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국가의 국민이 될 수도 있고, 다른 국가에 평생 거주할 수도 있고, 금전적으로 감당할 수만 있다면 평생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이기는 하지만 국가라는 개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나라에 거주하는 거주자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국가의 이름이 바뀌지는 않고 그 국가의 존재가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보셨나요? 우리가 나고 자란 한국에 ‘파스타의 날’이 제정된다든지, ‘스시의 날’이 제정된다든지, ‘바게트의 날’이 제정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한 국회의원이 좋은 의도로 ‘파스타의 날’을 제정하자고 침이 튀기게 주장한다면 일각에서는 ‘이탈리아한테 돈 먹었냐?’와 같은 비판을 쏟아낼 것이고, 언론에서는 연일 집중포화를 쏟아낼 것이 뻔한 비디오처럼 펼쳐지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당장 생각을 고쳐먹을 것입니다.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여기 아르헨티나의 한 국회의원은 한국의 전통 음식 김치를 위해 이 모든 비난을 감수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47명의 국회의원 앞에서 11분 동안 김치 이야기만 하다 가까스로 그녀의 의견을 관철시켰는데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존의 몸부림을 치던 지난 10월, 느닷없이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는 김치라는 단어가 인터넷을 급속도로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상원에서 한 의원이 코로나 방역 지원금이라든지 코로나 손실 보상금과 같은 피해 구제를 위한 연설이 아니라 오로지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제정해야 한다”면서 11분간 주구장창 김치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놨기 때문입니다. 참 의아하게도 당시 47명의 모든 아르헨티나 상원의원은 홀린 듯이 이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이제 하원 표결과 대통령 서명 등을 거치면 아르헨티나에서는 내년 11월 22일이 김치를 기념하는 날이 될 예정인데요.
이 제정안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인물은 ‘마그달레나 솔라리 킨타나’ 상원의원입니다. 아르헨티나 상원 유튜브는 지난 10월 7일 그녀가 11분간 오로지 김치로 채운 특별 세션을 공개했는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의원들 앞에서 발언하는 그녀는 침착했습니다.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는 제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르헨티나 언론이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11분간 ‘왜 김치의 날을 제정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김치, 즉 김장 담그기 문화는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인류 무형문화유산입니다. 지난 2013년 12월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 보호 정보관 위원회’에서는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했죠.
이날, 그녀는 “김치는 한국 문화와 국가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는 ‘보물’과도 같은 음식이다. 내년 2022년은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수교 60주년을 맞이하는데 ‘김치의 날’을 제정하는 것은 한국 이민자들의 문화적, 사회적 기여를 기리고 한국과의 우호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집 냉장고에는 항상 3kg가량의 김치를 넣어두고 매일같이 먹는다”고 밝힌 그녀는 이후 김치의 효능, 김치 담그는 법, 김장 문화를 설명하면서 시간을 할애했죠.
그런데 그녀의 발언으로 매년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제정하는 스타트를 끊었지만, 그녀는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언급했듯이 당시는 전 세계가 코로나를 종식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붓는 중이었는데, “가장 시급한 문제를 제쳐두고 굳이 ‘한국의 전통음식’을 기리는 날에 꼭 제정했어야 했느냐는 것”이었죠 아르헨티나 언론 ‘클라린’은 “아르헨티나에 사회,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 1년 반 만에 열린 상원 대면 회의에서 한상원 의원이 11분간 한국 요리인 김치 ‘강의’를 했다”고 꼬집었고, 한 네티즌은 “아르헨티나 빈곤율이 40%를 웃도는데 김치 논의에 시간을 할애한 것이 적절하냐”고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김치는 좋아하지만, 아르헨티나 인구 절반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고 실업률은 11%인 상황에서 상원이 ‘김치의 날’ 법안을 가결한 게 말이 되냐”는 등 상당한 비판이 쏟아졌는데요. 실제로 아르헨티나 통계청은 2020년 기준 아르헨티나 빈곤율을 42%라고 지적했는데, 이는 2019년 하반기와 비교해 6.5% 포인트 늘어난 수치입니다. 이런 수치는 유엔 산하 중남미-카리브 경제 위원회가 집계한 2020년 하반기 기준 중남미 빈곤율 33.7%보다도 월등히 높죠. 특히, 14세 이하 어린이의 빈곤율이 57.7%에 이르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물론 한국이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채택한 것과 발맞춰 아르헨티나에서도 이러한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아르헨티나 언론과 네티즌들의 비판도 어느 정도 일리 있다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최근 중국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문화공정’은 익히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2002년, 중국 공산당의 주도로 시작된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 즉 동북공정은 ‘동북 변강 지역의 역사 및 현상에 관한 연구 사업’입니다. 동북쪽 지역에 대한 역사와 현실을 심도 있게 조사하고 이를 통해 소수 민족을 하나로 통합 시켜 궁극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견고히 하기 위해 시작된 이 연구는 ‘역사 왜곡’의 시작점입니다.
