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처럼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사람도 할 수 있다,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희망이 있다는 걸 한번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희 어머니랑 같이 일하는데요. 어머니가 직장 생활을 한 20년 정도 하시다가 회사가 문을 닫아서 같이 하게 됐어요. 어머니가 오신 지 한 7~8년 된 것 같아요.
저희가 족발만 했을 때 지역에서 꽤 유명하고 가장 많이 파는 족발집이었는데, 족발만 인생 걸고 끝까지 하고 싶을 만큼 자부심이 엄청났어요. 이걸로 끝을 내겠다, 이걸로 최고의 장인이 되겠다는 마음이 컸었는데, 그 마음도 매출이 못 이기더라고요. 7~8,000만 원 나오던 매출이 점점 줄더니 한 4~5,000만 원까지 내려가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정말 하기 싫었는데, 한 매장에서 상호 2개로 족발이랑 냉면을 팔고 있어요.
어제 족발 매출이 약 170만 원, 냉면 매출은 약 100만 원, 빙수 매출, 쭈꾸미 매출까지 총 380만 원 정도 판 것 같습니다. 이제 족발의 자부심은 없어요. 족발은 족발 써는 사람이 그만두면 사장이 와야 하고, 또 사장이 아프면 문을 닫아야 하는 기술적인 부분이 큰데요. 이제 다른 일들은 그런 걸 배제한 일들이에요. 저희는 요즘에는 조리한다고 안 하고요. 조립할 수 있는, 아무나 손만 달리면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고 있어요. 그래서 그중에 쉬운 게 2개가 보여서 그것도 하고 있어요.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웠어요. 중학교 때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셔서… 그때부터 집에 계셨고, 저희 어머니 혼자 가정을 좀 이끌어 주셨어요. 그렇게 집안 형편이 어렵다 보니까 당연히 대학 갈 형편은 안 될 것 같고, 어떻게 하면 우리 집의 패턴이 바뀔지 고민했어요. 그때부터 무언가를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20대 초반, 22살 때 장사를 시작했어요. 피자집으로 먼저 시작했었죠.
제가 22살 때, 첫 장사할 때 손님들이 저희한테 남겨 주신 메모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요. 이게 너무 고마워서 못 버리겠더라고요. 이거는 저희의 평생 가보죠. 피자집 할 때 돈이 너무 없이 시작하다 보니까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막상 오븐기 사러 가보니까 한 대에 1,000만 원… ‘링컨 미들비 마샬’, 아직도 안 잊어버려요. 도저히 저한테 꿈도 못 꾸는 그 기계들이죠. 보증금 좀 깎아달라고 하고…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오픈은 했죠.
오픈하고 보니까 피자 박스가 없는 거예요. 한 번에 몇천 장을 맞춰야 한다고 하니까 돈이 꽤 많이 드는 거예요. 그게 저한테는 되게 충격이었어요.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처럼 피자 팬 채로 갖다 준 거죠. 팬 채로 배달했다가 수거하니까 손님들께서 고맙다고, 따뜻하게 피자 잘 먹었다고… 이렇게 남겨 주신 메모들이에요. 평생 제 보물 같은 거죠.
지금 생각해 보니까 원래는 망했어야 정상이었던 거예요. 돈도 없고 경험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런데 그 팬으로 나간 게 오히려 먹힌 거예요. 남들은 1,000만 원짜리 오븐기 쓸 때 저희는 20만 원짜리 중고를 썼는데, 너무 뜨겁게 갖다주다 보니까… 피자는 뜨거우면 맛있는 거예요.
저희 매장이 시장 안쪽에 있는데, 저희 음식을 배우시겠다고 파주, 용인, 원주에서 아우디를 끌고 오시고 하세요. 지금은 꿈이 현실이 되었죠.
우리 애들이 6살, 9살인데 저랑 바닷가 가는 걸 엄청 좋아해요. 맨날 바다 가자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걸 좀 같이 못 가주는 게 아쉽고 미안하고 그렇죠.
저희가 빙수도 파는데, 냉면 하다 보니까 너무 괜찮아서 요즘에는 빙수도 같이 하고 있어요. 매출은 지금 한 7~8,000만 원 정도 나오고 있어요. 냉면이나 빙수는 여름 아이템인데, 한 6월, 7월, 8월 정도 되면 매출이 아마 다 해서 1억은 좀 넘을 것 같아요. 지금 순수익은 1,500~2,000만 원 정도 선인 것 같아요.
