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고 정신분석가인 이인수라고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고 항상 타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맞추는 사람들의 특징이나 심리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타인에게 잘 맞추는 사람들을 우리가 타인의 욕구에 민감한 분 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민감하게 그걸 캐치해서 그걸 잘 맞춰줄 힘이 있는 분들이죠. 그런데 항상 맞추는 노력은 문제를 담고 있어요. 정신분석에서는 그러한 타인의 욕구에 민감하게 맞추는 성격 특성을 ‘가짜 자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우리 정신분석가인 도널드 위니컷이 우리에게는 ‘진짜 자기’와 ‘가짜 자기’가 있다고 했는데요.
진짜 자기는 정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타고난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한다면 가짜 자기는 타인이 원하는 모습, 타인이 원하는 기대에 맞추는 그러한 모습이라고 하죠. 착하다는 것은 상대방이 정의하는 거거든요. 왜냐하면 나의 욕구에 맞춰주고 있기 때문이에요.
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타인의 욕구에 대단히 민감하고 그것을 잘 맞춰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착한 사람의 분류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기쁨에서 우러나와서 타인에게 그것을 맞추는 분이 있습니다. 다른 분은 두려움 때문에 타인에게 맞추는 분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자면 버림받을까 봐 두려운 분이 있어요. 그런 분은 타인이 자기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것이 너무나 두렵거든요. 그래서 항상 상대방의 욕구에 맞추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려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내가 계속해서 나의 욕구를 희생하고 계속해서 내가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있고, 또 내가 거절을 못하고 있다면 자신의 마음속에서 어떤 불안이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몇 가지 대표적인 두려움을 한번 떠올려 보자면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선 가장 큰 것 같아요. 어떤 관계에서 내가 거절당하고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서 자기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거든요.
이런 분의 특징이 있습니다. 혼자 있기가 대단히 어려워요. 혼자 있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기를 버리는 상황, 혼자 남겨지는 상황은 견딜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인 거죠. 왜냐하면 혼자 있다는 것은 내가 나의 감정과 함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내가 내 감정을 너무나 불편해 너무나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혼자 있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상황인 거죠.
마치 내가 맹수와 함께 있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래서 그 맹수를 같이 상대할 의지할 대상이 옆에 있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에 이 감정을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나에게 도움을 주고 또 때로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정보로만 사용할 수 있다면 혼자 있는 것도 그렇게 괴로운 것이 아니거든요.
두 번째 유형의 두려움, 불안은 내가 죄를 짓는 것 같은 두려움이 있어요. 나의 욕구를 주장하고 내가 나의 욕구를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죄를 짓는 것이므로 나의 욕구를 희생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분은 타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하고 자기의 욕구는 희생하게 되죠.
왜냐하면 내 욕구를 추구했다가는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무의식적인 죄책감이 있는 분은 자기가 영광을 얻거나 좋은 것을 얻을 때마다 죄책감 너무 괴롭기 때문에 스스로 그 기회를 포기해 버리고 심지어 자기를 해하는 선택을 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서 부모님과의 관계가 많이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성장하면서 부모님이 나에게 ‘네가 나한테 의존하는 것은 죄야’라고 정의를 내린다거나, ‘부모는 이렇게 힘든데 네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죄야’라고 한다거나 아니면 실제로 자신의 잘못 때문에 주변 가족들이 큰 피해를 보거나 고통을 당했을 때 이러한 것이 마음속에 저장되는 거죠.
그러면서 내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내 만족을 추구하는 것은 또는 의존하는 것은 죄라고 마음속에 일종의 법률이 내면화되는 거죠. 이걸 해결하려면 감정에 대한 두려움, 감정에 대한 공포감은 혼자서 해결하기가 어려우실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성찰하거나 심리적인 치료를 통해서 자신의 감정에 접근하는 노력이 매우 필요해요.
감정을 두려운 적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정보고 도움이 되는 정보라고 하나씩 깨우쳐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하기가 어렵고 두렵기 때문에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정을 이해받는 것, 이건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되고요.
