 ‘고인돌‘인데요. 고인돌이라는 명칭은 큰 돌을 받친 ‘괸돌’ 또는 ‘고임돌’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하고 ‘고여 있는 돌’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Table Stone’이라고 부르며 켈트어로는 탁자라는 뜻의 ‘Dol’과 돌이라는 뜻의 ‘Men’을 합해 ‘돌멘’이라고 부릅니다.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은 전 세계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기념물인데요. 아시아와 유럽, 지중해, 인도, 동아시아 등지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약 6, 7만여 개의 고인돌이 남아 있는데, 그중 3만 개 이상이 한반도 주변에 있습니다. 전 세계 고인돌 중 진짜 고인돌, 즉 단순히 큰 돌이 아니라 돌이 돌을 받친 진짜 고인돌은 수천 개에 불과한데요.

한국에 남아 있는 고인돌은 진짜 고인돌의 형태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전북 고창에 1,550기 전남 화순에 287기 강화도에 160기가 분포하고 있으며, 전북 고창군 운곡리 그 무게가 세계 최대인 297톤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지난 2000년 12월 유네스코는 전북 고창 / 전남 화순 / 인천 강화 지역의 고인돌을 전부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했습니다.

고인돌이라는 기념물이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조상들의 집단 거주 생활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인돌은 보통 기원전 20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졌는데요. 그 옛날 최대 수백 톤에 달하는 고인돌을 어떻게 옮겼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단순히 인간의 노동력만을 이용한다면, 한 사람이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무게가 최대 120kg에 불과하기 때문에 통나무와 밧줄로 30톤의 돌을 들어 올리기 위해 약 200명이 필요합니다.

만약 5인 가족을 기준으로 한 가족에 두 명이 고인돌 제작에 동원됐다고 한다면 약 30톤의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인원은 최소 천 명으로 추정됩니다.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를 다르게 보면 한반도에 적어도 수천 명의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죠.

그렇다면 한국인의 조상은 누구일까요? 보통 한민족의 뿌리를 두고 일부 인류학자들은 알타이산맥에서 출발해 몽골과 만주 벌판을 지나 한반도에 진출한 북방 민족이라고 추정하지만, 이 이론은 단지 언어, 풍습, 생김새만으로 추정한 것입니다.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 근거였는데, 과학적 근거는 결여됐었죠. 그런데 최근 이 비밀이 풀렸습니다. 인트로에서 잠시 설명한 1973년에 발견된 악마의 동굴이 그 비밀을 풀어 주었죠. 왜 이 동굴에 ‘악마의 문(Devil’s Gate Cave)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동굴에서 7명의 유골이 발견됐습니다.

1973년 당시 그중 6개 유골에 대한 탄소 동위원소 분석으로 그들이 약 8000년 전의 인류라는 점을 확인했는데요. 한국의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연구팀이 이들의 게놈을 분석해 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은 수천 년 전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결합해 탄생했다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울산과학기술원 게놈 연구소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 아일랜드 더블린대 / 더블린 트리니티대 / 러시아 국립과학원 인류학연구소 / 독일 포츠담대 국제 공동 연구진은 고고학자, 생물학자, 게놈학자를 모아 조직을 구성해 악마의 동굴에서 발견된 20대 여성과 40대 여성의 머리뼈에서 게놈을 추출한 후 이를 분석했습니다. 유골은 1973년에 발견됐지만 게놈을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분석 결과 이 여성들에게서 한국인의 조상을 특정할 수 있는 몇몇 특성을 추출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은 유전자, 그리고 마른 귓밥 유전자 등이죠. 이 악마의 동굴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위쪽의 프리모레스키 크라이 지역에서 발견됐는데, 이 지역은 한국 역사에서 고구려, 동부여, 옥저가 있던 지역입니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았던 것은 약 8000년 전 신석기시대 고대 게놈을 분석해 현대 한국인의 조상과 이동 유전자 구성에 대해 다룬 세계 최초의 정밀한 연구였기 때문인데요.

연구에 참여했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안드레아 마니카’는 “유전적으로 동아시아 북부 지역의 인구는 약 800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8000년 동안 외부인 유입 없이 비슷한 특징을 가진 이들끼리 함께 지내왔으며, 농업과 같은 혁명적인 신기술을 가진 그룹이 기존 그룹을 정복하거나 제거하는 대신에 기술을 전파하여 지역 특성에 맞는 생활양식을 유지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뿐만 아니라 유골에서 발견된 ‘미토콘드리아‘라는 게놈의 종류도 한국인과 거의 흡사했습니다.

이 게놈은 어머니로부터만 물려받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가 같다는 것은 모계가 같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악마의 동굴 속 유골은 한국인의 조상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죠. 연구팀은 이 게놈을 현대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50개 인족과 비교했고, 놀라운 결과가 도출됐습니다. 악마의 동굴 속 조상과 현재 베트남 및 대만에 고립된 원주민 유전체를 융합했을 때 한국인과 가장 흡사한 유전체가 발현된 것이죠. 이는 한국인의 탄생이 수천 년 간 생존 방식이 다른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융합한 결과라는 것이 게놈 변이 정보로 증명된 겁니다.

그러나 현대 한국인의 실제 유전자 구성은 남방계에 가까운데요. 이는 수렵·채집이나 유목 생활을 하던 북방계 민족보다는 한곳에 정착해 집단생활과 농업 활동을 하는 남방계 민족의 특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남방계 민족이 북방계 민족보다 보통 더 많은 자식을 낳고 빠르게 확장했기 때문이죠.

실제로 수렵과 유목을 주로 하던 옛 극동 지방 부족의 현재 인구는 수십만 명 정도이기도 하죠. 이번 연구는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최초의 고대 게놈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불러 모았고,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도출한 이 결과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됐습니다.

아마 이번 연구 결과를 두고 한국인이 단일 민족이 아니고 혼혈이라는 뜻이냐면서 거부감을 드러내는 분도 계실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단일 민족’, ‘순수 혈통’이라는 자부심이 깨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그리 기분 나쁠 일은 아닙니다. 어차피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동아시아로 건너왔으며, 국어사전 또한 한국인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 또는 ‘한민족 통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이미 고려시대의 전체 국민의 8.4%가 외국인이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게다가 서기 42년 김수로 왕은 인도 출신의 허황후와 역사상 최초의 국제결혼을 했는데, 이들의 후예가 바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김해 김씨 기도 하죠. 전 세계적으로 김해 김씨(김해 허씨, 인천 이씨)는 약 800만 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스웨덴 전체 인구수(750만 명)보다 많은 겁니다.

오늘 소개한 연구를 포함, 울산과학기술원 게놈 연구소 소장인 박종화 교수는 오랫동안 한국인의 뿌리를 추적해 온 장본인입니다. 그는 “한국인의 조상은 북방계 시베리아인과 남방계 베트남인의 혼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도 한국인은 단일 민족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다른 민족보다 내부 동일성이 높다“라고 말합니다. 최초의 북방계와 남방계의 융합 이후 약 8000년 뒤부터는 외부인의 유입이 없었다는 것을 강조했죠.

전 세계 그 어떤 국가도 단일 민족일 수 없고, 단일 민족이나 순수 혈통을 강조하는 민족주의는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활용된 통치 수단입니다. 한국인 역시 신석기시대에 이주한 유럽계 인족이 서로 다른 인족 간의 결합을 통해 더 훌륭한 방식으로 진화했고, 그게 지금의 한국인이 된 것이니까요.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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