2007년 5월에 끝난 연구지만 이 당시 제기된 수많은 억지 주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구체화 작업이 현재까지도 진행되는 겁니다. 중국 드라마에 버젓이 한복을 등장시키고, 자신들이 “김치 ISO 표준을 제정했다”는 희한한 주장을 하거나 유명 유튜버가 김치를 만들어 먹는 영상을 만들면서 그 태그 ‘중국 음식’을 넣는 등 중국의 계획된 만행은 분노만 불러올 뿐입니다. 이런 만행이 치밀하게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마당에 최근 ‘추자현’ 배우가 실수로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현해 영상을 게재하면서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만큼 그녀는 지난 22일 중국판 인스타그램으로 불리는 ‘샤오홍슈’에 라면과 김치를 함께 먹는 짧은 영상을 업로드했는데요.
이 영상에서 자막에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치밀한 문화 공정에 분노한 팬들이 이 부분을 지적하면서, 결국 그녀는 영상을 내리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중국이기 때문입니다. 영어도 스페인어도 아니고 중국어로 실수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겁니다. 그녀는 평소 “한국과 중국 활동을 병행하며 이러한 부분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두고 주의를 해 왔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고유 음식의 이름을 바로 알고 사용하며 올바른 표현이 더욱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남겼는데요.
논란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한국과 중국 양국에서 활동하는 만큼 좀 더 세세하게 챙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추자현 배우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중국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KIMCHI’라는 단어를 쓸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보통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의 이름을 명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명명하면 이를 따르기 마련인데 김치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지난 2021년 쿠키뉴스는 중국 내에서 ‘파오차이’라고 표기하고 판매되는 김치 제품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 대상그룹, 풀무원, CJ제일제당 등이 중국에서 ‘파오차이’라고 이름 붙인 김치를 판매하고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대상그룹의 경우 ‘청정원’과 ‘종갓집’이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쓰고 있었고, 풀무원의 중국법인은 ‘칼로 자른 파오차이’라고 이름 붙여진 김치를, CJ제일제당은 ‘파오차이 찌개’와 ‘한국식 파오차의 군만두’를 판매하고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이러한 표기가 기업들이 논란을 무시했기 때문일까요? 사실이 아닙니다. 중국은 중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식품의 규격을 국가 표준으로 관리합니다. 여기에 표기된 용어와 위생 요건을 따르지 않을 경우 중국 내에서 판매가 금지되죠. 김치의 경우, 김치라고 표기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염장식 야채 식품은 전부 ‘파오차이’라고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원래 김치는 식품 규격이 따로 존재하고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 기준을 따르지만, 중국은 유독 자국의 기준을 따르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파오차이’로 표기되는 염장 채소 중에서 ‘김치’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다 보니 김치는 ‘김치=파오차이’라는 공식이 생긴 겁니다. 인기가 너무 높은 것이 오히려 장애물이 된 것인데요.
이에 농림축산 식품부는 지난 2013년, 김치를 ‘신치’라고 표기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이 용어로는 ‘동치미’, ‘백김치’ 등 다양한 김치를 포괄할 수 없는 한계가 있어 기업들이 사용을 꺼리고 있죠. 이 문제는 기업과 개인이 아닌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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