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있는 한덕현입니다.
이번엔 자꾸 남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고,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과 이유를 말씀드리려고 해요. 결국은 ‘내가 왜 남의 눈치를 많이 보지?’라는 질문이 핵심인데, ‘나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제일 좋은 이야기를 하신 분이 ‘카렌 호나이’라는 정신과 의사분이에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나’는 ‘내가 보는 나’, ‘남이 보는 나’ 그리고 ‘정말 진실의 나’ 이렇게 3명의 ‘나’가 존재한다고 해요.
그런데 소위 말해 나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정말 나는 그럴 것 같아…’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 3명의 ‘나’가 일치하게 되는 거죠.
말 그대로 ‘남이 보는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고요. ‘내가 보는 나’는 정말 내가 나를 평가하는 거예요. 그리고 정말 진실의, 이 사회에서 내가 어떤 위치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돼서 나오는 것이 ‘진실의 나’인데요. 그 3개가 일치하게 되면 어느 정도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거고, 그게 일치하지 않으면 계속 나에 대한 불만, 불안, 비확신 같은 것들이 생기기 때문에 힘들어지는 거죠.
그러면 이 세 가지 ‘나’의 관점에서 볼 때 결국 이 세 가지 ‘나’가 일치하지 않으니까, 자꾸 ‘내가 보는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니까, ‘남이 보는 나’에 대한 생각만 점점 많아지니까 다른 사람의 시선에 내가 조금 더 예민해지게 되는 거죠.
여기서 ‘내가 보는 나’와 ‘진실한 나’의 차이를 말씀드리자면, ‘진실의 나’는 알 수가 없어요. 심지어는 내가 시험을 봤는데, 전교 꼴찌를 했어요. 그러면 객관적으로 볼 때 나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겠죠.
그런데 정말 ‘진실의 나’가 ‘진짜 그렇게 공부를 못하는 바보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몸이 아파서 시험공부를 못했을 수도 있고, 시험 범위를 잘못 알아서 공부를 못했을 수도 있고, 또 나는 국어를 잘하는데 수학만 시험을 봐서 꼴찌를 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여기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수 있고, 그 합리적인 이유가 논리적이라면 ‘내가 보는 나’가 ‘진실한 나’에 좀 더 가까운 거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그래, 나는 바보야…’, ‘그래, 나는 모자라…’, ‘그래, 나는 전교 꼴찌에 해당하는 놈이야…’라고 생각해 버린다면 그게 비록 ‘진실의 나’가 아니더라도 ‘거짓의 나’를 ‘진실의 나’로 만들어버리는 상황이 되는 거죠.
결국 관점이라는 게 중요해요. 거기서 바로 또 긍정적인 시각, 부정적인 시각 그리고 합리화 같은 것들이 또 나오게 되는 거죠.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불안감 같은 게 나올 수 있거든요. 그 불안감, 바로 지나친 긍정이나 지나친 부정 같은 것들이 스스로가 ‘진실의 나’로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어긋나게 만들어 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나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평가해서 ‘진실의 나’와 비슷한 수준에 맞춰 두려고 하는데, 스스로를 너무 긍정적으로 봐서 한껏 높여놔도 불안해지는 거고, 나를 너무 부정적으로 봐서 나를 과하게 낮춰놔도 현실과의 차이만큼 나는 불안해지게 되는 거죠.
남이 봤을 때 스스로 잘 사는 사람은 나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피드백합니다. 다른 사람의 피드백에 되게 예민할 것 같지만, 내가 내 피드백을 가지고 잘 살아가요.
내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잘했으면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못했으면 벌도 주면서 그다음 계획을 가지고 스스로 끊임없이 피드백을 해 가면서 그 피드백을 잘 따라가는 사람들이 남이 볼 때 잘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스스로 피드백하는 방법, 올바른 방법이 있어요. 거기서 객관성이라는 게 나옵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할수록 정확한 피드백이 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사실 청소년한테 주어지는 객관적인 피드백 중의 하나가 성적이거든요. ‘공부 잘하는 게 최고야…’, ‘공부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해…’ 그런 게 아니고, 시험을 봤는데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했다면 객관적으로 공부를 제일 잘하는 학생이라는 평가를 끄집어낸 거거든요.
그래서 성적, 아니면 운동으로 어디서 상을 탔다든지, 그림을 잘 그려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들이 객관적인 평가의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객관적 평가에 대한 것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가 사실은 청소년기, 그리고 젊은 성인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청소년, 젊은 성인기에 있는 친구들한테 “도전해라. 끊임없이 가서 부딪혀 봐라!”라고 해요. 거기서 장려상을 타든, 10등을 하든, 20등을 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끊임없이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보고 각자에게 맞는 객관적인 피드백을 통해서 스스로를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서 계획을 세우라고 얘기를 많이 해 주는 거죠.
마냥 “젊은이여, 도전하라!”라는 느낌이 아니라, 객관적인 피드백이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 때문에 계속 도전하라는 말이 필요한 거죠.
실제로 기성세대인 부모님이 돈이 많다든지 하는 배경에 의해 이 친구의 출발선상이 남들보다 앞서는 등의 문제에 대해서 제일 예민하고, 제일 화가 나는 이유가 그 시기가 가장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서 피드백을 받고 싶어 하는 인간 심리의 적기이기 때문에 그런 객관적인 도전을 청소년기, 젊은 성인기에 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면 학생일 경우에 객관적인 지표가 성적이지만, 일반 젊은 성인일 경우 스스로 지금 잘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궁금할 수 있어요. 학생 시기를 지나게 되면 우리가 기존에 있던 대한민국 교육체계에서 사실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나면, 그다음부터 자기 인생에 대한 목표가 세워지는 거죠.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사실은 대학이 목표가 되면 안 되고, 그저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는 자기 인생의 목표를 만들어 놓고 대학교라는 수단을 통해 어디로 갈 건지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앞선 과정들이 인생에서 하나의 어떤 과정으로써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게 되는 이유가 되는 거거든요. 그러면서 그다음 목표를 뭘로 잡을 것인지 제일 중요한 거죠.
그래서 저희가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은사님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성적 1점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걸 텐데, 그게 공부 잘해서 성적 잘 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런 방향을 가지고 이렇게 공부했는데, 객관적인 성적을 보면 너의 다음 목표는 뭐냐?”, “네가 10등을 했는데, 5등을 하고 싶은데 이유가 뭐냐?”, “10등을 했으면 10등의 성적 가지고 네가 세운 목표에 합당하면 그냥 그대로 가면 되는 거고, 네가 세운 인생의 목표에 5등은 해야 합당한 거면 5등을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거다…”라는 이야기죠. 이렇게 피드백과 목표가 일치된 삶을 계속 유지하면서 가야 해요.
그러니까 인생의 방향성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이 그저 수단이 돼야지, 방향성과 수단이 뒤바뀌는 순간 비참해지는 거죠.
왜냐하면 남들이 볼 때는 반에서 5등 한 것도 엄청 잘한 건데, 이 5등 한 사람은 전교 1등 하려고 했는데, 5등밖에 못 했다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누군가 “왜? 전교 1등 하면 네 인생 목표에 뭐가 좋은데?”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 하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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