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로는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예요. 이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들도 심리는 똑같은데 다른 사람들을 돕는 행위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함으로써 본인의 과대성을 드러내는 거예요. 제가 꼭 당부드리고 싶은 얘기는 되게 사회적 활동 잘하시는 분들 되게 많잖아요. 그분들 중에 극소수가 그런 특성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거고요.
누구나 이렇게 좋은 일 하고 당연히 기분이 좋긴 한데 이 유형의 사람들은 그냥 주목적이에요. 그게 유일한 목적이에요. 그래서 본인이 하는 봉사라든지 기부가 얼마나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이게 얼마나 알려졌느냐, 이걸 통해서 본인이 얼마나 드러나느냐, 이게 중요한 거죠.
오로지 칭찬받기 위해서만 이 행동을 하는 거죠. 보통 건강한 사람들은 좋은 일 했는데 별로 티가 안 났다면 조금 속상하지만 나 스스로가 되게 만족해하잖아요. 그런데 이제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들은 전혀 그런 거에 대해서 좋은 피드백을 못 받고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거에 대한 분노만 생기죠.
굉장히 대중 앞에서는 선한 모습을 보이고 되게 좋은 이미지인데 이 유형의 사람들의 특징은 측근들한테는 너무 못됐어요. 예를 들어 같은 기부단체에서 일하는 직원분이라든지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나르시시스트니까 관계 형성이 안 되고 오히려 굉장히 하대하고 착취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거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행동이 실은 그 사람의 인격이잖아요. 그래서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들도 굉장히 악성 나르시시스트처럼 주위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착취하고 조종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와 악성 나르시시스트의 혼합된 극단적인 형태가 사이비 교주입니다.
마지막 유형은 독선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는 사회적으로 좋은 일, 기부, 이런 거면, 이 독선적 나르시시스트는 도덕성, 윤리 의식, 종교적인 고결함, 이런 걸로 스스로의 과대성을 드러내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 우리가 나르시시스트 하면 외도하고 거짓말 잘하고 이런 이미지잖아요. 이 사람들은 앞에서는 굉장히 도덕적으로 보여요. 그러니까 나르시시스트인지 모를 수 있는 거죠.
예를 들어서 뭔가 상대방이 실수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우리는 그 상대방이 뭐가 힘들고 이런 걸 이해해 주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너는 부족하고 나약하고 게으르고 그래서 이렇게 낙오자로 있는 거야’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이죠. 그리고 이 독선적 나르시시스트는 자기가 완벽주의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굉장히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있고 부모가 이런 성향이면 모든 가족이 그 사람이 세운 규칙하에 움직이는 거죠.
이 집안에서의 모든 건 나의 규칙하에 통솔이 되어야 하고 거기를 벗어나면 안 되는 거죠. 그리고 굉장히 돈에도 집착하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게을러서라고 생각하죠. 그리고 따뜻한 인간관계, 교류에 대한 중요성은 전혀 없어요. 독선적 나르시시스트적인 사람들이 가족이랑 거의 보내는 시간 없이 일만 매진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죠.
우리 주변에 나르시시스트들에게 고통받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 우선 인생의 중요한 사람이 나르시시스트였다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상처의 깊이가 정말 너무 깊어요. 우울 증세가 정말 심해서 자살 사고까지 생겨서 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이 나르시시스트적인 사람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도 떨어지고 자존감도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지고요.
스스로에 대해서 부당하게 탓하고 오랫동안 힘들어하는 그 측면들 때문에 우울증은 물론이고, 굉장히 많은 분들이 몸에 병도 있는 분들이 많아요. 왜냐하면 이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니까요. 바뀌지 않는 스트레스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스트레스고 그 안에서 너무나 무력감을 느끼기 때문에요.
실은 무력감이라는 게 엄청난 공포심과 불편한 감정들을 일으키잖아요. 제가 논문 통계를 낸 건 아니지만 진짜 많은 경우에 오랫동안 나르시시스트적인 학대를 받으신 분들이 소화기 질환이나 자가면역 질환, 통증 이거는 기본이고, 과거에 암 수술받거나 이런 분들도 너무 많거든요. 어렸을 때 나르시시스트적인 부모 밑에서 오랫동안 정서적인 학대를 받은 사람들이 성인이 됐다고 없어지느냐? 그렇지 않아요.
그 상처들은 마음속에 남아있어서 성인이 돼서도 적절하게 해결해 주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그 상처들이 다시 올라오고 반복되고 부모가 나르시시스트면 성인이 돼서 나르시시스트적인 특성이 강한 사람을 만나서 피해를 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자기 자신이 늘 부족하고 모자란다는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분들도 너무 많아요.
성인이 돼서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 직장생활을 하는 것, 내가 뭔가 목표를 세워서 이루는 것도 나의 기본적인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중요하잖아요. 내가 어떤 어려움에 이르렀을 때 나는 할 수 있고 나는 이걸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그런 생각들이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어렸을 때 나르시시스트적인 환경,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게 굉장히 많이 결여돼 있는 부분도 있고요. 반대급부적으로 나는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너무 과하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교류하는 방법을 잘 익히지 못할 경우가 있어요.
왜냐하면 정서적인 교류를 안 했잖아요. 표면적으로는 중고등학교 때 크게 문제없이 지나고 결혼 생활도 하지만 막상 돌아보면 의미 있는 정말 가까운 관계가 없는 채로 지냈던 분들도 너무 많아요. 거기서 오는 공허감이나 2차적으로 오는 외로움 때문에 우울증이 생겨서 오시는 분들도 많죠.
보통 어렸을 때 나르시시스트적인 경험을 안 해봤는데 성인이 돼서 나르시시스트적인 배우자를 만났다면 결혼 생활을 유지했을 때 느껴지는 그 모멸감이나 무시당하는 느낌이나 정말 그 존재 가치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그걸 수년 동안 경험하신 분들도 봤고, 또 막상 그 배우자랑 이혼하는 과정에서도 경험하는 굉장한 어려움들도 너무 옆에서 많이 지켜봤고요.
이혼 후에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도 그 상대 배우자가 나르시시스트인 경우에는 자녀가 경험할 많은 피해들 때문에도 오랫동안 고생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으세요. 이미 성인이 돼서 나이가 들었는데도 나르시시스트적인 부모가 있잖아요. 그러면 나이가 들면 좀 좋아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실은 더 나르시시스트적인 특성이 강화되는 경우가 있어요. 젊었을 때의 방어들이 실은 없어지잖아요. 젊음, 권력, 힘, 경제적인 능력, 이런 게 떨어지니까 결함이 더 드러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나르시시스트적인 나이 든 부모를 끝까지 책임지는 자녀들이 경험하는 그 고통도 너무 커요.
정말 다양한 형태의 다양한 관계 안에서 막대한 고통을 경험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시고, 정말 개개인의 사연을 들었을 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정말 생각보다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학대라고 부를 수 있는 행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한 분, 한 분의 사연이 정말 너무 안타깝죠. 그 관계를 끊지 못하고 물리적인 변화를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인지가 있는 것과 없는 건 천차만별이에요.
왜냐하면 모든 결정을 내리고 대응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거에 대한 인지가 있을 때 내가 그 상황에 대응하는 건 인지가 없을 때 대응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거든요.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혹시 이런 유형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해볼 수 있으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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