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말마음 연구소’ 소장 김윤나 입니다. ‘리더의 말 그릇’, ‘말의 시나리오’ 라는 책을 썼습니다.
오늘 콘텐츠는 우리가 은연중 사용하고 있는 ‘나를 우습게 만들고 만만하게 보이게 하는’ 그런 말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습게 보인다’, ‘만만하게 보인다’라는 게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좀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저는 이렇게 정해 볼게요. ‘말의 담장이 낮은 사람’. 무슨 말이냐면 담장이 세우는 거 잖아요. ‘말의 담장이 낮다’ 라는 의미는 예를 들어, 어떤 사람한테는 잘 하지 않을 말인데 이 사람한테는 그냥 툭툭 던져 버리는 거예요, 담장이 낮으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한테는 하지 말아야 될 말을 이 사람을 한다거나 그러니까 이 말의 담장이 낮아서 아무 말이나 막 오가도록 만드는 사람이 저는 ‘우스워 보이고, 만만해 보인다’ 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어떤 특정이 있는가를 좀 생각해 봐야 하는데, 사실 몇 번의 어떤 말을 듣고 “저 사람은 우스워, 만만해.”이러진 않죠.
어떤 특정 이야기가 반복될 때, 그 사람의 패턴으로 드러나고 경향성이 드러나요. 그 사람이 어떤 삶의 이야기처럼 되돌이표 될 때, 우리가 이제 만만해 보이는 인상을 줄 수 있어요.
첫 번째, ‘저는 괜찮아요.’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안 괜찮은 상황이 있거든요. 내 마음에서는 좀 속상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왜 저래’ 이런 마음이 드는데도 일단 괜찮다고 말하는 거예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괜찮은지, 괜찮지 않은지 살피지 않고 무조건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계속 되돌이표 되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괜찮지 않더라도 저 사람이 불편할까봐 혹은 상황, 분위기를 해칠까봐 무조건 괜찮다고 하는 거예요.
왜 이런 말 법이 이런 평가를 들을 수 있냐면, 무조건 괜찮다고만 하면 내가 생각한 나의 선호, 나의 감정을 저 사람이 알 수가 없죠. 그 사람이 뭘 느끼는지 그 사람의 선호를 알 수 있게 없게 되면 말의 담장이 낮아지게 되어 있어요. 아무 말이나 툭툭 던지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배려라고 하는 건, 기준이 ‘나’한테 있을 때는 배려라고 할 수 있죠. 내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내가 살펴서 괜찮을 때 ‘그 정도 괜찮아요’라고 한다면, 이건 배려 인데요. 내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덮어놓고 괜찮다라고 하는 것은 그건 배려가 아니죠. 중심이 누구한테 있는지가 중요해요. 그래서 내가 만약에 늘 괜찮다고 말하는 편이면 한 번 생각해 보셔야죠.
두 번째, 예를 들어서 “a가 있고 b가 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물어 봤으면 의견을 말해야 되는데, ‘글쎄요’ 아무거나랑 약간 비슷한 느낌이죠? ‘나는 a는 이래서 그렇고 b는 이렇게 생각해’ 의견을 내지 않는 거예요.
항상 애매한 영역의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이 그렇게 애매한 말을 하는 건 사실 다 이유가 있거든요. 내가 어떤 의견을 내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이 혹시 원하는 답인가?’ 이게 계속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글쎄요’ 이렇게 애매하게 말을 하게 되는 거죠.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a인지 b인지 밝히지 않으면 이 사람이 생각하는 생각의 기준, 의견, 이 사람에게 있어서 어떤 우선 순위를 상대한테 알릴 수가 없죠. 아까 마찬가지로 나의 그런 기준들을 알리지 않으면 말의 담장은 낮아질 수 밖에 없어요.
마지막 세 번째, 어떤 부탁을 하거나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 이렇게 말할 때 ‘제가 뭘 알겠어요.’, ‘저는 잘···.’, ‘제가 그거 할 수 있겠어요?’ 라고 하는 말들 많이 들어보셨죠? 이거는 겸손하고 달라요.
아까 배려하고 다른 점 한번 짚어 주신 것처럼 겸손이라는 것 역시도 중심이 나한테 있는 것, 내가 생각했을 때 ‘이건 할 수 있고, 이거 할 수 없어.’ 그래서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NO 하고 “아, 이거는 좀 이렇죠.’라고 하면 겸손일 수 있는데요. 지금 말하는 상황에서 ‘알겠어요’는 나 스스로 내가 다 부족해 보이는 거예요.
‘내가 정말 이걸 해내지 못할 거야’, ‘난 이거 할 만한 자격이 없는 걸’ 스스로가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볼 때 이런 말이 툭툭 던져지거든요. 이거의 문제는 뭐냐면 ‘몸장님 이거 좀 해 보시겠어요?’ 라고 할 때 ‘어우, 제가 뭘요.’ 이렇게 받으면 아마 처음에는 상대가 ‘무슨 말씀이세요, 잘 하실 텐데~.’ 이렇게 처음에는 하겠죠.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게 반복되서 패턴이 되면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 되는 거죠. 왜 우리가 자주 들은 노래 있잖아요? 내가 그 노래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도 어느 날 내가 흥얼거리고 있을 때 있죠? 많이 듣는 노래가 그냥 내 노래가 되는 거거든요. 마치 그런 것처럼 상황에 따라서 능력에 따라서 분간없이 사용하는 말들이 내가 되는 거예요.
