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계속 장군감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꿈이 군인이 되는 거였어요, 직업군인.
3사관학교 15기로 임관을 했는데 육군 소위를 단지 얼마 안 돼서 소대장 때 수류탄 사고가 났어요.
던지려는 순간 머리 위에서 터졌는데, 살아 있는 게 기적이죠. 그 대신 오른손이 잘려 나갔어요. 그래서 이듬해 초에 전역을 했죠. 그래서 한 손으로 먹고살려면 무엇을 해야 될까? 라고 고민하다가 ‘손이 없으니 입으로 먹고 사는 게 좋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입을 사용하려면 어떤 게 좋을까? 우리말은 다 아니까 영어가 좋겠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하기로 하고, 병원에서 왼손으로 글씨 연습과 영어 공부를 해서 경희대학교의 영문과로 2학년 편입학을 해요. 그렇게 영문과를 졸업하게 되었죠.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이제 내 인생이 끝난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죠. ‘인생에 답이 없구나, 끝났네, 이렇게 저주스러운 인생이 있을까?’ 이런 생각까지 했어요. ‘차라리 죽는 게 나은데 살아 있는 게 이거야말로 저주다.’ 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신비스럽게 손 하나 외에는 잃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의 부모님, 나의 형제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내가 사랑하는 애인이었는데.
1년 뒤에 중위 달면 결혼하겠다고 했었어요. 소위에서 1년 뒤면 중위를 달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사고 후에도 그대로 곁에 남아서 삶에 대해 동기 유발시키고 일어나라고 부추기고 그러면서 더 애틋한 사랑을 보내줬어요. 그래서 이제 용기를 냈죠.
‘아,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그대로인데 내가 불행하다고 스스로 느끼면 이분들은 더 불행하겠다.’ 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이제 일어나는 계기가 됐죠. 사랑했던 사람, 주변 사람들의 사랑,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보내준 사랑 덕분에.
결론은 한 단어로 사랑이 일으킨 거다! 그렇게 보면 될 것 같아요. 사고 후 취직이 쉽지 않아서 국가유공자 증명서를 뗐어요. 그러면 10점 가점을 해 준다고 그래서 취직이 걱정이 안 됐거든요. 내 점수에다가 10점을 가점해 보면 점수가 남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국가유공자 자녀들은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국가유공자 본인, 상이군인은 안 뽑으려고 그래요. 두 손 멀쩡한 사람들이 많은데, 손 없는 사람을 고를리가 없잖아요. 우리나라에 손이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그러니 왜 저를 뽑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여기저기 다 떨어졌던 거예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아이디어를 낸 게, ‘이 손 얘기를 굳이 할 필요 있을까?’ 였어요.
굳이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전혀 몰라요. 이렇게 그냥 또박또박 걸어다니면 아무도 몰라요.
아주 심하게 둔한 사람은 영문과 3년 동안 같이 다니고 졸업했는 데도 몰라요. 그때 하나 느낀 게 ‘아,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 없구나, 굳이 이 얘기를 왜 해서 떨어지냐, 국가유공자 도움도 안 되는데 왜 그거 증명서를 내냐 오히려 얘깃거리만 되지!’ 라고 느꼈죠.
그래서 안 내고 손 얘기도 감추고 애경 입사에 성공을 한 거예요. 애경은 처음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인터뷰 도중 발각이 됐어요. 그래서 결국 손 얘기를 했는데 또 떨어졌죠.
그런데 정말 제가 돌아가다가 위대한 결정을 하게 되었는데요, 제 인생을 관통하는 결정이었어요. 그게 뭐냐하면 ‘이렇게 그냥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붙으면 붙은 대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내가 스스로 개척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떨어졌는데 다시 들어가서 ‘나 두 손 가진 사람보다 일 더 잘할 수 있다’, 그리고 ‘일 못하면 그때 가서 나를 해고시켜도 좋으니 일을 머리로 하는 거고, 책임감으로 하는 거라면 나는 머리도 나쁘지 않고, 책임감도 강하다. 병사들도 다루어봤고 윗사람도 모셔봤다.’ 라고 얘기를 다시 들어가서 던졌죠.
그때 느낀 게, ‘아, 포기하지 말고 한번 가서 들이대 보자’ 라는 생각을 한 것이 합격이 된 거에요. 제 용기를 높이 샀던 장영신 회장님께서 참 위대한 것 같아요. 여자인데 남자 열 명 합쳐 놓은 것보다 더 강한 분인 것 같아요. 사람 볼 줄도 알고 용병도 아시고. 그분에 의해서 합격이 된 거예요.
