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보내주셨슴다]
이번에도 볼보에서 차를 보내 주셔서 넙죽 받아왔는데요. 덕분에 달라진 S90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타본 모델은 S90 중 가장 많이 팔리는 2022년형 ‘B5 인스크립션’ 모델로, 가솔린 마일드 하이브리드(MHEV)가 탑재된 전륜 구동 사양입니다.
절제된 분위기의 외관, 그 안은 북유럽 가구로 꾸며진 세련된 분위기의 모던하우스 같았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신차의 쎄한 냄새가 아닌 볼보 특유의 기분 좋은 가죽 냄새가 코를 감쌌는데요. 이케아 가죽 소파가 진열된 곳에 가니까 이 냄새가 나더라고요. 납품하는 회사가 같은가 봐요.
2015년 XC90에서 처음 선보인 인테리어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트렌드로 자리 잡은 휘황찬란한 엠비언트 라이트조차 없지만, 질 좋은 소재와 컬러 매치, ‘만듦새’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2022년형으로 올라오면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눈에 띄게 좋아졌는데요. 안드로이드 OS에 기반해 스마트폰에 익숙한 현대인이라면 기능을 찾아가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죠.
여기에 한국 시장에 특화된 TMAP 인포테인먼트를 더해 TMAP 내비게이션과 뮤직앱 FLO, AI 음성인식을 제공하면서 편의성은 경쟁차 중 가장 훌륭한 편입니다. 이런 것도 돼요.
멜론머스크) 아리야, 태릉입구역 3번 출구로 안내해 줘.
AI) 몇 번째 장소로 갈까요?
멜론머스크) 아리야, 운전석 통풍 시트 좀 켜줘.
AI) 운전석 시트 통풍을 켤게요.
무엇보다 순정 내비게이션이 TMAP이 되면서 장식에 가까웠던 계기판과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드디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전 모델에는 빠졌던 긴급 상황 안내 시스템 ‘볼보 온 콜‘도 들어왔어요.
저는 차에 타면 스마트폰부터 연결하는 편인데, 시승 내내 딱히 핸드폰을 연결할 필요가 없었을 만큼 길 안내나 음악 감상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덕분에 새로 생긴 무선 충전 패드를 잘 이용했습니다. 컵홀더 덮개에 이렇게 딱 맞춰 놓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다만 아예 스마트폰을 연결할 일 자체를 없애버렸다는 건 조금 의아한 부분이었습니다. 전작에서는 쓸 수 있었던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가 오히려 신형에서는 안 되는 건데요. 경쟁차는 소비자 피드백을 받아 무선 연결까지 제공하는 것에 비하면 분명 아쉬움이 남는 구성입니다.
다행히 향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다시 지원할 수도 있다고 하니 기다려보는 것도 좋겠네요. 보편적인 기계식 레버와 전자식 레버를 혼용했던 이전 모델과 달리 모든 모델에 전자식 레버를 적용한 것도 달라진 부분이었습니다.
스웨덴 ‘오레포스’사와 콜라보 한 크리스탈 기어 레버는 깔끔하지만 밋밋한 인테리어에 작은 꽃병 하나가 분위기를 더해 주는 것처럼 가죽과 나무, 금속으로 꾸며진 단정한 실내 속에서 화려함을 한 스푼 추가한 느낌이었어요.
가볍게 손에 쥐고 앞뒤로 까딱이면 되는데 특이하게도 무조건 한 번 조작하면 중립인 N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크게 조작하면 한 번에 D와 R을 오가는 대부분 차량과의 차이점인데, 혹시 모를 오조작을 막기 위함이라고 하죠.
그런데 가뜩이나 차도 길어서 유턴이나 주차할 때 한 번에 하기가 힘든데, N이 들어간 상태에서 엑셀을 밟는 일이 종종 생기더라고요. 또 수동 모드로 조작할 때는 이 레버를 좌우로 움직여야 하는데, 패들 시프트도 없어서 손이 잘 안 가겠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주행에 나섰는데요. 이전 T5에서는 종종 거슬렸던 ‘ISG 시스템‘이 B5로 오면서 출발이나 정차 시 작동하는 느낌이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B 파워트레인만 접했다면 체감이 쉽지는 않겠지만 직전 모델을 경험해 본 저로서는 변화가 와닿더라고요.
물론 냉간 시 외부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엔진 소음은 디젤차로 착각할 만큼 여전했지만요. 많은 분이 이런 이질감 때문에 ISG 시스템을 강제로 막아 놓기도 하죠. 아예 사용자가 임의로 끄지 못하게 설계된 차량도 있더라고요.
볼보의 ‘B 모델’은 흔히 하이브리드차 하면 떠올리는 풀 하이브리드(HEV)가 아닌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MHEV)으로 모터가 직접 바퀴를 굴리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차량에 쓰이는 12V 배터리보다 좀 더 높은 성능의 ’48V 배터리’, 엔진에 별도의 보조 모터를 더해 시동을 걸 때나 초반 가속 시에 힘을 보태는 방식인데요.
이 과정에서 시동도 더욱 부드럽게 걸리고 배출가스도 크게 줄어들죠. 그러니까 멈춘 상태에서 달릴 때 보다 누군가 뒤에서 살짝 밀어 줄 때 힘이 덜 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육중한 배터리나 구동 모터가 필요하지 않으니 구성이 간단하고 장착 비용도 저렴한 데다, 굳이 엔진이 돌지 않아도 모터의 힘만으로 각종 전자 장비나 에어컨을 돌릴 수도 있죠. 이전 모델에서도 느꼈지만 S90은 스포티한 주행보다는 편안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노면의 요철을 매끄럽게 처리해 고급 차에 걸맞은 안락한 승차감을 제공했고 장시간 운전해도 몸이 피곤하지 않았죠.
