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인 대통령 선거가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국가의 원수로서 나라와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은 다들 아시다시피, 국가의 최고 결정권자인 만큼 정치와 경제, 외교, 군사,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요. 대단한 직업이지만 동시에 그 중요성으로 인해 각종 사고와 테러의 표적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항상 최고 수준의 경호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고강도 훈련을 받은 경호팀과 경찰 수행 요원들로 둘러싸인 의전 행렬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보호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강 봐도 짐작이 될 정도죠. 특히 상시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잦은 이동이 수반되는 만큼 대통령의 이동 수단,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이용하는 대통령 의전차량은 경호에 있어서 가장 특별할 수 밖에 없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발이 되어 주었던 청와대 공식 의전 차량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초대 이승만, 4대 윤보선 전 대통령이 사용한 우리나라 첫 번째 공식 대통령 의전 차량은 미국 캐딜락 플리트우드입니다. 당시 유럽을 필두로 한 기존의 강대국들이 기나긴 세계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던 반면, 미국은 그렇지 않았는데요. 본토와 기반시설의 피해가 크지 않았던 미국은 오히려 전쟁을 계기로 세계 최고의 경제 국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막대한 부를 쌓게 되면서 이를 노려 다양한 사치품 시장이 다시금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당연하게도 럭셔리카 수요도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거대한 차체와 대배기량 엔진을 장착한 고급차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고 GM의 럭셔리 브랜드 캐딜락은 오랜 기간 대통령 의전차량으로 쓰였던 포드의 링컨과 함께 단연 돋보이는 브랜드였죠. 플리트우드는 캐딜락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플래그십 라인업이었습니다. 차체 길이와 사양에 따라 이름 뒤에 서브네임을 붙인 여러 파생 모델이 있었고, 62 모델이 대통령 의전차로 사용됐습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선물했고, 청와대 의전 차량답게 방탄 처리도 이루어졌죠. 5.5m에 달하는 거대한 전장과 2m가 넘는 전폭, 번쩍이는 크롬 장식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는 외관은 수레와 달구지가 더 흔했던 서울 거리에서 단연 돋보였겠죠? V8 6.0L 엔진에, 3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렸고, 최고 속도는 시속 180km/h에 달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도로 위에서는 가장 빠른 차라고 봐도 무방했죠.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 차량은 현재 ‘국가 등록문화재 396호’로 지정됐고, 과거의 빛나던 모습을 되찾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랜 재임기간을 지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GM 산하 쉐보레의 1960년식 비스케인 세단을 업무용으로 이용했습니다. 당시 쉐보레 역시 캐딜락과 비교하면 럭셔리 차량은 아니었지만, 차라는 물건 자체가 귀했던 당시 우리나라 사정을 떠올리면 웬만한 고급 세단 부럽지 않은 차였죠. 직렬 6기통 3.9L 엔진이 탑재되어 최고 출력 135마력의 넉넉한 힘을 제공했고, 보편적인 미국 세단 중 하나였지만 당시 트렌드를 충실히 따라 넓고 긴 차체가 돋보였습니다.
또 유려하게 떨어지는 C필러, 비행기의 꼬리 날개, 테일핀을 연상시키는 후면부는 자동차 디자인계의 전설로 평가 받는 인물 ‘할리 얼’이 활약했던 당시 GM 계열 세단들의 디자인 특징을 그대로 따른 모습이었죠. 이 차량 역시 국가 재건 운동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평가 받아 국가 ‘등록문화재 397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재임 기간이 긴 만큼 다양한 의전 차량을 도입했는데요.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캐딜락 플리트우드의 신형 모델인 플리트우드75를 의전 차량으로 사용했습니다. 연임 이후 사용한 68년식 플리트우드 75 리무진 모델은 캐딜락 특유의 각을 세운 디자인, 5.8m에 달하는 넓고 쭉 뻗은 검은 차체로 플래그십다운 풍채를 자랑했고, 세로로 배치된 헤드램프가 범상치 않은 인상을 풍기는 모델이었습니다. 성인이 세로로 누울 수 있을 만큼 넓다는 보닛 속에 무려 7.7L의 어마어마한 V8 엔진을 품었고, 4단 자동변속기를 갖췄습니다. 또 380마력이라는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한 출력을 제공했어요.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시범 운행을 했던 차량도 바로 이 차량이었습니다. 육군본부에서 관리되던 이 차량은 ‘국가 등록문화재 제398호’로 지정되어 지금은 육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재임기간 동안 의전 차량이 여러 번 교체됐는데요. 플리트우드 75 브로엄과 세단 드빌 등 마찬가지로 당대 캐딜락 최고급 세단의 신용 모델을 번갈아 이용했습니다. 한편 1973년 시작된 1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기름을 들이마시던 기존의 대배기량 세단들이 서서히 주춤해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럭셔리카의 다운사이징이 시작된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에, 무식하게 크기만 했던 캐딜락의 세단들도 서서히 엔진과 차체 크기를 줄이기 시작했죠. 다만, 특유의 각진 디자인에서 오는 권위적인 느낌과 위압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분위기는 여전했습니다.