제가 시급 2,000원 받고 배달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감회가 많이 새롭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어요. 처음에 배달 일을 하고 했을 때는 엄청 좀 무시당하는 기분도 있고 서러웠는데, 지금은 대표님이라고 불러주시니까 감개무량하죠.
피자집 하던 건 22살 때니까 젊은 나이에 못 번 건 아니었는데요. 친구들은 여자친구도 사귀고 미팅도 하고 나이트도 가고 놀러도 다니고… 재미있게 사는 것 같은데, 저만 어린 나이에 혼자 왜 이거를 하고 있는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뒀죠. 그러고 나서 그때 친구들보다 더 많이 재미있게 놀았죠. 친구들은 당시에 돈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름 보상받기는 받은 거죠.
그런데 그렇게 또 놀다 보니까 지겹더라고요. 지긋지긋한 옛날이 다시 그립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좀 더 단가가 센 족발을 해 보자고 마음먹고 찾아보니까 대구에서 족발을 싸게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화하고 대구에 직접 내려가서 일주일 동안 여관을 잡고 족발을 배웠어요. 배워 와서 일단은 인천으로 갔어요. 가장 장사가 잘되는 집이 어딘지 골라서 그 가게 중의 한 곳을 시켜봤죠. 그랬더니 대구에서 배운 족발을 이 동네에서 했을 때, 그 집을 못 이기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 날 다시 그 집으로 찾아갔죠. 내가 이 동네에서 장사 안 할 테니까 좀 가르쳐 달라고요. 무보수로 일을 좀 해 드릴 테니까 가르쳐 달라고 했었는데, 단호하게 돈을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없는 돈을 또 준비했는데… 배우는 데만 두 번 돈을 쓴 거죠. 대구에서 한 번, 인천으로 와서 한 번… 그렇게 돼서 이 자리에서 지금 15년째 하고 있죠. 제 청춘이 다 여기 있어요.
그래서 그때 대구에서 배우고, 또 저희 지역에서 배우고… 두 번 배우면서 그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자리가 점점 잡혔으니까, 자부심이 엄청났죠. 이 족발에 대한 자부심이요. 근데 장인정신이랑 장사라는 건 좀 별개인 것 같아요. 그전에는 제가 120%의 정성을 쏟아서 손님들께 200%의 만족을 드렸다면, 지금은 100%의 정성을 쏟아서 150%의 만족을 드리려고 해요. 장인정신을 완전히 내려놓은 건 아니지만, 어떤 타협점을 스스로 찾는 중입니다.
직원은 지금 주방에 저희 어머니, 우리 실장님, 제 와이프 그리고 저까지 포함해서 한 5명이 일하고 있어요. 가족끼리 하면서 다투거나 할 일이 생기면 제가 많이 참아요. 참고 가는 편이죠.
족발은 족발 삶는 시간도 길고, 김치도 해야 하고… 일이 너무 많아요. 준비해 놓은 게 다 나가 버리면 더 팔 수도 없으니까, 족발이 너무 힘들어서 또 괜찮은 거 없을까 찾다가 보니까 아는 지인이 냉면 장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가서 보니까 너무 쉬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매장에서 시작하게 됐죠.
진짜로 해 보니까 거짓말 조금만 보태서 혼자 100개도 빼낼 정도로 족발에 비하면 이거는 노는 수준이죠. 100개가 들어와도 너무 쉽게 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드는 느낌은 내가 여태까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었나, 어차피 수익률은 똑같은데…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들게 하죠.
배달 장사만 거의 20년 했어요. 예전에는 홀 장사를 해보고 싶었어요. 돈이 없어서 못 했었지… 그런데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뀌어 있어서 지금은 배달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게 저는 운이 좋은 사람 같아요. 배달 장사가 예전에는 정말 밑바닥 장사였고, 무시도 많이 받았고…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시스템이 많이 좋아졌잖아요. 예를 들어서 배달 대행 같은 업체가 예전에는 없었잖아요. 그런 것부터 해서 정말 편한 것 같아요.
저한테 음식 배웠던 사장님 가게에 들러 봤는데요. 지금 점심때 한 120만 원 정도 했네요. 여기 사장님은 원래 일반 회사원이었어요. 장사 잘되는 모습 보면 제 가게 잘 되는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기쁜 마음도 들어요. 여기 사장님 처음 봤을 때 ‘음식 장사를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했어요. 너무 순하고, 너무 이쪽 일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이신 분이 이걸 정말 할 수 있을지 처음에는 많이 걱정됐죠. 처음에는 말렸어요.
그래도 제가 20살 때부터 배달 장사를 하면서 이렇게 다른 분한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는 건 생각도 못 했었는데,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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