가장 낮은 파워트레인이지만 250마력의 넉넉한 출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도심과 고속 주행 모두 여유로운 가속이 가능했는데, 이전에도 있었던 터보렉은 개선이 안 돼 엑셀 반응은 여전히 반 박자 느렸습니다.
확실히 볼보 터보 엔진의 넉넉한 힘은 스포티한 주행보다는 일상에서의 여유로움을 우선에 둔 듯한 느낌이었어요. 페이퍼 스펙은 같아도 BMW 같은 스포티한 감각을 기대하신다면 분명 실망하실 거예요. 그럴 만도 한 게 테일러 수트를 입은 사람한테 전력 질주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까요.
전에 있었던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가 신형으로 오면서 빠진 걸 보면 확실하죠.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계기판 테마가 변하는 것도 기대했는데, 아예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를 없애 버릴 줄은 몰랐네요.
마일드 하이브리드의 보조 덕분인지 연비는 리터 당 꾸준히 10km 이상을 기록했는데, 공차 중량이 2톤을 훌쩍 넘기고 전장만 5m가 넘는 대형 세단인 것을 감안하면 준수한 연비였습니다. 단 입맛은 고급 입맛이라 주유소를 가리는 게 흠이지만요.
노이즈 캔슬링 기능까지 갖춘 19개 스피커의 ‘바워스&윌킨스‘ 사운드 시스템은 아이들링 스탑으로 엔진까지 숨을 죽이는 고요한 차 안에서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통풍 시트 소리가 좀 크긴 했는데…)
무난한 ‘스튜디오 모드’, 입체감이 돋보이는 ‘콘서트홀’에 이어 ‘재즈 클럽 모드’가 새롭게 더해지면서 잔잔한 재즈 음악, 신나는 팝송을 들을 때도 언제나 만족스러운 사운드를 제공했습니다 주차를 한 뒤 음악이 끝날 때까지 내리지 않은 것도 여러 번이었어요.
하이라이트인 뒷좌석을 빼놓을 수는 없죠. 일단 문짝 길이부터가 남다르고 엑셀런스만 제공했던 직전 모델 롱바디에 비해 사치스러운 독립형 콘솔과 마사지, 테이블은 빠졌지만 광활한 공간과 열선 및 통풍 시트, 전동 커튼은 그대로 남아 동급 최고 수준의 쾌적함을 제공했습니다. 심지어 선루프, 왼쪽 창문까지 조작할 수 있는 버튼과 조수석을 움직일 수 있는 토글까지.
1억짜리 엑설런스의 옵션이 그대로 내려왔는데. 정작 있어야 할 것 같은 뒷좌석 리클라이닝은 빠져서 넓은 레그룸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승차감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후륜 리프 스프링 때문에 우려했던 잔진동과 불쾌한 승차감도 안락한 시트 선에서 정리되는 느낌이었어요. 이 파노라마 선루프도 사실상 뒷좌석 승객을 위한 옵션이죠.
오늘 소개한 볼보 S90은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 같은 독일 프리미엄 세단과는 분명 성향이 다른 모델이었습니다.
광고만 봐도 비즈니스맨과 그들의 성공적인 삶을 키워드로 잡는 경쟁차와 달리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을 많이 그려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운전의 즐거움은 그냥 잘하는 브랜드에 맡기고 가족을 최우선으로 두고 제품을 만든 느낌이었습니다.
여전히 직접 운전하는 것이 편안했지만 서두르거나 과격하지 않았고, 넉넉하고 편안한 공간은 가족과 함께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어요. 이보다 중요한 VIP가 있을까요. 올 1분기 누적 판매량은 1,151대.
동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치지만 반도체 대란 이전부터 유명했던 기나긴 대기 기간으로 제 역량을 다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꾸준히 상품성을 보강해 판매량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만든다는 선입견이 구매를 망설이게 할 만큼 무겁지만, 집에 있는 가전제품 중에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만들지 않은 걸 찾는 게 힘들죠. 중국에서 조립됐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인건비, 물류비 절감을 이유로 가격을 내려 가성비가 돋보이는 장점도 있으니 판단은 여러분이 하시면 됩니다. 분명한 건 이 가격에 이 정도의 뒷좌석 편의성을 제공하는 차가 없어요.
지금까지 볼보의 플래그쉽 세단 S90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과거에는 물과 기름처럼 나뉘었던 세단과 SUV가 승용차를 선택하는 하나의 스타일로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자동차 시장이 크게 바뀌었죠. 많은 브랜드 중에서도 볼보는 이에 발맞춘 대표적인 브랜드가 아닐까 싶어요.
주요 부품을 거의 복붙 수준으로 공유하면서 세단과 SUV 할 것 없이 비슷한 감각을 전달한다는 건 자칫 개성이 없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지만요. 볼보의 감성과 어울리는 분들은 오히려 운행 환경과 구매 여건에 맞게 스타일만 선택하면 되니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애플의 감성이 어울리기만 한다면 MINI 라인업부터 PRO MAX,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같은 소프트웨어 안에서도 다양한 취향의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처럼요.
나보다는 가족을 우선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차, 앞으로 등장할 볼보의 새로운 세단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2030년까지 모든 모델을 전기차로 바꾼다는데 이거 후속이 나오기는 하는 걸까요?
다음에도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사소하지만 궁금한 자동차 이야기’ 멜론머스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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