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자본금 500만 원으로 시작해서 현재는 약 10개월간 매출 5억 정도를 달성하고 있는 부산 인테리어 대표 28살 임우정이라고 합니다.
제가 부산에서 또래의 여성분들 중에서는 일찍 시작한 편인 것 같아요. 지금 7년 차고, 내년에 8년 차 됩니다. 이 업을 하게 되기까지 정말 많이 힘들었거든요. 처음에는 5평짜리 원룸 같은 곳에서 최소한의 미팅 공간만 남겨두고 창업을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코로나에 경기도 안 좋고, 취업난에 저 같은 젊은 청년분들이 이 콘텐츠를 보시고 열심히 할 수 있게 원동력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참여한 것도 있고요.
그리고 저도 먼 훗날에 좀 지치고, 힘들고, 주저앉았을 때 과거에 제작한 콘텐츠를 보면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고 싶어서 신청하게 됐어요.
이렇게 일찍 나가는 이유가 상가 공사를 하려고 하는데, 상가는 보통 오후에 영업하다 보니까 주변에 피해가 안 가게끔 최대한 일찍 공사를 시작해서 빨리 마무리할 수 있게끔 작업하거든요. 그래서 보통 작업장 반장님들도 아침 일찍 다 오세요.
지금 가는 현장은 상가고, 추후에 술집으로 개업할 예정인 곳이에요. 평소에 프랜차이즈 공사도 하고. 원래는 제가 주거를 좋아해서 아파트 쪽으로 많이 공사를 진행했어요. 주거, 상가, 카페, 학원, 교육 공간들도 다 합니다.
28살에 이렇게 사업을 하고 있지만, 저는 원래 가난 그 잡채였습니다.
조금 스토리가 긴데, 제가 어렸을 때 정말 가난하게 자랐거든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 아버지가 이혼하셨고, 친언니랑 저랑 외할머니, 어머니랑 같이 지냈어요. 근데 아무래도 이제 어머니 혼자서 가장 역할을 하셨어야 해서 안 그래도 형편이 어려운 와중이었죠.
그런데 제가 또 선천적 척추측만증이라는 진단을 12살에 받았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인공 뼈를 이식해서 수술하는 방식이 실험 단계였거든요. 그런 수술을 해야지만 제가 살 수 있는, 어떻게 보면 큰 병이었죠. 그래서 안 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어머니가 자가 마련하신다고 수년간 모아두셨던 돈을 저한테 수술비로 쓰신 거죠.
수술하고 한 6개월간은 병원 생활을 했어요. 퇴원하고 나서도 1년간은 거의 재활훈련을 집에서 해야 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제 보호자라곤 사실 어머니밖에 안 계시잖아요. 근데 어머니가 본업도 못 하시고 거의 1~2년 동안은 저한테 계속 쏟아부으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집에 빚도 많이 불었고, 빨간 딱지도 많이 붙고,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문도 두들기고… 그럴 때마다 저랑 언니는 책상 밑에 숨어서 없는 척하면서 지냈어요.
그러다가 제가 18살 때 어머니가 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저한테는 되게 아픈 기억이긴 한데, 효도 한 번 못 해보고 어머니가 그런 큰 병에 걸리셨어요. 그때는 몰랐어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어머니가 말씀도 안 해주셨고, 어디 생명에 얼마가 있고… 자꾸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때 이미 어머니는 떠날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노트북을 하나 발견을 했어요. ‘판사님께’라는 제목의 한글 파일이 하나 있더라고요. 그걸 열어보니까 판사님께 어머니의 인생이 담긴 내용으로 파산 신청을 진행하고 계셨었어요. 그 아픈 와중에도 자식들한테 빚을 안 물려주겠다는 마음이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결국에는 돈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집에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건강검진도 꾸준히 받으셨을 거고, 그랬으면 조금 빨리 진단을 받고 치료도 가능했을 거고요. 그리고 어머니도 걱정 안 하시고 생을 포기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을 대물림하는 건 죄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언젠가는 결혼하고 자식을 낳을 텐데, 자식한테 효도 한 번 못 해보게 하고 먼저 떠나는 그런 어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래는 제가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는 예대 같은 데는 돈도 너무 많이 들어가고 하다 보니까 포기하고, 바로 창녕에 올라가서 취업했었죠.