가장 짧은 임기를 끝낸 10대 최규하 전 대통령은 앞서 박정희 대통령이 사용하던 캐딜락 플리트우드 75와 더불어 프랑스 푸조의 플래그십 세단 604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국무총리 당시 쓰던 관용차를 그대로 이용했죠. 언뜻 봐도 당시 유럽 세단의 디자인이 미국 세단의 디자인과 너무나도 달랐다는 게 느껴지시죠? 이 차는 럭셔리카 시장에서 독일 차와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디자인도 페라리로 유명해진 이탈리아 대표 카로체리아(디자인, 설계 등을 전문으로 하는 소형 자동차 공방) 피닌파리나의 손을 거쳤고,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군살 없는 매끈한 보디에 직선이 돋보이는 단정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전장은 4,720mm, 폭은 1,770mm로 앞서 소개된 캐딜락 리무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지만, 당시 보편적인 차량들의 크기를 감안하면 대형 세단에 걸맞는 크기였습니다. 뒷좌석 편의성과 승차감 역시 부족함 없었기 때문에 고향인 프랑스에서도 대통령 의전차로 이 604가 활약했죠.
파워트레인은 푸조와 르노, 볼보 3개 회사가 합작해 만든 V6 2.7L 가솔린 엔진이 탑재됐고, 134마력의 최고 출력을 발휘했죠. 특히 이 차는 1979년 기아차가 빈약한 고급 세단 라인업을 보완하기 위해 부품을 들여와 조립 생산한 모델로, 기아차의 판매망을 통해 일반인에게도 판매가 이루어졌던 모델입니다. 출시 당시 1대당 2,300만 원으로 강남 아파트 한 채와 맞먹는 가격이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그 가치가 대략 짐작이 되시죠?
푸조 604 역시 당시 현대 포드 그라나다, 대우 로얄 살롱과 경쟁하던 당시로서는 만만치 않게 고급 차량이었지만, 마치 항공모함처럼 거대한 캐딜락 리무진과 대비되는 모습이 조금은 검소해 보이기도 하네요. 실제로 최규하 대통령은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던 인물로 익히 알려져 있죠. 이 차량은 현재 최규하 전 대통령의 고향인 강원도 원주시에 기증되어 원주시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11대 전두환, 13대 노태우, 14대 김영삼 전 대통령도 캐딜락 플리트우드를 연이어 사용했습니다. 이로써 플리트우드는 가장 오랫동안 청와대 공식 의전 차량으로 활약한 모델이 됐죠. 새로 도입된 캐딜락 플리트우드 브로엄은 1984년식으로, 처음으로 기본 세단에서 길이를 늘린 스트레치드 리무진 모델이 사용됐습니다. 이전의 화려한 장식이 돋보였던 디자인을 다리미로 쭉 편 듯, 반듯한 면과 선이 돋보이는 외관은 확실히 시대가 달라졌음을 느끼게 해줬죠.
유리와 차체를 보강해 방탄 능력을 갖췄고, 뒷좌석에는 개방형 썬루프를 마련해 퍼레이드이 VIP가 몸을 내밀 수 있도록 했습니다. 파워트레인은 여전히 8기통을 유지했지만 앞서 거쳐간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배기량이 4.1L로 대폭 줄고 그에 맞춰 출력도 줄었지만, 연료 효율은 오히려 좋아졌습니다. 이후 13대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이 차량이 연달아 쓰이다가 임기 말인 1992년 캐딜락 플리트우드 브로엄 리무진을 새롭게 구입했고, 이 차량은 이후 취임한 14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의전 차량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여전히 각을 세워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와 권위적인 디자인을 내세웠지만, 헤드램프를 일체형으로 다듬어 세련미를 더했고, 소총탄은 물론 소형 폭발물 정도는 거뜬히 견뎌낼 만큼 방호 성능을 보강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엔진 역시 배기량을 4.9L로 키워 더 넉넉한 힘을 제공했죠.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식 행사에 참여해 후임 대통령들의 앞날을 응원했고, 현재는 세종시에 있는 대통령 기록전시관 로비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경쟁 모델이었던 링컨 컨티넨탈 리무진을 함께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명확한 사진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당시 미국 교통법에 의해 규격화된 헤드램프를 사용해야 해서 지나치게 닮은 꼴이었던 두 모델을 헷갈렸던 것으로 추측이 되네요.
럭셔리카의 대명사 벤츠 S클래스는 14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처음 이용했습니다. 캐딜락을 줄곧 써 왔던 건 우리나라 최고 우방국의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분위기상 좋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컸지만, 동시에 방탄 기술이 가장 뛰어나기도 해서였는데요. 그 사이 유럽 차의 방탄 기술 역시 눈에 띄게 발전했고, 청와대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S600 가드를 시범 삼아 도입했습니다. 최고 출력 400마력에, 12기통 6.0L 엔진과 4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된 S600 방탄 사양으로 오랜 역사와 더불어 당시 전 세계 정상들의 의전 차량으로 폭넓게 사용된 모델이었죠. 여기서 특히 좋아하죠.(북한 김정은 자료 사진).허리를 길게 늘린 스트레치드 모델이 아닌 일반형 모델을 베이스로 만들어져 외형은 일반 S클래스와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큰 행사 외에는 기동성이 좋은 이 S600 가드를 주로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성능에 만족한 청와대는 이후 신형 W220 S600 가드를 추가로 도입해 15대 김대중 전 대통령과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전 차량으로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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