내가 진짜 그걸 해낼 수 있는지 없는지, 그런 거에 능력에 대한 판단없이 나를 너무 낮추는 말은요. 그게 진실이 되어버려요.
크게 두 가지를 먼저 말씀을 드리면, 첫 번째는 결국은 문제를 하나로 고르자면 ‘경계’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경계가 없다는 건, 인간관계에서는 경계 바운더리가 중요하거든요? 저와 몸장님의 자리를 반으로 나눠서 한쪽은 몸장님 자리, 남은 반은 제자리예요. 그러니까 이 경계에 들어 오시려면 제가 문을 열어 주거나 또는 초대할 때만 올 수 있는 거죠.
그래야 우리가 ‘나’와 ‘너’가 공존하는, 누구 하나 만만하지 않는 그런 관계를 맺을 수가 있어요.
근데 지금 같은 대화를 쓰시는 분들은 그런 경계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우리나라 국가 간에도 경계가 서로 애매하면 어떻게 돼요? 분쟁이 일어나죠. 서로 그 영역을 차지하려고요. 그런데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관계에서도 내가 좀 들어가볼까 했는데 경계가 없어요.
그리고 지키고 서 있는 사람도 없어서 들어간다고 뭐라고도 안 해요. 다 괜찮대요. 다 모르겠대요. 그러면 한 발, 두 발 내딛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에요. 내디뎠는데 아무 일 없어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요. 그럼 어떻게 되냐면, “야, 너도 와 봐! 여기 되게 편해. 여기 부탁하면 다 들어줘.”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씩 계속 그 영토에 들어오는 거죠.
그런 평가를 여러명에게 받았을 때, “걔 좀 만만하잖아.” 이렇게 이야기를 듣는 거죠. 그렇게 되면 스스로 자책감에 들겠죠. 최소한 나를 방어할 능력이 없다는 걸 본인이 알아요. 그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어요. 스스로 자책하고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고 그래서 한번 좀 ‘나가라고 해볼까?’ 생각만하고 못 하거든요.
두 번째는 우리가 만만하다는 거 하고, 편안하다 하는 건 다르죠. 저는 관계를 시소에 비유 해요.
아이들은 시소를 진짜 재밌겠 타잖아요. 재밌게 타는 방법이 있어요. 체급이 좀 비슷해야 돼요. 그리고 발을 서로 열심히 굴러야 돼요. 서로 튕겨줘야지 체급이 맞지 않다거나 아니면 한 명이 구르지 않고 ‘너가 해’ 이러면 재미가 없어서 내려버려요. 우리가 관계에서 만나는 사람은 협력과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아요. 같이 시소를 타고 싶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뭔가 일을 하고 같이 여행도 가고 싶은 사람은 시소를 재밌게 굴러 줄 수 있는 사람이죠. 대화가 통하고, 내가 ‘핑’ 보내면 ‘퐁’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인 거죠.
그러니까 편안한 사람 하고는 시소를 탈 수 있어요. 나를 배려해주고, 적당히 겸손하고. 그런데 만만한 사람은 “시소 같이 탈래?”라고 하지 않죠. 재미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다 퍼 주고 이해해 주고 해주면서도 결국 중요한 관계에서는 관계 믿지 못하게 굉장히 고통이죠. ‘이 사람하고 되게 친해.’ 이런 관계를 만들지 못하니까요.
[ 말하는 법만 바꿔도 자신을 만만하게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바꿀 수 있나요? ]
바꿀 수 있기도 하고, 동시에 또 다른 노력도 필요하죠. 일단 대응할 수 있는 말을 배우긴 해야 돼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어떤 상황에 거절을 못 한다는 것은 그 말에 기술을 몰라서 뿐만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이거 거절하면 제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거절하면 쟤가 날 싫어할지도 몰라.” “지금 분위기상 나한테 이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은데, 내가 여기서 싫다고 하면 산통 깨는 거 아니야?” 등등 굉장히 많은 생각들이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거절을 못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어떤 확신이나 나에 대한 신뢰보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점이 다 발휘되기 때문이거든요.
근데 이 사람이 거절 한마디를 하려면 사실은 그 말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이 시나리오가 좀 바꿔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의 전개도들이 있잖아요. 그 이야기가 조금 바꿔야 돼요. 예를 들면, ‘내가 거절할 수 있지 뭐’, ‘거절해도 이해해 줄 거야. 서운해도 어쩔 수 없어’ 이런 시나리오로 마음이 바뀌면 말도 “내가 일정 먼저 확인해 볼게.” 내가 거절을 하면 상대도 ‘어, 그래?’ 이렇게 나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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