창녕 올라가서 큰 공장의 품질 관리팀에 입사해서 캐드 프로그램을 처음 만져봤어요. 간단한 정리·정돈하는 그런 캐드 작업이었는데, 캐드 프로그램이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이 프로그램을 조금 더 공부해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그러다가 첫 직장이었던 회사가 파업했고, 떠밀리듯이 그만두게 됐죠.
근데 당시에 국비 지원이 그때 정말 잘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국가 직업훈련학교라는 곳에 들어가서 캐드 프로그램을 배웠죠.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자격증 취득을 하고 제가 또 그래픽스운용기능사 자격증이 있었어요.
그게 일러스트레이터랑 포토샵을 다루는 건데, 종합적으로 이걸 다 쓸 수 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자격증을 다 활용할 수 있는 회사를 찾다 보니까 인테리어를 하는 회사가 있더라고요. 그때까지 인테리어의 ‘인’자도 몰랐어요. 그때 인테리어 회사에 내가 갖고 있는 기술로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갔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이 현장은 오늘 철거할 거고요. 이것저것 철거해야 할 부분 확인이랑 공사 안 하는 부분들은 보양을 해야 해요. 여기는 바닥 공사를 안 하고 살릴 거기 때문에 빈티지 느낌 그대로 둘 겁니다.
여길 뜯어보는 이유는 여기가 가벽이 아니라 지금 안에 뭐가 있는 것 같거든요. 여기가 창문 같은데, 현장 철거하면서 보이는 특이사항 같은 것들은 고객님이랑 바로바로 소통해서 여쭤보고 오케이 하시면 그때 철거하거든요. 고객님이 생각했던 게 있는데 현장 상황 때문에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같이 소통합니다.
견적도 다 제가 직접 보고 내요. 수백 가지 자재들의 단가를 알고 있어야 해요. 석고보드 한 장에 얼마인지, 합판 한 장에 얼마인지, 합판도 또 두께마다 차이가 있어요. 그거는 기본적으로 다 알고 있어야 단가를 매길 수가 있고, 인건비나 자재비도 매번 상승하거든요. 그래서 매일매일 단가 조사라든지, 시장조사라든지, 또 다른 데보다 견적이 갭이 나면 안 되니까 그런 부분을 항상 공부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보면 견적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해요. 고객의 예산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마다 원하시는 디자인 같은 게 다 있겠지만, 결국은 내 예산 안에서 얼마만큼 예쁘게 뽑을 수 있느냐가 고객분들한테는 중요하거든요.
근데 인테리어 하면 전기, 타일, 필름, 철거, 기타 등등 팀들이 되게 많아요. 제가 오랫동안 여러 현장을 다니다 보니까 거기서 마음이 맞는, 기술력도 좋으시면서 저와 소통이 잘 되는 분들 위주로 팀을 꾸렸어요.
정말 작업자분들한테 많은 정성을 쏟았어요. 명절 때도 연락드리고, 현장 오시면 커피 한 잔 타 드리면서 얘기도 좀 나누고… 그렇게 마음을 여시게끔 유도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인테리어한 거를 다 보면서 지내신 작업자분들도 있어요. 제가 사업을 차리고 저희 팀에서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20대 초반부터 일을 해왔는데, 전에는 현장이 많이 거칠었어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으셨고, 약주 한잔하시면서 걸리적거리니까 나가라고 하거나 여자가 현장에 와서 뭐 하냐, 커피나 타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저는 그냥 커피 타 드리면서 “그래서 이건 뭐라고요?” 하고 물었죠.
몇 달을 그렇게 계속 옆에 붙어서 청소하고, 벽지도 좀 뜯고, 벽돌도 같이 날라드리고 계속 그렇게 하니까 기특한지 하나하나 좀 알려주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배웠던 거죠.
YouText의 콘텐츠는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