또 하나 도움이 되는 방식은 감정 일기예요. 자기감정을 한번 적어 보는 거예요. 컴퓨터를 놓고 감정을 한번 적어보신다거나 그 감정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들을 한번 기록해 보는 거죠. 우리가 이렇게 감정을 기록하면 그 순간 감정은 좀 더 객관적인 것으로 드러나게 되고 내가 그것을 관찰할 기회가 생깁니다.
우선 저는 감정을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이 중요할 것 같아요. 상대방이 신뢰할 만한 사람인가를 먼저 보셔야 합니다. 상대방이 내 진심을 드러내도 잘 공감해 주고 누군가에게 함부로 노출하지 않는 신뢰로운 사람인가를 먼저 보셔야 하고요. 만약에 신뢰로운 분이라고 한다면 용기 내서 내가 지금 경험하는 이야기, 마음의 이야기를 어떤 것이든 털어놓는 것이 가능해요.
그렇지만 그 신뢰로운 존재라는 것을 느끼기까지는 사실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우리가 아무나한테나 감정을 노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먼저 충분히 알고 그 사람이 얼마나 신뢰로운가 그것을 확인하시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말을 표현하실 때는 가장 좋은 소통은 ‘나의 감정이 지금 어때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것은 아주 중요하고 아주 직접적인 좋은 소통이라고 할 수 있죠. 신뢰로운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기준은 상대방의 감정과 상대방의 생각을 함부로 바꾸려는 분들은 신뢰롭지 않아요. 또는 상대방의 가치관을 함부로 평가하고 바꾸려는 분도 신뢰로운 분은 아닙니다.
나의 감정과 가치관과 판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는, 그것을 함부로 수정하거나 고치려고 시도하지 않는 분이 신뢰롭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정신 분석에서는 ‘초자아’라고 하는 개념이 있어요.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나인데, 그것은 나를 감시하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경험 때문에 이 초자아가 너무 가혹해요. 가혹한 초자아는 특징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판단해요. 착하든지 나쁘든지, 완벽하든지 무가치하든지, 좋든지 싫든지, 그 중간 지역이 없는 아주 엄격한 판단 기준이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마치 마음속에 자꾸 죄책감이 들 때 혹시 그 죄책감 안에 있는 초자아가 나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닌가, 내가 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 옳고 그름으로만 재판하는 목소리가 아닌가를 살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이분법적인 판단으로 나를 공격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있다면 그 목소리에 대해서 우리는 저항할 필요가 있어요.
과연 이 비판이, 나에 대한 비난이, 정당하고 합리적인가, 그리고 현실적인가를 한번 스스로 떠올려 볼 수 있어요. 만약에 그 비판이 너무 가혹하다면, 내가 한 행위에 비해서 너무 지나친 비난을 주고 있다면, 그 목소리에 우리는 저항해서 싸워야 하는 거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초자아의 목소리는 늘 내가 듣고 있는 목소리이기 때문에 이질적이지 않아요. 이건 너무 자연스러워요. 그래서 이게 이상한 목소리라고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는 이것이 뭔가 지나치다고 알아채는 거예요. 내가 느끼는 죄책감, 수치감의 크기가 이 상황에 비해서 지나치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아까 말한 대로 너무나 이분법적이거나 완벽주의적으로 나를 판단하고 있다면 그것을 알아채야 하는데 스스로 그것이 잘 안 돼요. 스스로는 그냥 당연히 내가 했어야 하고, 당연히 내가 느껴야 할 죄책감이라고 느껴지죠.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주변의 피드백이에요.
주변에 신뢰하고 내가 의지하는 분이 이건 좀 지나치다고 말해 줄 때 우리가 귀를 기울여 봐야 해요. 저는 그러한 분들을 건강한 거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출 거울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어떤 분은 그 거울이 왜곡돼 있어요. 내 자신을 내가 가지고 있는 거울에 비췄을 때 가혹한 초자아는 너무나 무가치한 죄인으로 비춰주는 거죠.