손이 없다고 그러니까 일단 일어나서 면접을 중단시키고 그 자리에서 퇴장 통보를 한 거예요. 그래서 너무 속상해서 가다가 죽을까 이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안 되겠다, 내가 왜 죽냐. 누구를 위해 죽냐? 내가 잃은 건 손 하나지 다 가졌는데, 뭐 때문에 그런 나쁜 생각을 하냐.’ 싶었죠. 그리고 그때 이미 아기가 두 명이나 있었어요. 그 사랑하는 사람과 바로 결혼을 했고요, 처갓집에는 또 엄청 반대를 했죠. 손 없는 사람한테 결혼한다니까 허락 하셨겠어요?
그래서 너무 고마워서 이 사람을 위해서 꼭 출세해야 하는데, 성공은 고사하고 입사조차 안 되니 황당했죠. 기회가 아예 없고, 또 제가 무엇 때문에 어영부영 살겠어요?
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도 일단은 사회의 ‘편견’ 이런 것들 때문에 힘들었죠. 그런데 장영신 회장님은 다시 와서 들이대는 걸 보고 “용기가 대단하다. 이 사람 말도 잘하고 똑똑하다, 그리고 생각이 깊다.” 이런 생각을 하셨데요.
나중에 제가 회장님하고 친해졌을 때 물어보니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저도 하나 느낀 게 있죠. 떨어졌는데 가서 들이댔잖아요? 그 뒤로부터는 ‘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대학은 들이대다!’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제가 높이 됐을 때도 사람 뽑을 때, 다 들이대 출신들만 뽑았어요.
어디 명문대라고 뽑지 않았어요. 제가 뽑을 때는 전부 그런 사람을 채용을 했죠, 맞더라고요. 100% 그런 사람들이 일을 잘해요.
애경 역사에서 정말 한 해를 긁은 제품은 한화로 샴푸였죠. 그런 성공 제품들을 만드는 과정과 비결은 기본적으로 장영신 회장님께 너무 감사했던 마음이었어요. 내 마음은 월급쟁이로서의 행동이 아니고 오너로서의 행동을 한 거예요.
실제로 주인보다 더 설쳤어요. 주인도 아닌 게 주인인 척한 게 저예요.
그러니까 완전 제가 주인인 것처럼 하다 보니까 모든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무서운 것 같아요, 생각이라는 게. 주인의 눈으로 보면 보여요. 그런데 월급쟁이로 보면 시도하지 않아요.
한화로 샴푸하고 2080치약, 이 2가지가 최악의 상태에서 나온 겁니다. 그런데 최선의 결과를 얻은 거예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로는 한마디로 말하면 전 세계 꼴찌로 나왔고, 경쟁사에서도 가장 늦게 나온 샴푸인데도 6개월 만에 시장을 평정을 해 버리고 1등이 된 거예요. 6개월 만에.
2080 치약도 1998년 IMF 때 나와가지고 치약 시장을 1년 만에 다 때려눕히고, NO.1 브랜드가 된 거예요.
그런데 IMF가 최악의 상태잖아요. 소비가 긴축됐을 때, 그때 1등으로 가는 것이 쉽지 않죠. 하나로 샴푸는 이미 랑데뷰 LG가 나왔고, 투웨이 아모레가 나왔고, 두 개의 큰 대형 화장품 회사에서 이미 시장을 석권했고 선점했는데 가장 늦게 들어가서 가장 빨리 1등을 간 거예요.
월급쟁이로 생각을 하면 전략은 안 나와요. 왜냐? 이렇게 생각하든 고민하지 않든, 고민하든 월급은 따박따박 나오잖아요. 그런데 뭐 때문에 내가 ‘리스크 테이킹을 하나, 위험을 감수해야 하나?’ 잘못하면 잘릴텐데. ‘시키는 일만 해도 충분히 바쁜데.’ 이런 생각을 해서 시도조차 안 하는 거예요.
거기에 핵심 성공요인이 있어요. 성공요인이란, 별거 아닙니다. 남이 다 안 된다고 할 때, 나는 되는 방법을 생각하고. 남들은 시도하지 않을 때, 나는 시도했어요.
제가 마케팅 사관학교를 경영하는데, 코로나 위기라고 제 모교인 경희대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모집을 안 해요.
그런데 저는 모집했고, 된다고 생각했죠. 이런 차이에요. 모집 안 했는데 사람이 올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저는 모집했으니까 사람이 오잖아요. 50명 모집에 56명이 차고 넘쳤다는 거예요. 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 이게 엄청난 차이잖아요?
위기가 기회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걸 얘기하는 거에요. 행동하지 않고 실행하지 않는데, 뭐가 이루어지겠어요?
실행이 최고의 덕목이죠.
YouText의 콘텐츠는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