그럴 때 우리는 내 마음 밖에 있는, 외부에 있는 건강한 거울을 찾아야 해요. 그 건강한 거울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죠. 현실적이고 왜곡되지 않은 나의 장점도 비춰주고, 나의 한계점도 비춰주는, 건강한 거울이 필요합니다.
요즘 가스라이팅이라는 표현도 많이 쓰고 나를 함부로 대하고 조종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은 나의 경계를 얼마나 존중해 주는가입니다. 어떤 분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고 함부로 망가뜨립니다. 예를 들면 나의 감정도 내 경계 안에 있는 것이고, 나의 가치관도 내 경계 안에 있고, 나의 판단도 내 경계 안에 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분은 내 경계 안에 들어와서 그것을 바꾸려고 해요.
그것이 침범이죠. 그리고 바꾸려는 시도 가운데서 흔히 사용되는 것이 죄책감이나 수치감 또는 불안을 유발해요. 그래서 상대방에게 자기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고 그래서 조종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나의 경계를 상대방이 얼마나 존중하는가, 이것을 상대방이 어떤 분인지를 구분하는 데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첫 번째는 내 감정을 잘못된 감정이라고 말하는 분들이에요. 내 감정의 경계를 침범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들어와서 그것을 해결해 주려고 할 때, 그것도 경계를 침범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능력과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것을 사용할 기회를 빼앗아 가는 거예요. 그리고 상대방에게 더 의존적이게 만드는 거거든요.
만약에 누군가가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데도 지나친 호의를 베푼다면 그것도 경계의 침범이에요. 또 하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강조해서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무조건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분도 경계의 침범이에요.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판단력과 내 사고력을 동원할 수 있는 나의 경계를 침범해서 사용할 기회를 빼앗아 가고 있어요. 그것도 경계의 침범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을이 되는 삶을 살지 않고 건강한 경계를 만드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내 삶에 대한 나의 책임감을 느끼고 내가 노력해 가는 게 너무 중요합니다. 이것은 일생에 걸친 과제예요. 태어나서부터 경계를 만들고 경계를 세워가고 나의 영역을 만들어 가는 그 과정이 필요해요.
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건 아니거든요. 제가 생각할 때 첫 번째는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 나의 욕구와 내 생각을 명료하게 하고, 두 번째는 그것을 구체화시켜가고 그것을 발전시켜 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첫 번째는 건강한 거울들을 많이 만나셨으면 좋겠어요. 나를 함부로 왜곡하지 않고 나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건강한 거울을 찾아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고 나의 장점과 나의 가능성을 확장해 가는 거죠. 그래서 만약에 자존감에 상처받고 의기소침해지고 또 내 주장을 할 수 없는 을의 심리에 빠져있을 때는 빨리 건강한 거울을 만나는 것이 응급처치가 되겠습니다.
상처받고 자존감이 낮아져 있을 때는 사람들을 피하게 되죠. 그건 이해할 수 있는데, 회복을 위해서는 좀 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나의 장점과 나의 단점을 모두 수용하고, 그러면서도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건강한 거울을 다시 만날 때 나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가능해요.
건강한 거울을 찾을 수 없을 때는 나 자신의 내면을 누군가와 함께 탐색해 가는 치료나 분석의 과정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을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주 실제적인 방법은 경계 세우기이고, 경계 세우기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절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을 분명히 하시고 누군가가 내가 원치 않는 것을 요구할 때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도 거절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꾸 수용하다 보면 그 호의를 받음으로써 자꾸 을이 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거절하는 노력, 내 감정과 주장을 명확히 표현하는 노력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을의 삶을 선택할 때 우리는 마치 내 자신이 카멜레온같이 느껴져요. 내가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맞추고 있거든요. 이렇게 나의 정체성을 갖지 못할 때 삶은 공허하고 외로워집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줘서 인기가 많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나의 진짜 모습을 본 게 아니에요. 내가 그들을 위해서 노력한 모습을 본 거거든요. 그래서 삶은 외롭고 공허한 채로 흘러가게 되죠. 이건 너무나 큰 희생이에요. 저는 여러분들께서 용기를 내서 을의 삶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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